주간동아 604

2007.09.25

요지경 한국 현실, 슬로시티와 극명한 대비

  •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

    입력2007-10-01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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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지경 한국 현실, 슬로시티와 극명한 대비
    세상이 시끄럽다. 학력위조와 관련해 신정아 거짓말 시리즈 정도로 끝날 듯했던 일이 이제 변양균 전 대통령 정책실장의 직권남용과 치정사건으로 발전했다. 자신의 판단이 항상 옳을 것이라고 믿었다는 대통령이 “면목 없다”는 말도 했다. 그것도 ‘깜’ 안 되고 수준도 안 된다고 외치다 말을 바꿨다. 그냥 조용히 있어도 될 것 같은데 답답한 심정의 하소연이었을까? 곤혹스러워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답답해하는 국민이 많을 것이다. 주요 일간지를 가득 채운 학력위조 파문은 오늘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603호 ‘주간동아’는 이런 뒤죽박죽인 우리 삶의 모습을 애써 무시하고 느린 삶, 알찬 행복 ‘슬로시티’에 관한 기사로 표지를 장식했다. 숨가쁜 우리 생활의 대안으로 ‘슬로시티의 상륙’을 알리는 것이 다소 무모하지는 않았을까? 느리게 사는 삶이 또 다른 삶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주는 것은 좋지만, 기사의 핵심이 슬로시티 가입 문제에 초점을 두는 듯해 ‘독자를 엉뚱하게 낚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과 지상주의에 물든 우리 삶을 다르게 바꾸자고 하면서 또 다른 성과를 얻어야 하는 모습이 조금 어색했다.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노무현과 정윤재의 관계’‘총선 고지를 노리는 대선후보의 자기 알리기’ 기사는 모두 슬로시티와 대비된다. 그것은 거짓말과 사기횡령, 말 바꾸기로 꾸며진 총천연색 파노라마 사진들이었다. 부적절한 발언 수준이 아니라 상식 밖의 언행을 쏟아내는 목사 이야기, 정윤재의 과거에 관한 기사들은 모두 스케치만 있었다. 그들이 사기와 부패의 고리 속에 들어간 상황에 대한 심층탐색이 아쉬웠다.

    ‘독일도 짝퉁학위 파문’ 이야기는 한편으로 반가웠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족으로 덧붙인 ‘학력위조와 관련된 포털서비스의 책임’‘전화금융 사기’‘직무 스트레스’‘야근’ 등에 관한 기사는 슬로시티의 삶을 더욱 꿈꾸게 했다. 1인당 맥주 소비량이 세계 3위라는 호주 술집에 관한 기사는 맥주보다 독한 소주를 죽어라 마시는 우리의 모습을 반추하게 하는 애교스러운 내용이었다.

    너도나도 대통령 후보 ‘존재의 몸부림, 총선 고지 노림수’ 기사는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또 다른 계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대통령 선거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한 연습장이 돼버린 듯한 한국 정치판의 요지경 말이다. 정말 대통령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큰 성과’일 것 같다.



    다음 호 ‘주간동아’는 어떤 삶의 방식과 우리 정부의 큰 성과를 알려줄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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