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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害 없이 밤 꾸미는 ‘빛의 마술사’

조명 디자이너 이연소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光害 없이 밤 꾸미는 ‘빛의 마술사’

光害 없이 밤 꾸미는 ‘빛의 마술사’
‘조명 디자이너’ 이연소(38) 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초였다. 2002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시작된 ‘야간경관 조명’ 프로젝트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때였다.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도시의 밤 풍경이 무척 밝아지고 화려해졌음을 금세 느낄 수 있었다.

서울시가 2002 한일월드컵에 맞춰 한강의 교각과 올림픽대로, 도심의 문화재 등에 형형색색의 조명등을 달아 시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며 큰 ‘재미’를 보자, 지방자치단체들이 너도나도 야간조명 프로젝트에 나선 결과였다. 당시 이연소 씨는 야간경관 조명업체로 많이 알려진 ㈜누리플랜의 환경디자인연구소 소장이었다.

그는 서울시의 월드컵 프로젝트 중 하나인 ‘야간경관 기본계획’에 참여한 이후 월미도 문화의 거리, 고창읍성 야간경관, 차이나타운과 영종도 등이 포함된 인천 중구 야간경관, 암사대교 경관 조명을 디자인했다. 또 2005년엔 서울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옛 본점)에 우리나라 최초로 LED 경관 조명을 설치해 서울사랑시민상을 받았으며, 새로 복원된 청계천 3공구(삼일아파트-신답철교 구간) 경관 조명 총괄 디자이너로서 빛이 바람에 반응하는 ‘3세대형 조명’을 도입해 해외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는 야간경관 조명이라는 ‘노다지’를 발굴해 잘나가고 있는 조명회사의 소장이었다. 그러나 야간경관 조명에 대한 질문을 받은 그는 조곤조곤 ‘광해(光害)’의 문제점을 들면서 “조명을 하지 않아야 대상물이 산다”는, 조명업체 소장답지 않은 설명을 했다. 야간경관 조명은 빛이 아니라 어둠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일이라는 그의 말은 밝게 빛나는 도시의 밤 풍경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그런 그가 올해 7월 회사를 그만두고, ‘이연소 조명연구소’를 차렸다고 한다. 동시에 서울시립대 대학원 조경학과에서 박사 논문을 마친다고 했다. ‘결국’이란 말이 어울리는 변화였다.



“조금 천천히, 조명도 조금 낮춰보려고요. 조명회사에 있다 보면 경영을 생각해야 하니까 조명이 사업이 되죠. 그러다 보면 시간이 걸리는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기 어려워요. 내가 가진 색깔을 아직 잃지 않았을 때 회사에서 나오고 싶었어요. 몇 개 프로젝트를 하면서 ‘진실’이 통한다는 어렴풋한 믿음이 생겼거든요.”

야간경관 조명 분야 개척자 … 노다지 놔두고 나홀로 연구소 차려

서울시립대에 있는 그의 ‘연구소’는 단출했다. 대학 내 어디엔가 손바닥만한 크기라도 ‘이연소 조명연구소’라는 문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연구소는커녕 조경학과 박사과정 연구자들과 함께 쓰는 방에 책상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아, 우리 집 방 하나가 ‘조명연구소’입니다. 직원은 저 혼자인데, 올해 잘하면 프로젝트 하나 수주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서재를 겸한 ‘조명연구소’에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줄 조명기기 샘플들이 있다고 진지하게 설명했다. 1년 전 그는 노다지를 캐고 있었고, 지금도 각각 수십억 예산을 투입해 야간경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전국의 지자체만 19개라는데, 독보적인 조명 디자이너가 ‘나 홀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월드컵 이후 조명업체가 많이 늘어난 건 사실입니다. 이들은 조명 설비 납품업체고 저는 조명 디자이너인데, 조명 디자이너는 사실 갈 데가 없어요. 조명이란 전구를 달아서 밝게 하면 되는 것이지 ‘디자인’이 필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저와 함께 청계천 조명 디자인을 했던 후배도 고민 끝에 ‘조경 설계’로 진로를 바꾸더군요.”

그가 돈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만든 ‘야간경관 기본 계획서’들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일반적인 사업계획서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건 사업이 끝났을 때 얼마나 멋진 모습이 되고, 얼마나 많은 관광 수입과 부수 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나 그가 만든 계획서의 대부분은 야간경관을 할 장소가 가진 역사성,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관련된 취재 보고서였다. 예를 들면, 그가 기본 설계한 ‘서울 성곽 야간경관 계획서’에는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사대문 안팎을 가르는 성곽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가 묘사돼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샅샅이 뒤진 결과였다.

“처음엔 토성이었던 것에 작은 돌을 쌓고, 세종 때 큰 돌을 쌓고, 박정희 대통령이 기중기로 거대한 돌을 옮김으로써 쌓이고 형성된 장소의 역사성을 빛으로 드러내야 하니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특징을 ‘한국적인 빛’으로 표현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돈을 벌자면 그가 처음 시도한 ‘열주 조명’(월미도) ‘바람 조명’(청계천) 등을 패턴화해 특허를 내면 되겠지만, 다른 장소에 같은 조명을 두 번 쓸 수는 없다는 것이 ‘장소성’에 대한 그의 고집이다.

그는 빛이 마약과 같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밝은 빛이 가져오는 공해에 무뎌지고, 점점 더 밝은 빛을 원한다는 것이다. 서울 동대문 지역에서 밤새 영업하는 대형 의류쇼핑몰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과도한 빛의 경쟁’이 두터운 먼지에 반사돼 일종의 ‘백야’ 현상, 즉 심각한 ‘광해’(이 지역에 가면 ‘웅’ 하는 진동 현상이 있다)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또 주택가를 환하게 밝히는 주유소도 ‘광해’의 원인이 된다.

남보다 더 밝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어두운 공간을 만들어 대상을 빛나게 하는 것, 빛을 철학으로 바꾸는 것이 ‘이연소 조명연구소’의 설립 이념이다.

“조명기들을 설치한 뒤, 각각의 등을 조정하고 조율해서 ‘한 장면’이 만들어지면 ‘O.K’ 사인을 내요. 그건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완벽한 조화를 이끌어내는 순간이죠. 그 즐거움 때문에 조명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한 듯싶습니다.”

아, 그의 부모님이 지어준 ‘이연소’라는 이름도 빛과 함께 살라는, 그의 미래를 비춰준 ‘등불’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주간동아 561호 (p58~59)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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