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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미술작품은 로또?

가격 급등으로 ‘묻지마 구입’ 경향까지 … 국내 화랑들 작품 선점 위해 중국행 러시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중국 미술작품은 로또?

중국 미술작품은 로또?

개관 기념전 ‘아름다운 냉소주의’가 열리고 있는 ‘아라리오 베이징’ 내부. 중국 ‘포스트89’ 1세대의 톱스타로 꼽히는 위에 민쥔의 ‘테라코타 전사들’이 중앙에 설치돼 있다. 왼쪽은 같은 작가의 ‘뒷마당’, 오른쪽은 수 지엔구어의 ‘쥬라기’.

아마추어 컬렉터인 김모(42) 씨는 부쩍 잦아진 중국 작가의 전시 소식만 들으면 잠이 오질 않는다. 4년 전 그는 서울 인사동의 한 작은 화랑에서 쩌우 춘야라는 낯선 중국 화가가 그린 ‘초록개’라는 작품을 보고 한눈에 마음에 들어 가격을 문의했다. 약 2000만원이란 대답을 들었다. 비슷한 크기의 한국 중견작가 작품에 비하면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었지만 유럽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중국의 현대미술 작품이란 점과 ‘메이드 인 차이나=저가’란 편견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최근 한 미술전문지를 통해 이 작가의 비슷한 크기 작품이 1억원대로 폭등했을 뿐 아니라 초기작은 아예 구경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4년 전 2000만원짜리 작품이 지금은 1억원대

김 씨 같은 ‘아마추어’뿐 아니라 전문 학예사와 컬렉션을 갖춘 기업 미술관들도 같은 이유로 속을 끓이긴 마찬가지다. 한 중국통 큐레이터는 “10년 전에 작품 구입을 거부했던 한 미술관이 최근에야 중국 작가 작품이라면 뭐라도 ‘조용히’ 보여달라고 한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미술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걸 숨기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미술작품은 로또?

‘아라리오 베이징’ 외관.

한국의 대중문화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떠들썩하게 중국에 상륙하는 동안 중국의 현대미술은 ‘헬리콥터’(구첸칭, 상하이 다륜현대미술관 부관장)를 타고 세계 문화계에서 수직 상승했다.

우리나라의 화랑과 미술관에서도 부지런히 중국 작가들을 소개해왔다. 지난 한 해 동안만 해도 ‘동북아 현대목판화전’(일민미술관), ‘시티넷아시아2005’(서울시립미술관), ‘한중현대수묵전’(서울시립미술관), ‘중국현대미술특별전’(예술의전당 미술관, 갤러리 미 주최) 등 중국 작가들이 대규모로 참여하는 기획전이 여기저기에서 열리고, ‘중국 미술이 몰려온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랐다. 하지만 이는 미국과 프랑스, 일본과 호주 등의 현대미술이 소개되는 해외 작가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의 현대미술은 2000년을 전후해 세계 미술계의 중심에 진입했고, 2006년 한국 미술, 특히 미술시장의 가장 큰 이슈가 됐다. 베이징과 상하이발(發) 미술 소식이 곧 인사동과 사간동 미술 소식이 된 것이다.

이를 실감하게 한 것은 2005년 12월10일 아라리오 갤러리가 ‘거대한 중국 시장에 수류탄을 계속 던지느니 원자폭탄을 투하한다’며 베이징의 신흥 부촌 왕징 지우창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미술관을 연 사건이었다. 또한 이보다 앞서 우리나라의 컬렉터와 작가가 만든 대안공간 ‘이음’이 중국의 ‘홍대앞’이라는 베이징 ‘798 따샨스’에 진출해 중국 퍼포먼스 작가 탕송의 미디어전을 열었고, 2006년 3월에는 서울 강남의 표화랑이 역시 베이징에 ‘표갤러리 베이징’을 오픈한다. 우리나라 최대 옥션회사인 서울옥션(가나아트갤러리 계열)도 올해 중국에 진출할 계획이다.

중국 미술작품은 로또?

2005년 11월 홍콩 크리스티에서 6억4000만원에 팔려 전 세계 미술계에 충격을 준 위에 민쥔의 ‘투쟁가들’(Fighters).

이들은 중국에 한국 작가들을 소개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실제 표화랑이 이용덕 서울대 미대 교수의 전시를 중국 미술관에서 여는 등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이윤을 남겨야 하는 상업 화랑들이 미술시장 자체가 형성되지도 않은 중국에 한국 작품들을 팔기 위해 진출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전 세계적으로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중국 작가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작품을 선점하기 위해 베이징에 갤러리를 설치하는 것이다.

