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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행복 경비’는 보너스

어르신들 인기직종 아파트 경비원 … 최저임금제 도입 후 일자리 계속 줄어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인생 2막 ‘행복 경비’는 보너스

인생 2막 ‘행복 경비’는 보너스

근무교대는 새벽 6시20분. 근무일지를 체크하고 순찰을 돈다.

“안녕하십니까. 후문 경비실입니다. 손님이 오셨는데 통화를 원하십니다. 바꿔드릴까요? 네…, 네….”

서울 서초3동 대림1차 아파트의 경비원 배승호(64) 할아버지는 6개월 경력의 ‘초짜’ 경비원이다. 하지만 인터폰으로 주민과 통화하는 말씨가 뉴욕의 도어맨처럼 능숙하면서도 예의 바르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그가 초등학교 교사로 40여 년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왕년의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주민들이 알면 불편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저는 경비원입니다. 교사 대접 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왕년 자존심 세우면 버티기 힘들어

아파트 경비원은 50, 60대 남성들에게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진다. ‘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아파트 경비원 하면서 먹고살지…’라는 생각이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경비원 구인광고가 게시되면 이력서가 물밀듯이 쏟아진다고. 서울고용지원센터 송미숙 씨는 “아파트 경비원 구인광고를 인터넷에 올리면 60, 70대 할아버지들의 이력서가 100통 넘게 들어와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전했다.



하지만 아파트 경비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만만하게 생각하고 뛰어들었다가 된통 고생만 하다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 용역업체 관

계자들의 전언이다 . 600여 명의 아파트 경비원들을 현장에 파견, 관리하고 있는 홈스웰의 신흥섭 부장은 “처음 2~3개월

이 고비”라고 말했다. 그는 “경비는 서비스 업종”이라고 전제하면서 “‘왕년에 내가…’라는 생각이 강한 어르신들일수록 주민과의 작은 마찰에도 쉽게 그만둬버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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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들에게 업무지도를 하는 최 할아버지(좌).
야간 접촉사고 등에 대비해 주차된 차량의 번호를 기록하는 것도 경비원의 주요 임무(우).

배승호 할아버지와 서울 성북구 길음동 대림4차 아파트에서 경비대장을 맡고 있는 최진수(62) 할아버지는 홈스웰에서 가장 모범적인 경비원으로 꼽힌다. 앞서 말한 대로 배 할아버지는 교사 출신이고, 최 할아버지는 대상(옛 미원그룹)에서 30년 근무하다 정년 퇴직한 4년 경력의 경비원이다.

두 할아버지 모두 아껴 쓰고 산다면 돈을 더 벌 필요가 없다. 배 할아버지는 서울 봉천동의 단독주택과 2억원의 퇴직금, 매달 100여 만원씩 나오는 교직원연금이 있다. 최 할아버지 또한 상계동에 있는 연립주택과 퇴직금 1억원, 그리고 매달 45만원의 국민연금을 받고 있다. 두 할아버지에게는 사회생활을 하는 장성한 자녀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건강하기 때문에 놀 순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배 할아버지는 정년퇴직 몇 개월 전부터 아파트 경비원을 염두에 둔 채 일자리를 알아보다 퇴직 보름 만에 첫 출근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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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수거 날이 가장 바쁘다. 오후 3시에 시작하는 분리수거는 자정 넘어 잠깐 쉬다 이튿날 아침부터 오후 3~4시까지 이어진다.(좌)
초소에서 주민과 인터폰으로 통화하는 배 할아버지. 초소에서는 TV 시청이 금지돼 있다.(우)



“정년퇴직하고 잠깐 놀았어요. 그런데 자꾸 잠만 자게 되는 거야. 이러다 건강까지 나빠지겠다 싶었지.”(최 할아버지)

24시간 2교대 근무를 하면서 배 할아버지가 받는 급여는 월 90만원. 28명의 경비원들을 총괄하는 경비대장으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근무(오전 8시~오후 6시)하는 최 할아버지는 월 94만원을 받는다. 각각 학교와 기업에서 받던 월급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액수지만, 60대 경비원들 대부분이 80만원대의 급여를 받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고임금’이라고 할 수 있다. 배 할아버지는 “쉬는 날도 거의 하루 종일 밀린 잠을 자기 때문에 돈 쓸 시간이 없다”며 웃었다.

경비 일을 하다 보면 언짢은 일이 많이 일어나게 마련. 두 할아버지는 인사도 하지 않고 멀뚱거리며 쳐다보고만 가는 주민, 쓰레기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고도 미안한 기색 없는 주민, 주차딱지 붙였다고 거칠게 항의하는 주민 등을 ‘꼴불견’으로 꼽았다. 배 할아버지는 “새벽 2시에 잠깐 졸았다고 젊은 입주자에게 호통을 들은 동료 경비원도 있었다”고 전했다.

주민들 섬기는 서비스 업종

최 할아버지는 “자기 근무시간에는 입주민 집에 도둑이 드는 일이 절대 발생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불성실 근무’로 간주되어 자식뻘 되는 입주민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인터폰을 제대로 연결해주지 않았다고 관리사무소에 전화해 ‘그런 일도 못하는 사람을 경비원으로 쓰느냐’며 따지는 입주민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배 할아버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는 그저 경비원이다’를 되뇐다”며 웃었다.

“경비원은 첫째 성실하고, 둘째 친절해야 합니다. 나이 따지면 이 일 못해요. 규칙을 지키지 않는 주민은 사모님이라고 부르면서 어린애 달래듯 살살 달래야 해요.”(최 할아버지)

올해부터 아파트 경비원에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은 오히려 할아버지 경비원들에게 ‘악재’로 다가왔다. 관리비 부담을 느낀 주민들이 경비원 수를 줄이거나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좀더 젊은 경비원을 선호하는 경향을 낳았기 때문. 시설 관리 취업포털 ‘에프엠잡’의 정순화 대표는 “아파트 경비원도 점차 50대가 선호되는 추세”라면서 “65세가 넘으면 자리를 구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따라서 서울시 중앙고령자취업알선센터의 윤형준 사회복지사는 “하루라도 빨리 취업해 성실히 일하면서 오래 버티는 것이 상책”이라고 조언했다.

최 할아버지는 성실함을 인정받아 지난해 10월 경비대장으로 ‘진급’했다. 주민들에게 친절할 뿐 아니라 관할구역을 청결하게 유지한다는 주민 평가가 반영된 덕분. 24시간 2교대 근무에서 매일 근무로 바뀐 지금도 그는 2시간 일찍 출근하고 쉬는 날인 일요일에도 두어 시간씩 아파트 단지를 순찰한다. “열정을 가지고 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니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상기된 표정이 보기 좋았다.

“정이란 주는 만큼 받는 것인가 봅니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웃어 보이면 주민들도 따뜻하게 대해주거든요. 분리수거를 하느라 힘들 때 따뜻한 차를 끓여다 주는 주민이 제일 고마워요.”(배 할아버지)

“직업이 뭐든 보수가 얼마든, 자기 일을 완벽하게 하면 결국 남들이 알아주게 마련입니다. 경비원을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제2의 인생을 활기차게 사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하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최 할아버지)



주간동아 2007.03.27 578호 (p52~53)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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