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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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마다 경기와 합숙생활 장손 노릇 제대로 못해 늘 죄송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4-09-23 1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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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마다 경기와 합숙생활 장손 노릇 제대로 못해 늘 죄송
    가족들과 둘러앉아 송편 빚고, 윷놀이하고, 차례를 지내는 평범한 명절의 풍경은 운동선수에겐 일종의 ‘사치’다. 날마다 규칙적으로 하는 연습을 명절 때라고 그만둘 수 없고, 경기 일정이 알아서 명절 때를 피해서 잡혀주지 않는 법이니까.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탁구 신동’ 유승민 선수에게 명절은 그저 마음이 좀더 심란해지는 때이곤 하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합숙생활을 하면서 명절 때 집에 가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특히 추석은 일본오픈탁구대회 일정과 매번 겹쳤거든요.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일본에 가 있거나, 일본오픈을 앞두고 한창 연습하고 있었죠. 운동 때문에 장손 노릇을 제대로 못하네요.”

    유선수의 큰아버지는 딸만 넷을 낳고 돌아가셨다. 유선수 아버지 유우향씨(50)는 유선수를 아들이 없는 형님의 호적에 올리려 했다고 한다.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유선수 아버지가 집안 제사를 지내고 있다. 1년에 5차례 제사가 있지만 유선수는 한두 번 참석하는 게 고작이다.

    “아버지 혼자 제상에 술 올리는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 죄송해요. 하지만 아버진 늘 ‘괜찮으니까 운동 열심히 하라’고 하시죠. 제삿날 아침에는 꼭 전화해서 ‘오늘 하루는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연습과 경기에 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잊지 않으시고요.”

    명절마다 경기와 합숙생활 장손 노릇 제대로 못해 늘 죄송

    유치원 졸업식 때 찍은 사진.

    운동하느라 늘 바빠 추석에 보름달이 떴는지조차 모르고 지나가기 일쑤였지만, 1999년 추석만큼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추석을 앞두고 일본오픈탁구대회 시니어 부문에 출전해 3위를 기록한 것. 고등학교 2학년에 불과한 어린 선수가 경험 풍부한 선배들과 겨룬 경기였기 때문에 더욱 갚진 성적이었다.



    “일본오픈 한 달 전에 아시아시니어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중국 왕하오 선수를 만나 이겼어요. 중국 최고 선수를 이겼다는 자신감이 좋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이번 아테네올림픽에서 왕하오 선수에게 이겨 금메달을 땄지만 사실 그 사이에 여섯 번을 졌어요. 정말 뛰어난 선수인 건 사실이에요.”

    일본오픈에서 3위 성적을 거둔 것만이 이해 추석을 특별하게 만든 건 아니었다. 상금으로 400만원을 받았는데, 이 돈으로 중학교 시절 코치였던 정운식 선생님에게 350만원짜리 중고 자동차를 선물했다. 정선생님은 지금도 이 중고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처음 탄 상금이고 해서 뒷바라지해주신 아버지를 위해 쓰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부모보다는 스승이 먼저’라며 ‘너를 잘 가르쳐준 중학교 코치 선생님께 선물하자’고 제안하셨어요.”

    유선수는 올해 일본오픈대회에 출전하지 않아 추석 때 하루 이틀 정도 강화도에 있는 집에 다녀올 수 있게 됐다. 10월20일 중국 쓰촨성(四川省) 탁구단에 임대되어 가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달콤한 휴가인 것. 유선수는 “명절 때도 쉬지 못하는 건 운동선수로서 당연한 일”이라며 듬직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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