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9

2007.04.03

북한측 밀사 리호남이 ‘정치’ 아닌 ‘경제’전문가인 이유

‘선군정치’ 뒤로 밀고 ‘실리 챙기기’ 노린 듯

  • 송문홍 기자 songmh@donga.com,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7-03-30 10: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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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측 밀사 리호남이 ‘정치’ 아닌 ‘경제’전문가인 이유

    북한 개성 시내에서 남루한 옷차림으로 손수레에 실은 나뭇단을 운반하고 있는 북한 주민.

    2006년 평양 수뇌부는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지난해 1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남부지역을 방문한 것은 북한이 중국을 발판으로 국제무대에 진입하겠다는 신호였다. 베이징을 거쳐 워싱턴으로 갈 것이라는 열망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순탄하게 진행될 것으로 여겨졌던 북-중 관계는 2, 3월 이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평양이 기대했던 베이징의 경제 지원은 차일피일 미뤄진 채, 평양의 은밀한 내부를 들여다보려는 중국의 시도가 드러나면서 양국 수뇌부 간에 감정싸움이 벌어졌다.

    남북 공식 대화 창구 외 새로운 채널 희망

    이후 중국과의 화해 무드가 조성되기도 했지만 북한은 결국 중국을 매개로 한 6자회담 복귀를 포기한다.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남한 활용론’.

    지난해 9월20일 평양의 밀사가 안희정 씨를 만나기 위해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그는 평양 수뇌부의 확고한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 라인을 통해 노 대통령의 의사가 확인된다면 평양은 적절한 계기를 통해 6자회담에 복귀하고, 나아가 남북정상회담에도 응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밀사의 ‘성격’이었다. 리호남은 정치전문가가 아닌 경제전문가였던 것이다. 6자회담 복귀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정치 외교적 사안을 경제전문가인 그가 들고 나왔다는 것은 북한체제상 매우 특이한 일이다. 6·15 남북정상회담이 북의 대남 정치조직인 통전부(통일전선부) 산하 아태평화위에 의해 주도됐다는 것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왜 평양의 수뇌부는 경제전문가인 그를 남북간 비밀협의 밀사로 내보냈을까. 그것은 남북간에 새로운 채널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남북간 공식 대화창구인 남측 통일부와 북측 통전부의 장관급회담 채널(이른바 ‘통-통 체제’)은 미사일 발사 직후 부산에서 열린 19차 회담 이후 기능부전 상태에 빠졌다.

    통-통 체제의 기능부전 상황은 북 내부에서 ‘새로운 틀’을 갈구하던 이른바 ‘경제 부흥파’에게 하나의 기회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그동안 정치이벤트 위주로 전개돼온 기존 남북관계를 경제, 산업, 기술 중심의 남북간 상생협력 관계로 바꿀 수 있는 호기가 찾아왔다고 본 것이다.

    남북간 공식라인을 상징하는 통일부와 통전부 관계를 무조건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으나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이들이 과거지향적이고 고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특히 그들의 전문성이 정치영역에 국한돼 있음으로써 북한도 남한도 변하는 시대의 조류를 충족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는 듯하다.

    6·15 이후 남북간에 많은 행사와 사업, 기획들이 있었지만 정치성과 이벤트성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금강산, 개성공단, 이산가족 상봉 등은 분명 남북관계의 문을 여는 계기로는 중요한 기획들이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했음에도 그를 뒷받침할 기획이 뒤따르지 않아 이제는 오히려 문제점이 부각되는 상황에 처했다.

    북한 내부에서도 대남 채널이던 통전부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이 기존 관계에 대해 의구심과 피로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특히 대남 전문부서가 아니어서 뭐라 하긴 어려웠지만, 북의 진로에 대해 고민해왔던 김정일 위원장 측근 인사들 사이에서 문제의식이 심화됐다. 경제회생이라는 절체절명의 목표를 앞둔 그들에게 개성공단 노동자 임금과 금강산 관광 대가, 쌀·비료 지원 등이 당장은 도움이 될지 몰라도 북한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일’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먹고사는 문제를 마냥 늦출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선군정치도 좋지만,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 시점이 2007년 4월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방향은 뭔가. 바로 ‘경제실리주의’다. 10년 넘게 북한 체제를 이끌어온 선군정치 슬로건을 뒤로하고, 경제실리주의를 전면에 내세워 먹고사는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방향 전환에는 남측 민간 전문가들의 설득과 노력도 작용한 측면이 있다.

    현실 정치인 개입하면서 ‘실리와 상생’ 취지 변질

    요컨대 북한 수뇌부가 경제전문가를 밀사로 파견한 배경은 ‘경제실리주의를 위한 새로운 남북 채널의 구축’ 때문이고 이는 6자회담 복귀, 남북정상회담 추진이라는 특명과 동전의 양면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남북간 접촉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실리주의에 입각한 상생협력의 틀을 구축한다는 애초의 꿈은 변질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남측 파트너들의 인식이 부족했다. 그들이 자기 위치에서 남북문제를 이해하고 인식해온 것이야 탓하기 어렵지만, 무엇보다 현실 정치인들이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애초 기획 의도는 사라지고, 또 다른 정치 게임의 틀로 전환돼가는 과정은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접촉 과정의 우여곡절 끝에 남측의 현실 정치인들이 파트너로 부상하고 이들이 ‘실리주의에 입각한 상생협력’보다 현실 정치의 논리 중심으로 상황을 풀어가려 하자, 북측에서도 경제전문가들은 점차 이 일에서 손떼고 다시 정치꾼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아태평화위야말로 그 대표적 조직이다.

