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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세대 ‘귀신과 미신’에 흠뻑

영화·만화 속 ‘살생부’‘인형 주술’ 등 현실로 끄집어내 … 인터넷선 유령사진 검색 인기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1020세대 ‘귀신과 미신’에 흠뻑

1020세대 ‘귀신과 미신’에 흠뻑
11월9일 밤에 열린 영화 ‘그루지2’ 시사회. 영화 시사에 앞서 퇴마사로 유명한 김세환 법사가 주도하는 ‘진혼제’ 등 퇴마의식이 열렸다. 촛불과 부적 등을 통해 귀신을 쫓아낸다는 의식이다. 원혼과 퇴마사 등이 등장하는 영화 내용에 맞춘 홍보전략이긴 하지만, 최근 젊은 층에게 어필하는 코드가 무엇인지를 엿보게 한다.

시사회에 참석한 이영미(25) 씨는 “호기심 반, 믿음 반이다. 무의식이나 영혼이 비과학적이라는 증거도 없지 않느냐”면서 “죽음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누구나 관심 있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혈액형과 지역감정 연결 편견 부추기기도

1020세대 ‘귀신과 미신’에 흠뻑

영화 ‘데스노트’에서 사과는 사신의 먹이다.

2일 개봉해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한 ‘데스노트’에도 인간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사신(死神)이 등장한다. 사신이 이름을 적으면 그 사람이 죽게 되는 명부를 주인공인 라이토가 손에 넣게 되고, 라이토가 ‘나쁜 인간’을 없애 이상사회를 만들고자 하면서 벌어지는 공포스런 상황을 그린 영화다. 동명의 일본 만화를 영화화한 것으로 설정이 황당함에도 정교한 에피소드들, 사신들과 주인공 라이토, 그를 추적하는 L 등의 두뇌싸움이 숨가쁘게 진행된다. 만화 ‘데스노트’는 일본에서 최단 기간 1000만 부의 판매 기록을 세운 메가히트작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년간 가장 많이 팔렸다.

‘데스노트’가 일종의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누구든 ‘나도 데스노트가 있다면’이라는 ‘가정’을 해보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영화사가 ‘데스노트가 있다면 누구의 이름을 쓰겠는가’라는 ‘장난 섞인’ 설문을 던지자 누리꾼(네티즌)들은 1위로 ‘불량식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진지한’ 대답을 했다. 주인공 라이토와 마찬가지로 ‘데스노트’를 통해 ‘공공의 적’을 없애고 싶은 바람이 은연중 드러난 것이다.



1020세대 ‘귀신과 미신’에 흠뻑

11월9일 밤 ‘그루지2’ 시사회에서 거행된 진혼 의식. 공포영화에 귀신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이런 의식을 마련했다는 것이 퇴마사와 영화사 측의 설명이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데스노트’의 광고 카피인 ‘이름을 쓰면 죽는다’를 흉내낸 주술도 유행한다. 친구들끼리 ‘저주의 노트’를 만들어 이름과 죄명을 ‘빨간색’으로 써서 밤에 찢거나 불태우는 것은 초보적인 방법. 초등학교 3학년인 김소원 양은 “지푸라기 인형에 못을 박아 밤 12시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저주하는 사람의 이름을 네 번 부르고 인형을 두고 온다. 다음 날 못만 남아 있으면 저주가 통한 것이다. 나도 믿지 않았는데, 나를 자꾸 놀리던 친구에게 이 방법을 썼더니 그 친구가 깁스를 하고 왔다”며 저주를 ‘확신’했다. 김양은 “사촌 오빠들에게 배웠다”고 말했는데, 실제로 인터넷에선 수십 가지의 ‘저주 방법’이 유포돼 있다.

최근 네이버 등 포털 검색어 순위 1위에 잇따라 ‘유령 사진’과 ‘ 귀신 씌인 집’이 오른 것도 눈길을 끈다. ‘유령 사진’은 외국의 유령연구 전문가가 카메라 발명 이후 지금까지 촬영된 유령 사진들 중에서 조작이 없다는 근거가 확실한 사진 10컷을 ‘엄선’한 것으로 인터넷 블로그 등을 타고 ‘귀신처럼’ 퍼져나갔다. 1위 사진은 영국의 화재 현장에서 ‘태연한 모습’으로 찍힌 소녀 귀신인데, 수백 년 전 같은 곳에서 일어난 화재로 죽은 소녀로 추정된다는 것.

‘귀신 씌인 집’은 케이블채널 엠넷(mnet)에서 방송하는 ‘미해결사건파일 SS501의 SOS’의 부제로, 폭력사건을 ‘귀신 씌인 집’의 이야기로 풀어나가면서 피해자를 SS501이 구조한다는 내용이다. 사람이 한 짓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폭력 내용이 잔혹하다는 게 핵심이지만, 방송 후 누리꾼들 사이에 실제 화면에서 ‘귀신을 봤다’는 제보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인터넷을 떠도는 또 다른 망령으로 혈액형과 지역감정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을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특정 혈액형을 ‘왕따’시키는 혈액형 성격 타입은 인터넷에서 ‘지식’으로 자리잡아 실제 결혼시장에서 ‘기피’ 배우자형을 하나 더 추가했다. 대선을 앞두고 지역감정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 역시 경상도에서 충청도, 강원도까지 세분화돼 인터넷을 휩쓸고 있다.

가수 신해철 씨는 최근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네이션’에서 “이제는 인터넷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편견들과 적극적으로 싸워야 할 때”라며 분노하기도 했다.

“현대인 심적 괴로움 귀신 탓으로 돌려”

과학기술이 일상을 지배하고, 매일 네트워크 혁명과 기술 발전이 일어나는 시대에 어리거나 젊은 누리꾼들이 귀신과 저주술, 각종 편견과 미신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퇴마사’인 김세환 법사는 “사회가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생겨날수록 빙의(憑依)된 이들이 늘어나 퇴마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면서 “현대인의 5~10%는 귀신에 씌어 괴로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상당수 현대인들이 심적 괴로움을 겪다 결국 귀신에게 원인을 돌린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폴 비릴리오 같은 사회학자들이 일찍이 경고했듯, 인터넷은 귀신 같은 비과학적인 존재나 지극히 사적인 경험을 사이버 공간의 ‘정보’로 유통시키면서 수많은 누리꾼의 ‘현실’로 만들어버린다. 디지털 정보, 즉 기계의 속도는 너무나 빠르고,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정보가 덧붙여지고 왜곡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천천히 반응하고 판단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사람은 수동적으로 귀신과 미신과 편견으로 가득한 또 하나의 현실에 내던져진다.

만화전문 출판사 대원의 황소연 씨는 “ ‘데스노트’ 외에도 ‘프리스트’(성민우 작) 등 요즘 많은 인기 만화가 인간의 의지가 작동하지 않는 말세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를 보인다”고 말한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정신과 전문의)는 ‘어떤 타입에 대한 애매하고 보편적인 특성을 자신만의 특징으로 이해’하는 ‘바넘 효과’를 들어 “사람들은 인터넷상의 이런 정보에 스스로를 맞춰 살려는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면 ‘난 이런 타입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라고 말한다.

‘데스노트’나 지푸라기 인형의 저주는 누리꾼들의 웃어넘길 농담일지 모른다. 정말 공포로 다가오는 것은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는 귀신들과 폭력적인 편견들이 세상을 스스로의 눈으로 이해하기를 포기한, 혹은 이해 불가능한 상황에 처한 우리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주간동아 561호 (p32~33)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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