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7

2005.01.04

“회사 먼저, 노조 먼저” 우리 회사는 달라~요

팬택앤큐리텔 노사, 업계 부러움 한몸에 … 멋있고 존경받는 기업 공통의 목표 전 직원 공유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4-12-29 18: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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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 먼저, 노조 먼저” 우리 회사는 달라~요

    팬택 계열 직원들이 자사 제품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회사 ‘현대큐리텔’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01년 5월 ‘걸면 걸리는 걸리버~’란 브랜드를 앞세운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휴대전화 사업 부문이 따로 떨어져나와 만들어진 회사지만, 단 6개월 만에 팬택 계열(이하 팬택)로 흡수되면서 단명했기 때문이다.

    사업 개시 이래 무려 10년간 적자 행진, 분사하기 직전 2001년 순손실만 1427억원에 이른 회사. 2001년 현대큐리텔의 실적은 국내 시장점유율 1%에 그쳤으니 경영진과 직원들의 사정이야 불을 보듯 뻔했다. 퇴직금조차 없이 밖으로 내몰렸고 마지못해 샀던 자사주는 휴지조각으로 변해 있었다. IMF 이후로 제자리걸음에 그친 임금 역시 직원들의 사기를 사정없이 꺾어놓았다. 노동조합은 파업까지 불사했지만 뾰족한 수가 생길 리 만무했다.

    팬택 노동조합 박덕규 위원장(당시 현대큐리텔 근무)은 “회사가 몰락하자 한때 잘나가던 대기업에서 떨어져나와 분사한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고, 설상가상으로 팬택이라는 중소 벤처기업에 합병된다는 말에 직원 모두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3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어떠할까. 인수 당시 현대큐리텔의 절반 규모에 지나지 않던 팬택은 이후 사세를 급속히 확장하며 2004년 한 해 연간 휴대전화 생산 2000만대, 매출액 3조3000억원의 세계 6위 메이저 휴대전화 제조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2002년 ‘CURITEL’ 브랜드로 국내 시장에 진입할 당시 4%였던 시장점유율이 올해는 무려 18%를 기록하며 철옹성 같던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시장가치 상승은 당연한 결과. 3년 전 박병엽 부회장과 KTB 컨소시엄이 총 476억원에 인수했지만, 지금은 시가총액만 3000억원에 이르는 우량기업으로 변모했다.

    “회사 먼저, 노조 먼저” 우리 회사는 달라~요

    팬택앤큐리텔의 경기 이천 공장 모습.

    몰락한 회사에서 3년 만에 최고 회사 탈바꿈



    겨우 3년 만에 우리 시대 최고의 M&A(인수합병) 사례로 탈바꿈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팬택 직원이라면 교과서에서나 들어봤음직한 천편일률적인 대답을 쏟아놓게 마련이다. ‘종업원을 가족처럼 여기는 경영진, 업계 최고 수준의 보상과 복지, 합리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노사관계….’

    팬택의 노사관계가 외부에서 부러워할 정도라는 점은 그리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올여름 팬택이 대우종합기계 인수전에 뛰어들었을 때, 대우종합기계 우리사주조합은 팬택과 공동인수를 선언하며 “현대큐리텔 인수과정을 보고 팬택 경영진들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고 말했을 정도. 그러나 단순하게 ‘원만한 노사관계’가 성장의 동력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따른다.

    “회사 먼저, 노조 먼저” 우리 회사는 달라~요

    박병엽 팬택 계열 부회장.

    “사실 말로는 직원들을 가족처럼 위한다는 기업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회사는 ‘종업원 중심의 회사’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최학송 경영지원본부장)

    3년 전 박 부회장이 현대큐리텔을 인수한 직후, 점령군 모양새를 내지 않기 위해 혈혈단신으로(한 명의 여비서만 수행하고) 서울 서초동 현대큐리텔을 방문한 사실은 이미 전설이 됐다. 그 자리에서 박 부회장은 “내가 여러분에게 1등 대우를 해줄 테니 여러분은 1등으로 성장하시라”고 설득했다. 이 약속은 해마다 10%가 넘는 획기적인 임금 인상으로 현실이 됐다.

