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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악의의 부재’

언론보도 피해자의 복수극

  • 이명재 자유기고가

언론보도 피해자의 복수극

언론보도 피해자의 복수극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은 관객이 주인공들을 응원하게 만드는 영화다. 기자 초년병인 20대 후반의 두 젊은이가 최고 권력자에 맞서 한 걸음씩 진실의 문으로 다가서는 모습은 진실 추구자로서 기자라는 직업의 매력을 한껏 보여준다. 영화는 ‘혹시 내가 의심하고 있는 게 사실이 아니라면’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두 젊은이의 불안한 얼굴 표정을 반복적으로 클로즈업해 보여준다. 진실에 대한 신념만 빼면 거대 권력 앞에서 두 사람은 너무도 나약해 보인다. 그래서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주인공의 등 뒤에 서게 되는 것이다.

30여 년 뒤 두 사람 중 우드워드는 워싱턴에서 여전히 현역으로 뛴다. 현역일 뿐만 아니라 그는 워싱턴의 한 ‘권력’으로 군림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과거의 유명세에 기댄 면이 크지만, 워싱턴 정계 인사들은 그의 저택에서 열리는 식탁 모임에 초대되기를 고대한다. 그 식탁에 한 번쯤 끼면 정가 주요 인물이라도 된 듯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불안한 표정의 신참 기자에서 워싱턴의 한 권력으로 성장한 우드워드의 얼굴은 그러나 변신이라기보다는 한 몸의 두 얼굴 같다. 기자라는 직업의 자웅동체적 속성이다. 그래서 영화는 기자를 때로는 약자의 얼굴로, 때로는 권력의 모습으로 그렸다.

후자의 측면을 다룬 대표적인 영화로 ‘악의의 부재(Absence of Malice)’를 꼽을 수 있다. 영화는 언론의 부정확한 보도로 억울하게 당한 한 시민의 복수 과정을 그린다. 폴 뉴먼이 분한 주인공은 마피아 두목의 아들이지만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이 일상은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깨지고 만다. 노조위원장 실종사건을 수사 중인 FBI가 정보를 빼내려고 흘린 거짓 정보를 기자인 여주인공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기사로 내보낸다. 주인공은 교묘한 복수극을 꾸미고 검사와 기자에게 역정보를 흘려 꼼짝없이 당하게 만든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제목에 압축돼 있다. 언론의 알 권리는 공공의 이익에 봉사한다는 것 외에 ‘악의가 없음(Absence of Malice)’에도 무고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악의의 부재’는 언론보도를 둘러싼 명예훼손 소송에서 중요한 잣대로 쓰이는 법 용어다. 영화 속의 경우라면 악의가 없어 보이니 유죄판결을 받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더더욱 언론이라는 권력에 도사린 위험성과 함정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 일고 있는 브리핑룸 통폐합 논란도 그 뿌리를 더듬어 내려가면 이 영화가 제기하는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악의 없이 하는 말이지만.



주간동아 2007.06.12 589호 (p74~74)

이명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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