3월12일까지 열리는 개관 기념 ‘아름다운 냉소주의’ 전에 참여한 중국 톱스타급 작가들 왕광위, 위에 민쥔 등과 전속 계약을 맺은 ‘아라리오 베이징’ 윤재갑 디렉터는 이렇게 말했다.

“베이징과 상하이에 이른바 ‘나까마’라 불리는 딜러들만 50~60명이 진을 치고 있다. 미술관 간판을 건 곳에 소장작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건물만 확보해놓고 유명 작가 그림 하나만 잡으면 1년 임대료는 나온다는 계산이다. 작가들도 수십 개 화랑과 거래를 하면서 판매 신고를 하면 세금이 엄청나기 때문에 다 불법 유통시킨다. 제대로 갤러리를 열기 위해서는 중국 19개 부처와 협의해야 한다. 현재 중국 미술시장은 혼돈 그 자체다. 톱스타 작가들은 중국에서도 100억원대 재산을 갖고 있어 돈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한국 전시 등을 통해 얻은 신의와 세계 주요 미술관 소장 노력의 약속 때문에 우리와 전속 관계를 맺는 것이다.”

2005년 우리나라 상업 화랑들이 서둘러 중국에 진출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경매회사 홍콩 크리스티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품의 ‘묻지마’ 구입 열기 때문이었다. 2005년 11월 경매에서는 위에 민쥔의 그림이 낙찰 예상가의 10배가 넘는 6억4000만원에 팔려 화제가 됐다. 홍콩 크리스티 구매자 중에는 우리나라의 컬렉터들도 끼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중국현대미술특별전’에는 ‘이제 떠오르는’ 작가들이 참여했음에도 우리나라의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기관·개인 컬렉터들에 의해 작품 대부분이 팔려나갔다.

얼마 전부터 중국 현대미술 경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서울옥션의 큐레이터 권선희 씨는 “홍콩 크리스티에서 5월과 11월에 경매가 열리는데 그때마다 왕광위 등 중국 대표 작가의 미술 작품이 3~4배씩 오르고, 서울옥션에서 경매가 벌어질 때는 2배씩 오른다. 이른바 ‘차이나 블루칩’은 거래가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말한다.

90년대 초 체제 비판 작품으로 서구에서 호평

이와 함께 우리나라 기획자들도 중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기획자는 2006 미디어시티서울 총감독 이원일 씨다. 우리나라에서 ‘중국현대미술특별전’을 기획한 그는 상하이 다륜미술관의 2005 ‘상하이쿨’전을 성공시켰고, 2006년 9월5일 시작될 상하이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선정됐다. 이 감독은 우리나라의 중국 미술 열풍에 일조했다는 점과 중국 작가들을 통해 세계적 큐레이터가 된 리치엔팅, 후한루 같은 대열에 올라서겠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우린 이웃나라 중국을 너무 몰랐어요. 제가 한국 미술계에 대해 여기를 보라고 충고하며 중국에서 ‘생중계’를 하고, 화랑을 발로 뛰며 중국 작가들을 소개했지요. 중국과 한국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한국 작가들도 동반 상승할 수 있을 겁니다.”

중국 미술작품은 로또?

①‘중국현대미술특별전’에 참여한 히센의 유화 ‘스모크 앤 위스키’. ②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대립시킨 웽페이준의 ‘해변의 목욕(Bathing of sandy beach)’. ③ 펭젠지의 ‘중국 2005’. 공허한 눈이 트레이드마크. ④ 표화랑이 2005년 우리나라에 초청해 전시한 천수샤의 ‘시대의 얼굴’. ⑤ 중국현대미술 1세대 인기 작가 왕광위의 ‘위대한 비판’.

오랫동안 ‘죽의 장막’ 안에 있던 중국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은 물론이고, 1980년대에 들어서야 개방정책을 펴기 시작한 중국에서 고도 자본주의의 한 얼굴인 현대미술이 발전하여 ‘어느 날 갑자기’ 세계 미술시장의 ‘로또’가 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어떤 예술적 현상이든 마찬가지지만, 특히 중국 현대미술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중국을 세계 경제망으로 편입시키려는 서구와 이를 이용해 이익을 끌어내려는 중국 정부, 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기점으로 무제한의 정신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로움을 맛본 ‘포스트89’ 작가들의 긴장 관계를 먼저 알아야 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만 접하던 중국인들은 80년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정책을 펴면서 간헐적이고 단편적이나마 서구 미술과 대중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80년대 중반부터 89년까지 서구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개념에서 빌려온 작품들이 나타났다. 89년엔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탄생을 알린 ‘중국현대미술전’이 열렸고 톈안먼 사태도 터졌다. 톈안먼 사태와 반체제 지식인들의 집단거주지 연명원이 강제 해산되는 사건(96년)이 벌어지자 탄압을 받던 중국 아방가르드 작가와 큐레이터들은 해외로 흩어졌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은 자발적으로, 반은 어쩔 수 없이 개인주의적이고 고립된 삶을 살게 된 황용핑·왕두·위에 민쥔 등 ‘포스트89’ 작가들의 작업이 바로 중국 현대미술의 출발점이 되었다.

