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요리사 정한진의 맛있어요 | 서울 논현동 ‘스시 엔’

초밥 살살 돌고 입맛 솔솔 돌고

  • chjparis@hanmail.net

초밥 살살 돌고 입맛 솔솔 돌고

초밥 살살 돌고 입맛 솔솔 돌고

학꽁치와 참치살. 이쿠라(연어알)의 조화.학꽁치 머리 장식이 생선을 더 싱싱해 보이게 한다.

문득 초밥 생각이 날 때 찾는 곳이 회전초밥집이다. 유명 초밥집을 찾기엔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에게 회전초밥집들은 맛과 분위기에서 흡족함을 느끼게 해준다. 일반적으로 일식집들이 방들로 이루어진 닫힌 공간이라면, 몇 년 전부터 생기기 시작한 회전초밥집은 열린 공간이다. 그곳에는 생기가 있고 정겨움이 있다.

무엇보다도 회전초밥집의 매력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골라 먹는 재미에 있다. 눈앞을 지나쳐가는 초밥들을 보면서 먹음직스러운 초밥 하나 골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 눈과 혀가 즐겁다. 다 먹은 접시를 옆으로 밀쳐놓고 다음 초밥을 천천히 음미하고 있노라면 바삐 한 끼를 때우느라 무뎌진 미각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서울 강남 씨네시티극장 건너편에 있는 ‘스시 엔’(옛 기요스시)은 산뜻하고 널찍한 매장에 50m에 이르는 회전판이 인상적이다. 긴 회전판만큼이나 매우 다양한 초밥이 놓여 있다. 기본으로 항상 만들어내는 초밥 외에도 그날그날의 신선한 재료를 응용해 새롭게 선보이는 초밥이 있어 이 집을 찾는 이들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하고도 남는다.

오늘은 어떤 것으로 시작할까, 하는 즐거운 고민 끝에 소나무 껍질이라는 뜻의 ‘마즈가와’라는 도미 초밥을 골랐다. 소금으로 껍질을 비빈 다음 뜨거운 물을 끼얹어 껍질만 익히고 재빨리 찬물에 식혀내 껍질과 함께 회를 뜬 이 초밥은 도미살의 쫄깃함과 껍질과 함께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특유의 향이 혀를 깨우기에 충분하다. 질지 않고 고슬고슬하면서 단맛 신맛 짠맛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초밥이 생선살과 고추냉이(와사비), 그리고 간장과 잘 어우러지는 것을 확인한 혀는 이내 다음 초밥을 재촉한다.

겨울에 한창 물이 오르는 방어가 눈에 띈다. 흰 살 생선보다 두툼해야 제 맛이 나는 붉은 살 생선 방어를 얹은 초밥은 부드럽게 씹히면서 기름기가 입안을 고루 적신다. 방어 지느러미 초밥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해 씹는 맛을 주고 기름이 녹아 미끄러지듯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초밥 살살 돌고 입맛 솔솔 돌고

신라호텔 근무와 일본 유학 경력이 있는 양희현 주방장과 초밥 이야기를 하다보면 '초밥왕'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초밥집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고급 생선초밥과 사람 손이 더 간 조리된 초밥을 맛보면 된다고 한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알아보기에는 참치 뱃살(오도로)을 한 면만 그릴에 살짝 구워 그 위에 양념한 무채를 얹은 ‘아부도로’ 초밥이 제격이다. 은근한 붉은빛 사이사이로 하얀 지방이 줄무늬를 이루고 있는 배꼽 주위 살은 최고의 부위다. 그만큼 비싸지만 생선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그 맛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살짝 그을린 뱃살의 고소한 맛이 느껴지면서 서서히 녹아드는 지방과 살이 산뜻한 과일 향을 내는 무채와 어우러져 살포시 손길을 내미는데 그만 황홀경에 빠져들고 만다. 빨리 달아날까봐 천천히 씹어본다.

초밥 살살 돌고 입맛 솔솔 돌고

이마이비(날새우)를 성게알로 장식한 초밥은 맛도 색깔도 예쁘다.

긴 여운 끝에 고등어초밥 접시를 집어들었다. 고등어를 소금과 식초에 차례로 절였다가 건져내 하루 더 숙성시켜 맛이 고루 배어들게 한 이 초밥은 씹을수록 수줍게 드러나는 고등어 특유의 맛이 입안 가득 고소함을 남겨준다. 나도 모르게 싱싱한 꽃새우초밥과 전복초밥에까지 손이 가 어느새 빈 접시가 높이 올라가 있다. 아쉽지만 눈앞을 스쳐가는 맛깔스런 마키들과의 만남을 다음으로 기약하면서 단팥이 깔려 있는 부드러운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한다.

이 집에서는 친구나 연인들, 가족이 어우러져 초밥을 즐기는 모습이 정겹다. 매장 한쪽에는 테이블도 있어 그곳에 앉아 초밥을 직접 골라 먹을 수 있게 한 공간 구조도 특이하다. 너무 바쁘면 혹 방해될까봐 조심스럽지만 조리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는 즐거움도 있다. 17년 동안 신라호텔에서 근무한 조리장을 비롯해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조리사들이 날렵하고 익숙한 솜씨로 초밥을 집어내는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낯이 익으면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직접 주문하기도 하고, 조리사가 새로운 맛으로 이끌어주기도 한다.

저녁시간에는 20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이 회전초밥집은 최근 상호를 ‘기요스시’에서 ‘스시 엔’으로 바꾸고 여러 곳에 분점을 내면서 손님들에게 더 가까이 가고자 한다고 한다. 문을 나서면 벌써 다음에 올 땐 무엇에 도전해볼까 하는 설레임이 앞선다. 초밥집에서 멀어져가면서도 아직 입안에 남아 있는 여운에 미소를 짓게 한다.



초밥 살살 돌고 입맛 솔솔 돌고
● 서울 논현동 ‘스시 엔’

위치: 학동 사거리 근처 씨네시티 건너편

연락처: 청담 본점(02-540-3322),

역삼점(02-532-5599),

분당, 수내점(031-717-8812)

가격: 한 접시에 1300~7000원

영업시간: 11:30~14:30, 17:30~21:30

휴무: 설, 추석 연휴

주차, 신용카드 가능




주간동아 2005.01.04 467호 (p84~85)

chjparis@hanmail.net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8

제 1218호

2019.12.13

“긴 터널 빠져나오자 우울의 고장”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