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6

2007.07.31

神도 막을 수 없는 인간의 生存 본능

대형사고 직후 살기 위한 몸부림 상상 초월한 힘 발휘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7-07-25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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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神도 막을 수 없는 인간의 生存 본능

    6월27일 발견된 캄보디아 여객기 추락사고 현장(왼쪽)과 지난해 추석 연휴에 발생한 서해대교 40중 추돌사고<br> 현장.

    “고가도로에 사람이 매달려 있어요. 빨리 구해주세요.”6월24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소방서에 구조 요청 전화가 걸려왔다. 구조대는 즉각 출동했다. 현장 상황은 급박했다. 사고 현장인 20m가 넘는 고가도로에 한 청년이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었다. 오토바이 사고였다.

    소방대가 도착하기 10여 분 전, 19세 남녀 두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연희동 사천고가를 질주하고 있었다. 사고는 예기치 않게 벌어졌다. 달리는 도중 운전자 김모 씨의 옷이 고가도로 돌출 부위에 걸렸고, 두 사람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오토바이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일어난 몇 차례의 추돌. 청년은 다리에 매달렸고 여성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사고 직후 김씨는 큰 사고를 당한 사람치곤 정신이 멀쩡했다. 외상도 별로 없었다. 구조대원들도 처음엔 큰 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리 위로 끌어올려진 김씨의 몸은 처참했다. 어깨 쇄골 이하 대부분이 부서진 상태. 장기 손상도 심했다. 그런 몸으로 10분 넘게 다리 난간을 붙잡고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 김씨는 세상을 떠났다. 여름휴가 계획을 짜며 꿈같은 드라이브를 즐기던 남녀의 질주는 그렇게 끝이 났다. 소방대원의 말이다.

    죽음 앞둔 상당수 오히려 편하게 느껴

    “어디를 다쳤는지 확인하려고 팔을 들어올리는데 온몸이 다 부서져 있었다. 살아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구조대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대형사고를 당한 사람이라곤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정신은 멀쩡했다. 사고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했고, 소방대원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앰뷸런스 안에서 그는 편안해했고 우리(소방대원들)에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한 뒤 눈물을 흘렸다.”



    죽음을 넘나드는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사고 직후 1분’은 어떨까. 그들은 과연 그 순간 어떤 반응을 보일까.

    위의 경우처럼 사고 후 죽음을 앞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인체의 자율신경이 처참한 사고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게 제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기간은 때에 따라 며칠 이상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의 한 전문의는 “교통사고 등으로 전신에 80% 이상 내외상을 입은 환자도 처음 병원에 실려와서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큰 사고가 아니겠지’라고 자신을 위안함으로써 안정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이 아예 사고 기억마저 없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고 정도가 심할 때 특히 이런 일이 많다고 한다.

    대형사고를 늘 접하는 소방대원들이 말하는 ‘사고 직후 1분’도 비슷하다. 서대문소방서 이성촌 소방교의 말이다.

    “큰 사고 직후 사고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지어 공사장에서 추락한 철근이 뇌를 관통한 사람도 철근을 제거하고 병원으로 이송하는 동안 대화가 가능할 만큼 정신이 온전했다. 화재 현장에서는 온몸이 불에 타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정신력이 살아서 탈출을 시도하는 경우를 보는데, 그럴 때마다 인간의 의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큰 사고 직후에는 대부분이 정신을 잃는다.”

    사고 직후 사람의 몸은 자율신경에 의해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본능의 지향점은 ‘생존’이다. 예를 들면 머리를 다친 환자는 계속 하품을 한다. 뇌기능이 떨어져 산소공급이 줄면 이를 보충하기 위해 자율신경이 하품을 유도한다. 그래서 교통사고 직후 사고자가 하품을 하는지는 머리를 다쳤는지를 확인하는 단서가 된다. 추락 등의 사고로 신경이 끊어지면 사람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자율신경이 다친 신경을 찾아 복구하려고 애쓰는 과정이다. 동맥을 끊어 자살을 시도한 환자들의 경우 종종 상처 입은 동맥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몸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의사들은 이를 두고 “상처를 복구하기 위한 신체의 자율반응이자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초인적인 힘은 특히 화재 현장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다음은 소방대원 이연호(31) 씨가 실제 겪은 사례다.

    본능적 행동은 신체 자율반응이자 초자연적 현상

    “올해 1월 4명이 숨진 대형화재가 일어났다. 그런데 화재 진압 도중 119 대원들은 깜짝 놀랐다. 발견된 사체들이 하나같이 화재 현장을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 쓰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마치 조각상 같은 모습으로 발견된 사체 중에는 두 팔로 기어가듯 탈출을 시도하다 숨이 끊긴 사람, 심지어 벽을 따라 걸어가며 선 채 죽음을 맞이한 사람도 있었다. 한 엄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다 변을 당해 까만 재로 변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사고 직후 동일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같은 사고를 당해도 반응은 제각각이고 정도에도 차이가 있다. 법의학자인 고려대 의대 황적준 교수는 “사고 직후 신체반응을 하나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같은 높이에서 떨어져도 죽는 사람이 있고 멀쩡한 사람이 있다. 인간이 사고 직후 자기도 모르게 머리, 가슴 등 중요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반응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의식적인 작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대형사고의 충격이 동반하는 후유증(전문용어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도 자신을 보호하려는 신체의 자율신경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똑같은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인체가 알아서 위험을 회피하려는 무의식적 반응, 특정 음식물로 큰 고통을 받은 사람이 그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갖게 되는 것 등이 이에 속한다.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피해자들이 겪는 우울증, 대인기피증도 같은 경우다.

    자율반응이다 보니 완치도 어렵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전문 클리닉인 LPJ 마음건강 이후경 원장은 “사람마다 증상이 모두 달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치료가 어렵다. 가족의 사고와 사망 등을 목격한 사람들은 특히 증상이 오래간다. 기억상실이 동반되는 경우도 흔하다. 그나마 최근에는 약물치료 효과가 좋아 치료환경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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