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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전 적군 아들·딸과 ‘우정의 파티’

김진선 예비역 대장 베트남 대학생들 초청 … “양국 동반성장 최고 파트너” 한목소리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38년 전 적군 아들·딸과 ‘우정의 파티’

38년 전 적군 아들·딸과 ‘우정의 파티’
“육군 대위 때 베트남전쟁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전쟁은 국가 지도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은 전투를 했을 뿐입니다. 명령에 따라 싸울 수밖에 없었던 거죠. 여러분처럼 밝고 명랑하고 아름다운 미인이 베트남에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코 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웃음)

구랍 20일, 베트남 대학생들을 자신의 집 저녁 만찬에 초청한 예비역 대장 김진선(68) 씨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가 베트남에 파병된 때가 1969년 12월이니, 38년 전 ‘적군’의 아들딸과 마주한 것이라 감회가 남다를 법하다.

맹호부대 1연대 11중대장으로 참전했던 김씨는 당시 적군이던 베트콩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가 이끄는 부대에 전멸당하거나 심각한 타격을 받은 베트콩 부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트콩이 그의 목에 현상금을 내걸었을 정도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김씨에겐 당시의 일이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죽고 사는 마당에 벌어진 일이라 쉽게 잊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김씨의 집을 방문한 베트남인들은 한국·베트남친선협회(회장 박노수) 초청으로 한국에 온 하노이국립대학, 하노이국립외대의 한국어학 전공 대학생 남녀 23명과 한국에 유학 중인 3명 등 총 26명. 대부분 1985~86년에 태어난 스물한두 살 정도의 전후세대다. 과거의 참혹했던 전쟁에 대해서는 전혀 모를 수밖에 없는 나이. 그래서인지 다들 밝고 명랑했다.



한국말 유창, 노래 실력도 상당

하지만 이들 중에도 8명의 학생은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새겨진 가족사를 안고 있었다. 베트남전쟁 때 가족 중 누군가 사망하거나 부상한 것. 2006년 8월 중앙대 안성캠퍼스 문예창작과에 교환학생으로 온 투위( Thuy)는 외삼촌이 베트남전쟁 때 사망했다.

투위는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고, 책으로도 읽어서 전쟁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서도 한국에 대한 평소 생각을 말하길 다소 꺼렸다. 그러던 투위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베트남 사람 중 한국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요. 전쟁 때문이죠. 저도 베트남에 있을 때는 그랬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친구를 사귀고 한국의 가정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모두들 친절하고 좋은 것 같아요.”

다소 서먹하게 시작한 이날 식사자리는 가벼운 술과 음료를 마시는 여흥시간으로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베트남 학생 대부분은 한국말이 유창하고 한국 노래 실력도 상당했다. 베트남에 부는 한류 영향 덕분이리라.

부산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보 람 수언(Vo Lam Xuan)은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국가는 첫째 중국, 둘째 프랑스, 셋째 일본, 그 다음이 미국”이라면서 “한국은 베트남전에 참여했지만 이들 국가에 비하면 큰 역할을 하지는 않았고, 이 사실을 베트남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베트남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다 싫어하지는 않는다는 것. 보 람 수언은 “슬픈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앞으로의 발전과 양국 우호관계에 나쁜 영향을 끼쳐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이들을 초대한 목적도 같다. 김씨는 “내가 치열하게 싸웠던 것만큼 베트남에 대한 애착이 크다”면서 “전쟁은 이제 과거의 일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경제적으로 유대가 가장 깊고, 손을 잡으면 두 나라 모두 앞으로 훌륭하게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을 전해주기 위해 이들을 부른 것이다”라고 말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들은 38년이라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어느덧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棟

김진선 씨 부부(가운데)가 저녁 만찬에 초대한 베트남 대학생들과 건배로 우정을 나누고 있다. 맨 오른쪽은 한국·베트남친선협회 상임부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외대 지역국제대학원장 조재현 교수.



주간동아 2007.01.02 567호 (p46~46)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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