    여기에 경영진의 마음 씀씀이도 직원들을 감동시켰다. 팬택에서는 해마다 가을이 되면 3000여 전 직원에게 사과 한 박스가 전달된다. 몇 년 전 박 부회장이 경북의 한 과수원에서 맛본 사과 맛이 너무 달콤해 ‘전 직원과 함께 먹자’는 생각에서 이 사과를 전 직원에게 돌렸고, 이후 이 행사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직원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

    ‘모든 종업원을 가족같이…’라는 경영진의 태도를 입증하는 사례는 이밖에도 적지 않다. 최근 팬택 직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복지 정책인 ‘직원자녀 어린이 영어캠프’가 대표적이다. 올해로 3회째인 이 행사는 초ㆍ중생 자녀 100여명을 2주간 미국인 교사와 함께 생활하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학생 한 명당 250만원 정도를 회사가 부담한다고 하니 적지 않은 선물인데, 이 또한 ‘내 가족만이 아닌 직원 자녀들도 함께 경험토록 하자’는 경영진의 적극적인 취지에서 시행됐다.

    노조 “임금 동결” 회사 “10% 인상” 즐거운 반란

    ‘직원’이란 말 대신 ‘구성원’이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팬택 경영진의 철학은 단연 임금협상 과정에서 돋보인다. 2004년 초, 전년도 경영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하자 경영진은 30억원 임금 삭감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박 부회장이 나서서 “이는 종업원의 잘못이 아닌 경영환경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한 경영진 잘못이 더 크다”며 경영진의 임금을 동결하고 생산직 사원에게는 20%의 임금 인상을 결정했다.

    놀랍게도 2005년도 임금 책정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됐다. 올해 휴대전화 시장의 경기 전망이 어둡게 나오자 팬택 노조는 2005년 임금동결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업계에서 ‘즐거운 반란’으로 부른 이번 사태(?)는 주위의 오해와 질시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미움’과 ‘갈등’이 일상화된 우리 기업들의 노사관계에서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팬택 노조의 임금동결 선언은 “회사의 발전 없이 노조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회사 경영진도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회사 측은 “아니다, 10% 임금인상을 추진하겠다”고 화답했다.

    회사가 먼저 마음을 열자 노조 역시 마음을 활짝 열어젖혔다. 올 3월 회사 측이 팬택의 김포공장과 팬택앤큐리텔의 이천 공장을 통합하기로 결정하자 노조는 회사 방침에 적극 협조하고 나섰다. 심지어 올여름에 팬택 노조는 자사 제품을 들고 한국노총 금속연맹 산하 노조들을 방문하여 휴대전화 판촉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이 행사를 통해 노조원들은 “어려운 경제 여건과 현장 경영을 직접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고, 회사 측은 “단 몇 백대의 판촉이었지만 고마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며 서로를 추켜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회사 먼저, 노조 먼저” 우리 회사는 달라~요

    2004년 5월15일 경기 김포 공설운동장에서 팬택 계열 전 직원 3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팬택계열 한마음 체육대회’ 모습.

    생산직에 내보인 팬택 경영진의 ‘종업원 중시’ 자세는 전체 직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1300여명의 연구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업계 최고대우 보장은 물론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끈끈한 관계를 내보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2003년 한 대기업과 법정소송까지 불사한 ‘인력 쟁탈전’ 당시, 팬택은 끝까지 문제가 된 연구원의 신분을 보장함으로써 한동안 과학기술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일각에서는 “잘나가는 업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종의 ‘쇼맨십’이 아닌가” 하는 시샘 어린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박삼용 노경(勞經)팀장은 “우리는 사업 계획을 잡기 전에 미리 노조에 사업 계획을 공개할 정도며, 회사 경영진이 수시로 노조 사무실을 찾을 정도로 신뢰관계 구축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앙금과 불신이 사라진 계기는 양측의 끊임없는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박 부회장은 평소 “종업원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하는 것이 오너와 CEO(최고경영자)의 능력이자 책임이다”고 강조하고 있다. 노조원들 역시 “과거 어려울 때를 거울 삼아 회사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임을 깨닫게 됐다”고 반응한다. 회사의 한 평사원은 “멋있고 존경받는 기업을 만들어보자는 공통의 목표를 전 직원이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팬택의 즐거운 실험은 오늘도 상생과 조화를 꿈꾸는 기업인들 사이에서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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