젊은 날의 이상이 악몽으로 끝나는 것을 목격한 예술가들은 새로운 질서를 세워 현실을 발전시키려 하기보다는 초현실주의나 팝아트를 통해 자기 자신, 즉 중국에 대해 냉소하거나 중국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어린이의 시체와 동물의 사체를 조합해 보존액에 넣기도 하고(중국에서만 가능한 작품 소재), 전시장에서 총을 발사하기도 했으며, 정부의 탄압을 피해 3시간 동안만 게릴라 전시를 벌이기도 했다.

“중국 미술 작품들이 92년 프랑스 퐁피두센터의 ‘대지의 마법사’전을 통해 서구에 소개되자 마오쩌둥과 공산체제를 비판한 작품들은 서구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 이를 리치엔팅이 ‘냉소적 리얼리즘’과 ‘정치적 팝’이라 정의한 것이다.”

짝퉁 생기고 거품론, 중국 미술 경계론도 등장

97년 우리나라에 처음 중국 현대미술 작가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중국현대미술의 단면’(선재미술관)의 기획자 김선정 씨는 “‘대량생산’되는 현재 중국 현대미술에 비해 ‘포스트89’ 1세대 작품들은 비판 정신의 진정성이란 면에서 탁월하다”고 말한다.

2000년 ‘판타지아’전을 베이징 초기의 대안공간에서 여는 등 일찌감치 중국 현대미술과 네트워킹을 이어온 김 씨는 일본문화재단의 제안으로 2007년 일본 작가들을 중국에 소개하는 대형 전시를 열 예정이다.

미술시장에서 중국 현대미술이 ‘로또’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에 대해 김선정 씨 등 미술 전문가들은 적잖은 우려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김 씨는 “중국 미술은 결코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니며,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냉정한 평가 없이 거래를 하는 것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피카소의 모든 작품이 걸작은 아니다”고 말한다.

중국 미술작품은 로또?

중국 미술계가 신뢰하는 한국의 기획자들. ⑥ 전 아트선재센터 부관장 김선정 씨.⑦ 대안공간 ‘루프’ 기획자로 ‘아라리오 베이징’ 디렉터인 윤재갑 씨. ⑧ 2006 상하이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선정된 이원일 씨.

이원일 감독도 “2세대 작가들 중에는 1세대의 ‘짝퉁’이 많다”고 말한다. 심지어 중국의 비평가 필리 중앙미술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중국 미술은 중국 사회에 뿌리를 두지 않고, 전시회의 목적에 맞춰 중국적 이미지만을 제공했다. 컬렉터들이 미친 듯이 이런 그림을 사들이면서 중국 정부와 외국 컬렉터들이 이익을 배분하기도 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중국 현대미술의 비판정신은 자본의 논리에 통합되어 매력을 잃었다고 말하는 이들이나 한국 화랑들의 중국 진출 러시에 부정적인 이들조차 중국 현대미술의 ‘핵폭발’이 적어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까지 이어지리라고 예상한다. 데미안 허스트 등 유럽과 미국의 대가들은 각국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중국전을 열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부유한 전 세계 화교들이 중국 현대미술의 컬렉터가 되어 그림 가격을 높이고 있기도 하다. 중국 현대미술품 컬렉션에 매우 신중한 입장인 김선정 씨도 “중국의 컬렉터들이 젊은 데다, 땅이 넓어 비행기 날개 같은 거대한 작품을 사들이는 건 중국 미술의 잠재력이라 할 만하다”고 말한다.

중국 측 인사의 말에 따르면 2010년경까지 베이징 등에 무려 500개의 미술관이 더 건립될 것이라고 한다. 인해전술은 예술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현대미술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베이징이 세계 미술의 중심이 되면 ‘문화중심도시’ 광주 비엔날레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우리 미술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중국 미술작품은 로또?

우리나라 컬렉터와 작가가 베이징 ‘798 따샨스’에 설치한 대안공간 ‘이음’의 야외 공간(왼쪽 사진). 전시장 ‘이음’의 입구.





주간동아 2006.01.17 519호 (p52~55)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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