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0

2006.04.11

중국 대학교수들 학술부패와의 전쟁

논문 표절·실험자료 조작 등 잇따르자 자정 안간힘 … 당국도 “블랙리스트 만들겠다” 동조

  • 베이징=김수한 통신원 xiuhan@hanmail.net

    입력2006-04-05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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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대학교수들 학술부패와의 전쟁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중국 대학생들. 학술부패 근절 운동으로 요즘 중국 대학가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학술부패 근절을 위한 공개서한 보내기를 주도한 지린대 법학대학의 덩정라이 교수(작은 사진).

    중국 대학교수들이 학술부패 근절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논문 표절, 실험자료 조작, 인용원문 왜곡 등 학술부패는 중국 대학의 고질적 병폐. 3월20일 중국의 대학교수들은 교육당국에 학술부패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에 서명한 교수는 무려 109명. 모두 저명한 중견 인문사회과학자들이다. 이들은 또 학술부패 근절 활동에 적극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향후 표절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반드시 공개할 것이며, ‘표절 범죄자’는 학계에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

    중국 대학들은 1995년 발표된 대학 개혁 프로그램 ‘211공정’을 시작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이른바 ‘선택과 집중’ 원칙에 따라 국가에서 우수 대학을 선별, 집중 육성하는 것이 중국판 ‘BK21’ 사업인 211공정의 핵심이다. 중국 정부는 21세기 중국을 이끌어갈 100개 우수 대학을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교수 109명, 제도적 장치 마련 촉구 서한에 서명

    학교운영비의 대부분을 국가 예산에 의존하는 각 대학에 211공정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갖춰야 했다. 지방 대학들끼리 합병해 덩치를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매년 일정 양의 저서 출간이나 논문 발표를 의무화하는 교수평가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대학당국은 국가로부터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교수는 승진과 연구기금 확보를 위해 더 많은 연구 성과가 필요했다. 매년 각 대학에서는 엄청난 양의 논문이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그 질은 검증되지 않고 있다. 이런 학술 환경은 학술부패가 뿌리내릴 최적의 토양을 제공하는 법.

    중국의 시사지 ‘신문주간(新聞週刊)’ 최근호에 따르면 안후이성(安徽省) 소재 사범대학의 교수 6명이 승진 심사를 위해 제출한 연구 성과가 모두 표절과 대필로 얼룩졌던 것으로 밝혀졌다(이들은 모두 파면됐다).

    중국 학계가 그동안 이러한 풍토에 대해 손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이번 서명을 주도한 지린(吉林)대 법학대학 덩정라이(鄧正來) 교수 등이 펼쳐온 공개비평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 덩정라이 교수를 비롯한 학자들은 학술비평 사이트(www.acriticism. com)를 운영하며 전국적으로 각종 표절 사례 등을 수집, 이를 공론화해왔다.

    외국소설을 베낀 작품을 자신의 창작물인 양 발표했던 베이징대학 영문과 황쫑잉(黃宗英) 교수의 표절행위는 한 누리꾼이 이 사이트에 제보함으로써 덜미가 잡혔다. 한 저명 사회과학자 역시 최근 펴낸 전공서적의 표절 시비로 한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사건은 해당 교수가 이 사이트에 공개 사과문을 게재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중국 대학교수들 학술부패와의 전쟁

    학술부패 근절 운동을 벌이는 중국 대학교수들이 운영하고 있는 학술비평 사이트.

    하지만 부정행위를 뿌리 뽑고자 하는 학계의 자정 움직임은 종종 ‘학교 보호주의’라는 장벽에 부딪히곤 했다. 일부 대학이 소속 교수의 표절 사실을 아예 숨겨버리거나, 밝혀지더라도 미미한 처벌을 내리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다. 정부 예산에 목매는 대학당국으로서는 ‘표절 파문’이 대학 평가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정치협상회의 위원이자 저명한 학자인 왕쯔카오(王子鎬)는 최근 “학술부패를 저지르는 개인과 이를 비호하는 대학은 이미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 이익공동체가 되었다”며 학교 보호주의의 배경을 지적했다.

    대학의 교수 감싸기가 최대 장애물

    표절을 밥 먹듯 하는 교수 중에는 학교 측의 비호로 여전히 행정책임자 자리를 지키는 사람도 있다. 지난해 12월 성(省) 연구기금 신청을 위해 제출한 논문 대부분이 표절로 드러나 학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산터우(汕頭)대학 후싱룽(胡興榮) 교수는 여전히 대학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으며, 원저자의 공개사과 요구도 거절했다.

    공개서한에 서명한 대학교수들은 표절 교수를 대학에서 내쫓고 표절행위를 방조하는 대학당국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무원 학위위원회와 각급 교육행정당국에 관할 대학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라고도 요구했다. 중국 각 대학에 학술부패를 다루는 규범이나 상설기구가 마련돼 있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됐는데, 교수들은 교육부가 나서 ‘학술기율중재위원회’를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교수들의 활동은 중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각종 언론매체가 학술부패 문제를 크게 보도하는 등 관행이란 이름으로 횡행하던 학술부패가 사회 이슈화된 것이다. 교육부는 학술부패 조사에 착수했고, 쉬관화(徐冠華) 과학기술부장은 언론과의 회견에서 “학술부패를 일으킨 학자들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대학가 역시 술렁이고 있다. 특히 졸업논문을 준비 중인 석·박사 대학원생들은 더욱 엄격해질 논문 심사를 걱정하는 분위기다. 석사과정에 있는 한 대학원생은 “평소 건성으로 논문지도를 하던 지도교수가 직접 전화를 걸어와 문제 없는 논문 작성을 당부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문 지킴이’를 자임하고 나선 교수들의 이번 활동이 중국 학계에 만연한 학술부패를 뿌리 뽑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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