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8

2007.01.09

빛 그리고 그림자

  • 류진한 한컴 제작국장·광고칼럼니스트

    입력2007-01-03 1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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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 그리고 그림자
    한 해가 저물고 또 한 해가 오는 즈음에 크리에이티브의 희망을 밝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싱가포르의 Young · Rubicam에서 제작한 ‘MAG LITE’ 인쇄광고다. 필자는 이런 크리에이티브를 볼 때마다 크리에이터로서의 시샘과 더불어 담백한 아이디어의 힘을 인정할 줄 아는 혜안을 지닌 클라이언트에게 우렁찬 박수를 보내곤 한다. 그리고 시공을 넘나드는 광고의 힘에 자긍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카피가 없어도 커뮤니케이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알지 못하는 문자나 언어를 세계인에게 무책임하게 던지는 것보다 몇 배는 명확하고 효과적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광고를 보는 사람에게 흥미와 재미를 던져주고 있다는 점이다.

    ‘MAG LITE’의 밝기는 우리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관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밝기를 자랑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빛이 아니라 그림자다. 자그마한 손전등에서 나오는 힘을, 아이디어라는 면죄부를 무기로 어디까지 뻥튀기할 수 있을지 그 한계점에 궁금증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빛의 힘이 얼마나 크면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비춘 빛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드넓은 중국대륙 한복판에 있는 광장의 밤을 붉게 밝힐 수 있을까? 그 빛이 얼마나 강하면 바다 건너 대영제국의 밤을 지키는 병사의 한쪽 어깨에까지 에펠(Eiffel)의 우아한 자태를 드리울 수 있을까?

    나는 이 광고를 보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저런 아이디어의 장난을 쳐보게 된다. 뉴질랜드의 설산 정상에 우뚝 서 있는 내 그림자를 우리 아파트 벽면에 보란 듯이 쏴주는 방법. 추운 겨울 외로운 방에서 기럭~ 기럭~ 울어대는 우리 아빠들에게, 먼 이국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딸의 모습을 밤 발코니에 분위기 있게 쏴주는 상상. 배낭여행 10일째, 30일째, 60일째 행적을 적나라하게 한국에 있는 보고 싶은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센스! 뭐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기 시작한다. 모름지기 남이 터놓은 길을 넓히고, 남이 파놓은 우물의 깊이를 더하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우리가 지닌 꿈들, 욕망들, 행복들을 멀리멀리 비추고 보이고 나누는 해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빛이 어두운 길에는 밝은 길잡이가 되고, 무더운 곳에는 시원한 그늘과 휴식이 되어주는 사랑의 발산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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