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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실종, 공천 잡음 … 흔들리는 한나라당

돌발 악재 엎친 데 헤게모니 쟁탈전 덮쳐 … 천막당사·농군학교 처방전 국민들 ‘냉담’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원칙 실종, 공천 잡음 … 흔들리는 한나라당

원칙 실종, 공천 잡음 … 흔들리는 한나라당

3월30일 강원 원주시 가나안농군학교. 식당으로 이동 중인 의원들.

2005년 12월 말 한나라당 김형오 외부인재영입위원장은 “병역의무 회피, 납세의무 회피, 철새정치인, 파렴치범은 영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피피새치’ 불가론이다. 3개월이 지난 지금 이 원칙은 어떻게 됐을까.

진의장 경남 통영시장. 98년 자민련 후보로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그는 곧바로 탈당을 감행했다. 그리고 2003년 10월 무소속으로 보궐선거에 출마해 홀로서기에 성공했고, 2004년 총선 직전 열린우리당에 입당해 영남의 여당 단체장이라는 희소가치를 만끽하다가 2005년 9월 우리당 둥지를 박차고 나왔다. 6개월 동안 무소속으로 신분을 세탁한 그는 2006년 2월 ‘한나라호’에 안착했다. 탈당과 입당을 반복한 그의 정당 선택 기준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다만 힘의 논리에 입각한 실리주의라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고, 현란한 그의 정치 기술에 한나라당의 ‘피피새치’ 불가론은 빛을 잃었다.

당초 5·31 지방선거는 한나라당의 압승 분위기였다. 전통적으로 지방선거에 강한 한나라당의 면모와 정부 여당의 실정(失政)에 힘입은 한나라당의 기세는 대세론을 몰고 오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암운(暗雲)’이 짙어졌다. 당 소속 현직 광역단체장들이 연쇄 탈당하는가 하면 최연희 전 사무총장의 성추행 사건과 이명박 서울시장의 테니스 파동, 허남식 부산시장 부인의 관용차 사용 의혹 등 돌발 악재가 터져나오며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여기에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의 때 이른 헤게모니 쟁탈전도 전개되는 양상이다.

16개 광역단체장 중 12~13지역의 승리를 장담하던 한나라당의 목소리는 갈수록 잦아들고 있다. 반면 수세에 몰렸던 여권은 서서히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강금실-진대제’를 지렛대 삼아 총력전을 펼 태세다. 위기를 느낀 한나라당 지도부는 천막당사를 방문하고 가나안농군학교로 몰려가는 처방전을 꺼내 들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5·31 지방선거 분위기 가라앉아



지방선거를 2개월여 앞둔 현재 한나라당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은 원칙을 저버린 당 운영과 공천 문제로 귀결된다. 특히 중진들과 영남권 인사들의 내천(內薦) 시비가 심상치 않다. 서울 서초구 한나라당 서울시의회 의원 공천에서 현역 시의원을 밀어내고 공천장을 거머쥔 이모(한나라당 차세대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씨. 그는 당 고위직의 친딸로 알려졌다. 당 주변에는 ‘혈연공천’ 의혹이 감돌았고, 지역구의 반발 목소리가 여의도로 전달됐다.

당 클린공천감찰단에는 현역 의원과 관련된 금품수수 제보가 수없이 들어온다. 클린공천감찰단이 가장 심각하게 보는 곳 가운데 하나가 경기도. 감찰단은 홍문종 경기도당 위원장이 의정부에서 내천자(內薦者) 10명과 함께 ‘단합대회’를 한 의혹을 적발했다. 경기 의정부 시의원인 모씨가 홍 위원장의 대리인 행세를 하며 일부 구의원 공천 희망자 2명한테서 1000만원씩 수수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돈은 뒤늦게 돌려준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찰의 내사까지는 피하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영남의 ‘집권여당’이다. 지역 권력은 그들이 독점하고 있다. ‘제왕’으로 떠오른 그들은 공평무사한 공천을 강조하면서도 뒤로는 사천(私薦)을 일삼는다. 대구지역에서 구청장 출마를 노리던 한 인사는 최근 “지역구 한 의원이 공천 약속을 어겼다”며 소속 의원과의 돈거래 및 골프 외유 등과 관련한 내용을 폭로했다. 관련 의원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지만 검찰은 즉각 수사에 들어갔다.

이 와중에 탈당 행렬도 줄을 잇고 있다. 공천 방식에 불만을 품거나 지역구 국회의원과의 갈등 때문에 한나라당을 탈당하는 인사들이다. 권철현 경남 산청군수가 한나라당을 탈당,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것은 3월 초. 그 뒤를 이어 경남 의령군수 후보로 거론되던 김채용 전 경남 행정부지사도 당초 예상과 달리 한나라당 공천 신청을 포기했다. 그들은 무소속 연대를 꾀해 ‘영남의 집권여당’ 한나라당의 심판론을 거론할 태세다. 김태환 제주지사, 이원종 충북지사의 탈당 및 불출마 선언도 매끄럽지 못한 당의 인재영입과 관련이 있다.

당 하부조직이 이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면 당 지도부라도 나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이런 문제에 한발 비켜나 있다. 특히 황제 테니스 사건을 둘러싸고 박 대표와 이 시장 사이를 떠도는 미묘한 흐름은 당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은 이해찬 전 총리의 골프 파문 때에는 일사불란하게 당력을 집중해 대응했다. 그러나 이 시장 사태 때 보인 당의 반응은 다소 달랐다. 이계진 대변인은 “이 시장이 해명하고 사과한 마당에 중언부언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수준의 논평으로 일관했다. 박 대표가 의도적으로 방관했다는 그럴듯한 해석도 따라붙고, 이 시장 주변에서 불만이 터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

서울시장 후보 놓고 朴-李 대립 양상

두 사람의 경쟁과 갈등은 서울시장 영입과 관련한 문제로 들어가면 더욱 첨예해진다. 이 시장은 영입론에 무게를 싣는 쪽이다. 경쟁력 있는 외부인사를 영입, 기선을 제압하자는 것이 이 시장의 지론이자 필승전략. 정몽준 의원과 정운찬 서울대 총장 등이 시장실 주변에서 나오는 대안 인물들이다. 시장실에서 출발한 이런 밑그림과 “만나서 얘기를 하자”는 이 시장의 메시지는 박 대표에게도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대표는 이런 제의에 가타부타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당에서는 이를 놓고 무수한 말들이 쏟아졌다.

당내 혼란상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자 3월28일 이재오 원내대표가 나서 “당이 우왕좌왕하는 것처럼 보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틀 뒤 당 인사들은 모두 강원도 원주의 가나안농군학교에 입소, 정신교육을 받아야 했다. 천막당사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는 출구를 찾기 어렵다는 자기반성에서 나온 참회의 고행길이다.

올해 초 윤여준 전 여의도연구소장은 “머리로는 시대정신의 흐름을 인식하면서도 가슴으로는 여전히 전 시대적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기 혼돈에 놓여 있다”고 한나라당을 진단한 바 있다. 한나라당이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주간동아 2006.04.11 530호 (p10~10)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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