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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 투혼 이승엽 “하라를 위하여”

왼손 검지 통증 참으며 타격 “최고 대우 계약 답례로 감독 우승 헹가래 치고파”

  • 김성원 JES 기자 rough1975@hotmail.com

부상 투혼 이승엽 “하라를 위하여”

부상 투혼 이승엽 “하라를 위하여”
투혼인가, 도박인가. 이승엽(31·요미우리 자이언츠)이 온갖 통증을 참아가며 뛰고 있다. 심각한 부위는 왼손 검지다. 관절 염증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 타격할 때 힘이 가해지는 부위이기 때문에 무작정 참는다고 이겨낼 수 있는 고통이 아니다.

시즌 초 이승엽은 왼쪽 어깨 통증으로 고생했다. 3월30일 요코하마 베이 스타스와의 개막전에서 홈런을 친 뒤 어깨 통증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왼쪽 무릎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 최근 어깨와 무릎 통증은 많이 가라앉았지만, 완쾌는 아니다.

이승엽은 4월부터 옛 동료들과 통화할 때마다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여름에는 요미우리 코치진이 하라 다쓰노리 감독에게 “이승엽이 수술을 받지 않으면 올 시즌 내내 저런 상태로 뛰어야 한다. 왼손을 수술하게 하자”고 건의하기도 했다. 이승엽도 수술을 고려했다.

그러나 이승엽은 지금도 뛰고 있다. 지난해만큼 폭발적이진 않지만 타율 2할7푼7리, 27홈런(9월12일 현재)을 기록 중이다. 9월7, 8일 한신 타이거즈와의 홈경기에서 홈런 4개를 몰아치더니 이튿날부터 4번타자 자리를 되찾았다. 부상이 믿어지지 않는 성적이다.

이승엽의 왼손 부상은 참고 뛸 만한 정도일까. 아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승엽은 6월부터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타격 훈련을 마치면 손을 덜덜 떨 정도였다.



7월11일 한신과의 경기가 끝난 뒤 그는 “아픈 채로 뛰는 것은 더 이상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2군행을 자청했다. 이승엽은 재활훈련 중에도 방망이를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다. 시즌 중 수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 이때다.

그러나 이승엽은 하라 감독의 설득으로 후반기 개막날인 7월24일 1군에 복귀했다. 이날 이승엽은 요코하마를 상대로 홈런 2개를 터뜨리더니 9경기 연속 안타행진을 이어가며 부활을 알리는 듯했다. 이승엽의 타격은 ‘부상 투혼’으로 포장되고 있었다.

그의 부상은 공을 칠 때마다 누적된다. 근본적인 치료 없이 2주간의 휴식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부상이 만천하에 공개되자 상대 투수들은 집요하게 몸 쪽으로 승부구를 던졌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 검지 부상은 몸쪽 공을 공략할 때 배트 중심이 아닌 손잡이 가까운 부분으로 치다 과부하가 걸려 생긴 것이다. 이승엽의 방망이는 날이 갈수록 무뎌졌다. 통증 때문에 몸쪽 스트라이크는 아예 건드리지 않는 모습까지 보였다.

혹사 논란이 일었다. 그토록 아픈 선수를 꼭 타석에 세워야 하느냐는 목소리였다. 무기력한 이승엽은 본인에게도, 팀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라 감독은 단호했다. 그는 이승엽에게 “홈런을 쳐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타율도 신경 쓰지 마라. 필요할 때 가끔 한 방씩만 쳐주면 된다”고 당부했다. 이승엽이 라인업에 들어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위협이 된다는 말이었다. 또 이승엽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도 묻어 있었다.

큰 스윙 대신 부드럽게 밀어치는 타법으로 수정

이승엽은 하라 감독의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다. 하라 감독은 지난해 이승엽을 요미우리의 70번째 4번 타자로 임명, 요미우리에서의 성공시대를 열게 해준 은인이다. 또 메이저리그로 향했던 이승엽의 마음을 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승엽에게 그는 ‘그라운드의 아버지’다.

이승엽은 올해부터 4년간 30억엔(약 240억원)이라는 계약 조건으로 요미우리에 잔류했다.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고 대우다. 당시 이승엽은 후견인에게 “요미우리에서 우승해 하라 감독을 헹가래치고 싶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어찌 됐든 이승엽은 일본에서 용병 신분이다. 부상이 심하면 뛰지 않는 것이 순리지만, 그는 여느 외국인 선수와 다르다. 그는 지난해에도 무릎에 매일 얼음찜질을 해가며 싸웠다. 팀과 융화한 덕에 용병이면서도 요미우리 적자(嫡子)로 대접받았다. 이승엽이 보여준 책임감이 최고 대우를 받은 배경이 됐다.

올 시즌 끝까지 뛰기로 마음먹은 이승엽은 몇 가지 부상 관리책을 내놨다. 엄지에 고무 보호대를 착용하기도 했지만 스윙에 걸림돌이 되자 한 달 만에 벗어던졌다. 이후에는 타격폼을 조정했다. 예전처럼 힘차게 찍어내리는 스윙 대신 부드럽게 툭 밀어 안타를 쳐냈다. 그리고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을 외야 좌중간 쪽으로 쳐 안타를 만들고 있다.

스윙 궤적도 수정했다. 파워포지셔널에서 임팩트 지점까지 곧바로 가는 다운스윙 대신, 준비자세에서 배트를 조금 눕힌 채 수평을 그리는 레벨스윙으로 바꾼 것. 미세한 변화지만 통증을 최소화하고 실투만큼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승엽의 현재 스윙은 분명 정상은 아니다. 그렇지만 위기에 대처하는 창조적하고 능동적인 자세만큼은 돋보인다. 수술을 받기 전까지 차선책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간동아 604호 (p136~138)

김성원 JES 기자 rough197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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