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0

2006.04.11

골프로 망한 자, 골프로 일어서다

  • 입력2006-04-10 1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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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로 망한 자, 골프로 일어서다

    맨 왼쪽이 최영식 씨, 가운데가 우간다 2인자 존 키셈보.

    아프리카 우간다 수도 캄팔라 시내에 자리 잡은 우간다 골프클럽(GC)에서 교민 한 사람을 만났다. 그의 이름은 최영식(60). 최 씨는 전라도 고창 토호 집안의 맏이로 태어나 동국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짧은 직장생활 끝에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집안 기둥뿌리 뽑으려고 작정한 거지요.”

    한때는 집권 여당의 지구당 위원장으로 지역구에서 출마했으나 황색바람에 한 잎 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어느 날 기나긴 미몽에서 깨어나고 보니 정치판에 휩쓸려 다닌 지 12년 동안 그 많던 시골 재산은 다 날아가고 없었다. 그는 당시 집권당 핵심 실세였던 K 씨를 찾아갔다.

    “나 이제 더 이상 정치 못 하겄소. 먹고살 자리 하나 마련해줘야 쓰겄소.”



    최 씨는 법원의 별정직으로 들어가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월급봉투’라는 걸 받아들고 감격에 젖었다.

    우간다 교민 최영식 씨, 골프 통해 최고 로비스트 ‘명성’

    “내 인생에서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살아본 게 법원 별정직 6년이 전부였지요. 그때는 정말 행복했는데….”

    그런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더니 공직자 골프 금족령이 내려졌다. 수없는 경고에 몇 번의 시말서를 쓰고 최 씨는 곰곰이 생각했다.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장기이며 체력관리 수단인 골프를 일요일에도 못 하게 하는 나라는 내가 살 곳이 아니다.’

    최 씨는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북악산을 향해 ‘감자’를 먹인 뒤 1994년 이종사촌이 살고 있는 우간다로 날아갔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먹고살 길도 찾기 전에 800달러를 주고 우간다 GC 회원권을 샀다. 우간다 GC 회원들은 우간다를 움직이는 정·관·재계 거물들이었다.

    회원 챔피언십에서 거뜬히 우승한 뒤 최 씨는 자비로 홀마다 야드마크를 박았다. 우간다 GC 회장이자 대통령인 무세베니의 동향 심복이며 경찰청 부청장인 키셈보가 감사의 표시로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최 씨는 한술 더 떠 두바이에서 대형 포터블 냉장고 3대와 비치파라솔, 탁자 6조를 수입해 키셈보에게 기증했다. 우간다 GC에 그들이 상상도 못한 그늘 집 세 개가 생긴 것이다. 우간다에 골프연습장이 없다는 걸 안 최 씨는 자기 집 널따란 잔디밭 마당에 그물을 세웠다. 그러자 새벽마다 그에게 한 수 배우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키셈보를 비롯해 건설장관, 국방차관, 국회 외무분과위원장, 검찰총장, 장성들…. 샤워장을 만들고 우간다 최고의 요리사를 고용해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그들이 원하는 식사를 최고급 레스토랑처럼 대접했다.

    최 씨의 정치인생 12년은 완전 실패작이었지만, 그때 갈고닦은 친화력은 지금 우간다에서 빛을 발한다.

    그는 한국타이어 우간다 총판을 운영하며 정부 차량에 타이어를 독점 공급, 우간다 타이어 시장을 떡 주무르듯 좌지우지하고 최고급 벤츠를 타고 다닌다. 그의 집엔 남녀 하인이 넷이요, 4명의 현직경찰이 2교대로 북한제 소총을 들고 경비를 선다. 그는 지금 제약회사 설립 준비에 여념이 없는데 이 정도는 약과다.

    최영식 씨는 우간다 최고의 로비스트다. 그를 통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골프로 망했다 골프로 일어선 골프 새옹지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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