    그렇다면 애초 기획자들이 생각한 ‘새로운 남북간 상생협력 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자는 것이었나. 무엇을 가지고 상생하고 협력하자는 것인가. 김정일 위원장 측근 엘리트들이 2007년 4월 이후 북을 경제실리주의 방향으로 몰아가겠다는 것은 분명 큰 변화이지만, 그것이 그들의 힘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것 또한 현실이다. 거기에는 내외의 많은 요소가 결합돼야겠지만, 그중에서도 남측이 결합될 경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새로운 협력 구상엔 ‘남북경협 100대 프로젝트’가 존재해왔다. 100대 경협 프로젝트는 남한이 1960~70년대 경제, 산업 발달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됐던 필수적 산업기술 영역을 추출하는 한편, 이를 북측 현실에 맞게 다듬은 100가지 경협 아이템을 말한다. 이는 북한 경제회생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할 뿐 아니라 남한에서는 이미 한계산업화하거나 노후화한 기술의 재생, 제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각종 자원, 북측이 보유하지 못한 기술의 공여를 통한 해당 산업 확충 등을 통해, 남북 양측의 산업과 기술이 상호 보합되어 활성화할 수 있는, 남북 모두 ‘꿩 먹고 알 먹는’ 협력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100대 프로젝트’의 존재를 전해들은 북측 최고위급 간부들이 보여온 ‘열렬한’ 반응에서도 이미 확인됐다.

    감사하고 인정하는 마음은 바로 ‘필요’에서 나온다. 자신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누군가 와서 해줄 때 비로소 그가 고맙고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북측과 해온 많은 사업들은 북측 입장에서는 ‘거래’였지 감사의 대상으로 여길 만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남측에서 쌀과 비료가 가도 이산가족 상봉을 대가로 서로 주고받았는데 무슨 감사인가.

    또 조건이 붙은 거래는 거래가 끝나면 그뿐이다. 남는 게 없다. 그 거래로 새로운 사업이 만들어지고 확산, 심화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동안 남과 북은 관계의 표면에서 맴돌 뿐이었고, 정치 풍향이 바뀌면 언제든 대문을 걸어 잠가도 상관없는 관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북을 둘러싼 환경은 이미 백화제방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중국은 몇 년 전부터 북측 산업 경제를 접수하기 위해 광범위하고 치밀한 시나리오를 준비해왔고 현재 실행 중이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해도 윈자바오 총리실 산하에 ‘조선정책 태스크포스팀’을 두고 북과의 관계를 전면화하기 위한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미국과 러시아, 일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통일부와 통전부라는 외길 채널에 위태롭게 우리 미래를 의탁하고 있을 때, 중국은 당, 군, 국무원, 지방의 성 정부 등 모든 채널이 북측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내각에서도 산업은 산업 담당끼리, 환경은 환경 부처끼리 전문 섹터들간 직접 채널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산업기술 협력의 광범위한 영역에 문외한일 수밖에 없는 남북의 통-통 체제만으로 지탱하는 남북관계는 이미 국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볼수록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치 행사와 이벤트 행사만 즐길 뿐 관계의 심화를 위한 처방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닻줄이 풀린 북한이란 배를 영영 놓칠 수도 있다. 무엇으로 그들을 남한이란 항구에 붙들어 맨단 말인가.

    최근 평양을 다녀온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평화협정 평화체제가 과연 해답이 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북의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나 진배없다. ‘평화협정 평화체제는 미국이 보장하는 것이지 남한이 해주는 게 아니다’ ‘그것 한다고 밥이 나오나, 빵이 나오나.’ 그 속내는 한마디로 ‘관심 없다’다. 다만 남한 정치에 필요하다니 응해주고 그 대가를 챙기려 할 뿐이다.

    주고받기식 방법 언제까지 통할 것인가

    이제 민간 소수 전문가들의 싸움만으로는 힘에 부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현실을 정확히 알아야 할 때다. 과연 무엇이 지금의 남과 북, 그리고 이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지. 몇몇 정치권 인사나 정책 당국자 손에 맡겨두고 흘러가는 대로 둘 시기도 지났다. 정치권의 잇속 챙기기와 당국자들의 기득권 수호 때문에 다가올 낭패스러운 미래를 모른 척할 수 없다.

    우리 머리 위로 우리보다 훨씬 큰 덩치의 강대국들이 각각의 주특기를 들고 북을 공략해갈 때, 과연 우리가 내놓을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처럼 ‘뭐 해주면 뭐 해줄게’ 식이 과연 언제까지 통할 것인가. 가장 가깝기도 하지만 가장 멀기도 한 그곳을 가까운 곳으로 만들 방법을 왜 찾지 못하고 있는가.

    이제는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서로를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을 찾아 그것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때다. 그것만이 북한이라는 배를 남한이라는 항구에 영원히 붙들어 맬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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