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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의 창의력을 깨워라

도약하려면 사다리를 치워라

  • 이도희 경기 송탄여고 국어교사·얼쑤 논술구술연구소 cafe.daum.net/hurrah2

도약하려면 사다리를 치워라

도약하려면 사다리를 치워라
얼마 전 서울대는 논술 고득점 비결을 발표했다. 거기에는 ‘견해만 나열하지 말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근거 필요’ ‘자신만의 창의적 대안 제시’ 등이 언급돼 있었다. 논술은 ‘창의성’ 부분에서 고득점 여부가 결정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논술 수험생들은 구체적 근거와 창의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을 느낀다. 왜 그럴까? 평소 공부 습관이 암기 위주로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술에서 주로 평가하려는 것은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논리성을 갖춘 수험생 ‘자신의 생각’이다. 창의적 답안은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다음 글을 보자.

다음 날 친지가 한 명 찾아오기에 그 사실을 이야기하였더니 “자네, 낚시하는 것을 보니 낚싯대를 채어 올리는 방법이 틀렸네. 낚싯줄에 찌를 달아 물에 띄우는 것은 그것이 뜨고 잠기는 것을 보아 고기가 물었는지 안 물었는지를 알기 위함일세….”

나는 그 사람이 가르쳐준 대로 낚시를 놓아 겨우 서너 마리의 고기를 낚아올릴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또 말하기를 “고기 잡는 방법은 그만하면 잘 되었네만, 고기 잡는 묘리(妙理)는 아직 깨닫지 못하였네” 하며 나의 낚싯대를 받아 가지고 물속에 드리웠다. 그는 내가 낚던 낚싯대와 내가 쓰던 미끼와 내가 앉았던 자리를 그대로 이용했으나, 물고기는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낚싯대를 던져놓기가 바쁘게 빨려 올라왔다. 나는 감탄하면서 말하였다. “참으로 솜씨가 좋기도 하네. 자네, 그 묘리를 좀 가르쳐주게나.”

“잡는 방법이야 가르쳐줄 수 있지만 묘리를 어찌 가르쳐줄 수 있겠나. 만일 가르쳐줄 수 있다면 그것은 묘리라고 할 수 없지. 내가 자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가르쳐준 대로 낚시를 물속에 드리워놓고, 정신을 집중해 열흘이고 한 달이고 방법을 익혀보라는 것일세. 그렇게 되면 손은 알맞게 움직이고 마음은 스스로 묘리를 터득하게 될 것이야. 그럼으로써… 아무것도 모르고 오히려 의혹만 많았던 것과, 또 환하게 깨달았지만 그 까닭은 몰랐던 것들을 모두 터득할 수 있을 것일세.” -남구만, ‘약천집’



‘친지’가 제시하는 낚시 방법은 이렇다. 처음에는 말로, 나중에는 시범으로, 마지막에는 스스로 묘리 터득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 본다면 설명과 시범은 교사 중심의 주입식 교육이다. 반면 ‘스스로의 묘리 터득’은 학습자 중심의 열린 교육에 해당한다.

주목할 점은 수험생들의 ‘스스로 묘리 터득’이다. 나 자신의 창의성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통합논술은 창의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문화된 지식과 창의적 사고를 지닌 수험생을 논술을 통해 뽑겠다는 대학의 의도다. 얼마 전 실시된 각 대학의 통합논술 모의고사를 분석해본 결과, 본격적인 통합논술 문제는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수험생들에게 통합논술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대학 측의 배려로 보인다. 그러나 본격적인 통합논술 시험의 막이 오르면 지금의 암기 위주 방식으로는 수험생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은 자명하다.

EBS 교재인 ‘사고와 논술’을 보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게 해주는 사다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다리는 교사가 제시하는 논술 공부의 모형으로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어느 정도 이룰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사다리는 목표에 어느 정도 다다르면 더 큰 비약을 하기 위해 사다리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일러주고 있다. 결국 사다리를 치움으로써 표준적인 글쓰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노력에서 창의적인 글이 얻어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통합논술의 핵심인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치우고 ‘자기만의 논술 묘수 찾기’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의 말과 시범을 바탕으로 ‘스스로 논술 묘리’를 터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논술 수험생은 교과서의 기본 개념을 교사에게 배운다. 하지만 이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본 개념의 맥락을 고려하면서 현실의 다양한 문제와 관련시켜 문제의식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이런 과정을 통한 수험생 ‘스스로의 노력’은 논술 묘리에 다다르는 좋은 방법이 된다.



주간동아 2007.06.12 589호 (p95~95)

이도희 경기 송탄여고 국어교사·얼쑤 논술구술연구소 cafe.daum.net/hurra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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