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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이 만난 영화, 영화인|‘야수와 미녀’ 류승범

깊어진 연기 내공 … 충무로 넘버원 꿈꾼다

깊어진 연기 내공 … 충무로 넘버원 꿈꾼다

깊어진 연기 내공 … 충무로 넘버원 꿈꾼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시각 장애인이다. 그녀 앞에서 남자는 자신이 장동건을 닮았다고 뻥을 친다. 그런데 여자는 안구를 기증받아 눈을 뜨게 된다. 이제 남자는, 성형외과를 찾아간다. 의사는 남자의 얼굴을 이모저모 살펴보더니 고칠 것 다 고치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말한다. 관객들은 그 말을 듣고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외모는 장동건과 한참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류승범·신민아 주연의 ‘야수와 미녀’는, 미녀 부분에서는 약간 고개가 갸웃거려지지만 야수 부분에서만큼은 이의가 없다. 아주 훌륭한 캐스팅이다. 신민아는, ‘달콤한 인생’에서도 과연 한 남자의 일생을 흔들 만큼 결정적으로 매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가, 나는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야수와 미녀’에서 신민아는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물론 상대역 류승범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배우 하기엔 어려운 얼굴이라는 안티들이 데뷔 초기에 따라다니기도 했지만, 류승범만큼 개성적이고 매력적인 얼굴도 드물다.

류승범은 1980년생, 올해 스물다섯이다. ‘야수와 미녀’가 개봉된 10월27일로부터 꼭 4년 전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개봉됐다. 우리 시대의 걸작 중 하나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나이트클럽 디제이를 꿈꾸며 ‘~청바지에 아가씨~’ 하면서 개성 있는 모습으로 등장했던 류승범을 잊을 수는 없다. 류승범의 첫 35mm 영화다. 그는 그 전에 자신의 형인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16mm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조폭을 꿈꾸는 양아치로 데뷔했다. 그리고 류 감독의 단편 디지털 영화 ‘다찌마와 리’에서 임원희와 함께 출연했고, TV 드라마 ‘화려한 시절’에서 천방지축이지만 순수한 장철진으로 등장해 아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주먹이 운다’서 관객 압도하는 열연

류승범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는 야생마 같았다. 거칠었다. 다듬어지지 않았다. 제도권에서 길들여지지 않은, 그래서 오히려 풋풋하고 신선했던 그의 연기는 ‘주먹이 운다’를 거치면서 내공이 깊어진다. 그는 여전히 진화하는 중이다. 그는 송강호, 설경구, 최민식의 빅3를 잇는 남자 배우의 계보에서 그 바로 밑 세대인 황정민, 박해일, 조승우 등과 함께 자신의 연기 영역을 확보한 몇 안 되는 배우이다.



류승완·승범 형제를 압구정동 뒷골목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그들 형제를 함께 보면 ‘형제는 용감했다’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주먹이 운다’를 촬영할 때였는데, 류승범은 레게머리를 하고 있었다. 류승범은 형이 만드는 영화라도 오디션을 본다고 했다. 류승범이 뜨고 나서는, 류승완 역시 류승범을 동생이라고 무조건 출연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자신도 시나리오 보내고 오케이 사인 받고 계약서에 사인한다는 것이다.

깊어진 연기 내공 … 충무로 넘버원 꿈꾼다

영화 ‘품행제로’ ‘주먹이 운다’ 그리고 ‘야수와 미녀’(아래). 그는 ‘진화’하는 중이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연기도 된다’는 것은 류승범의 연기 철학이다. 배우라는 것이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자신이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서운 함정에 빠질 것 같아 아마추어처럼, 취미생활처럼 연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데뷔 초의 일이다. 그는 악착스럽게 이 때 묻은 바닥에서 자신만의 순결을 지켜내려고 발버둥 쳤다. 그리고 그는 이겼다. ‘주먹이 운다’의 상환을 보면, 한 젊은 배우가 얼마나 치열하게 자기 자신과 싸워 하나의 경지를 획득했는지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상대 배우인 최민식이 누군가. 당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인 최민식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류승범이 화면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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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다음 류승범이 선택한 영화는 코미디였다. ‘야수와 미녀’는 개구쟁이 같은 류승범의 매력이 잘 살아나는 영화다. 가볍지만 천박하지 않다. 경쾌하지만 휘발되지는 않는다. ‘주먹이 운다’의 무거운 분위기를 떨쳐버리고 싶어서 가벼운 코미디를 선택했다는 그는, “가급적이면 전작과는 반대되는 분위기로 다음 작품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부터 ‘주먹이 운다’까지 육체를 쓰는 액션 신이 많아서 가볍고 상쾌하고 관객들에게 좀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를 찾게 되었다. 이계벽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 영화를 하면서 내가 배우로서 휴식기를 가질 수 있겠다, 나라는 배우를 다시 한 번 정화시킬 수 있고 쉼표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선택했다. 그래서 시나리오 단계부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신의 배우 인생이 앞으로 짧으면 10년, 길어봐야 20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카메라가 앞에 있지 않는데도 배우라는 자의식에 휩싸여 24시간 연기를 하며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촬영 현장을 벗어나면 나이에 걸맞은 요즘 젊은이가 되어 자연스럽게 살려고 노력한다. 류승범의 연기가 정형화되어 굳어버리지 않는 것은 이런 노력 때문이다. 그렇다. 그는 끝없이 긴장하고 있다. 6년 전 처음 등장할 때 너무나 실제처럼 보여서 혹시 진짜 양아치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의혹의 시선을 던졌지만, 이제 그는 촬영장에서는 열심히 연기하고 보통 때는 열심히 술 마시는 청년이 되었다.

코미디 영화로 새로운 연기 도전

‘야수와 미녀’ 시사회가 끝난 뒤 류승범은 “모든 예술이 다 그렇지만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과거나 현재, 미래의 경험과 만나야 한다. 현실 속의 나도, 어떤 여자를 만날 때 나의 단점 때문에 힘들 때가 있다. 나약한 나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도 하고 강한 척도 해봤다. 그러나 그 대상이 여자친구라면, 영화 속의 구동건처럼 숨어 다니거나 피해 다니지는 않겠다”고 고백했다.

‘야수와 미녀’는 아주 유쾌하게 찍었다면서도 류승범은 정색을 했다. “그러나 촬영 현장은 나의 일터다. 어느 때부터인가 재미있게 찍는 순간이 줄어들고 있다. 슬프고 힘들다. 하지만 카메오 출연자들의 예상치 못한 연기를 볼 때, 자극을 받는다. 성형외과 의사로 출연한 가수 윤종신 씨가 ‘이렇게 고치면 살아남지를 못해요’라고 애드리브를 했는데, 아주 좋았다.”

영화 내용이 외모와 관련 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다. 류승범은 이 영화가 그러나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영화는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잘생긴 사람을 보면, 가령 개인적으로 원빈 씨를 보면 반한다. 예쁜 사람들을 보면 인간적인 호감이 생긴다. 그렇지만 나도 그런 얼굴을 갖고 싶다고 욕망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류승범은 현재 황정민과 함께 최호 감독의 ‘사생결단’을 찍고 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류승범은 디제이로, 황정민은 밴드 드러머로 나온 적이 있다. 그 이후 열 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은 친형제처럼 가까워졌다. ‘야수와 미녀’ 기자 시사회에서도 류승범이 무대인사를 하자 객석에 앉아 있던 황정민은 손 나팔을 만들어 큰 소리로 “류승범 짱!”을 거듭 외쳐 시선을 끌었다. 무대인사 중이던 류승범은 “VIP 시사회도 아닌데 그렇게 소리 지르며 소란을 떨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다가, 다시 “바쁘신데도 참석해주셔서 저를 지지해준 황 배우가 고맙다”고 말했다.

류승범의 꿈은 “꼭 여자가 아니어도, 나를 미치게 하고 순수하게 만드는 대상과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싶다”는 것이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그게 나의 생각이다.



주간동아 2005.11.08 509호 (p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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