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4

2004.09.30

남편 다섯 명 있었다고 타락했다 할 수 있나

끊임없는 전쟁으로 사별 비일비재 … 당시 상황 고려 안 한 채 ‘사마리아’를 부정한 의미로 몰아

  • 조성기/ 소설가

    입력2004-09-23 10:0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남편 다섯 명 있었다고 타락했다 할 수 있나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사마리아’의 한 장면과 포스터.

    요즈음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이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 ‘사마리아’는 2월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먼저 받고 나서 국내에 개봉됐다. ‘사마리아’는 어른들과 원조교제를 하는 어린 소녀와 그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김감독의 여느 작품들이 그렇듯 소재 자체가 충격적이고 파격적이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왜 영화 제목을 ‘사마리아’로 붙였는가 하는 논의가 오고 갔다.

    소설가 박영한은 ‘사마리아’를 소설 제목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대개 사마리아는 성적인 방종 또는 타락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아무래도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의 처지에서는 사마리아가 그런 의미로 쓰이고 있는 사실이 억울할지도 모른다.

    사마리아라는 지명은 원래 북이스라엘 왕 오므리(기원전 876~869)가 은 두 달란트를 주고 구입한 산의 주인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그 사람 이름이 세멜이었는데, 오므리 왕이 그 산에 성을 건축하고 주인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고 불렀다. 세멜의 소유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쇼므론’에서 ‘사마리아’라는 말이 나온 셈이다. 세멜이라는 이름은 파수(把守)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사마리아와 비슷한 발음인 스마랴는 ‘여호와가 보호하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남편 데려오라는 예수의 말에 “남편 없어요”

    사마리아는 주변 평지보다 100m 이상 솟아오른 해발 430m의 천연 요새였으므로 과연 여호와가 파수해주는 곳이라 이름 지을 만했다. 오므리 왕은 북이스라엘의 수도를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옮기기까지 하였다. 사마리아는 한때 이스라엘 10지파에 해당하는 북이스라엘의 수도로 번영을 누리기도 하였다. 북이스라엘 전체를 사마리아라 부르기도 한다.



    남편 다섯 명 있었다고 타락했다 할 수 있나

    사마리아 지역의 고대 유적.

    그러나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 왕 사르곤 2세의 침공으로 사마리아는 초토화되고 주민 중 2만7290명이 아시리아로 잡혀갔다. 사마리아에 남아 있던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르곤은 아시리아 본토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켜 혼혈 정책을 펼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말살하려 했다.

    나중에 이스라엘이 회복돼 아시리아와 바벨론에서 유대인들이 돌아와 나라를 재건하려 했을 때 사마리아인들도 동참하려고 했으나 거부당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순수 유대인으로서의 혈통을 지키지 못하고 민족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하면 과거사 진상조사에서 결격 사유가 드러났던 셈이다.

    역사적 시련기에 어쩔 수 없이 이방인들과 피가 섞이게 된 사마리아인들은 순수 혈통을 자랑하는 유대인에게서 소외되고 무시당하자 자기들 나름대로 성전을 짓고 성경을 마련하여 독립교파를 만들었다. 그 이후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인간관계도 맺지 않고 상거래도 하지 않았다. 수백년이 흘러도 그 후손들 역시 선조들의 선입관과 편견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남편 다섯 명 있었다고 타락했다 할 수 있나

    예수에게 물을 주는 사마리아 여인을 그린 성화

    예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다가 목이 말라 어떤 우물가로 다가갔다. 그런데 두레박이 없어 물을 길어올릴 수가 없었다. 정오 무렵 제자들이 예수만 남겨두고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간 사이 한 여자가 항아리를 이고 물을 길러 나왔다.

    대개 여자들은 시원한 저녁에 떼를 지어 수다를 떨어가며 물을 길러 나오는데 그 여자는 외롭게 혼자서 우물가에 왔다. 유대인들에게 소외당하는 사마리아인들 사이에서 또 소외당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예수는 그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하였고, 그 여인은 유대 남자가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거느냐고 되물었다.

    예수는 그 여자에게 물이라는 상징을 통하여 영적인 진리를 설명해나갔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러자 결국 그 여자는 영적인 갈증을 느끼고 예수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구하였다. 처음에는 예수가 여자에게 물을 구하였는데 이제는 여자가 예수에게 물을 구하는 상황으로 역전되고 말았다.

    그때 예수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나왔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달라고 했는데 느닷없이 남편을 불러오라니. 그 여자가 영생의 물을 마시기 위해서는 남편 혹은 남자 문제가 빛 가운데 드러나야만 했던가.

    여자는 당황한 나머지 남편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동안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도 어떤 남자와 동거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자의 대답은 참말이기도 하고 거짓말이기도 하다. 지금 동거하고 있는 남자는 정식 남편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는 남편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예수는 그 여자의 복잡한 과거를 다 알고 있었지만 여자를 끝까지 인격적으로 대하며 참으로 지혜롭게 말을 받았다.

    ‘남편이 없다는 네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옳도다’ ‘참되도다’ 이렇게 두 번이나 여자의 말이 맞다고 하면서 여자의 복잡한 과거를 슬그머니 빛 가운데 드러냈다. 엄격한 도덕 선생 같았으면 남편 다섯이나 있었던 여자가 어디서 거짓말을 하느냐며 호통쳤을지도 모른다. 남의 잘못 들추기를 잘하는 요즘 신자들 같았으면 복잡한 과거를 당장 회개하라고 윽박질렀을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사마리아 여자가 왜 그동안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대개 상식적인 접근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남성 위주의 사고에 젖은 사람들은 사마리아 여자가 자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여 남자를 갈아치웠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정욕으로 타락한 여자의 대표로 사마리아 여자를 들기도 한다.

    ‘다섯 남편’ 빌미로 ‘남자 갈아치우는 여인’ 편견

    하지만 그런 설명은 그 시대 상황을 잘 모르고 하는 얘기다. 그럼 어떻게 이 여자는 남편을 다섯 명이나 거칠 수 있었는가. 우선 전쟁으로 인한 사별을 가정할 수 있다. 로마 식민지로 있던 그 당시 사마리아인들도 유대인 못지않게 로마에 항거하는 전투를 수도 없이 치렀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를 보면 사마리아를 포함한 이스라엘 전역에서는 지금의 이라크 사태처럼 로마에 대항하는 게릴라전이 끊이지 않았다. 전투에 참가한 남자들은 로마 군병의 총칼에 무참히 죽어갔다.

    사마리아 여자의 남편들도 그러한 전투의 희생자가 됐을 가능성이 많다. 아니면 먹고살기 위해 로마 군대에 빌붙어 장사를 하다가 유대의 열혈 당원들에게 민족 반역자라 하여 암살당했을 수도 있다. 이래저래 잔인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남편들이 깔려 죽어갔기 때문에 남편이 다섯이나 됐는지도 모른다. 그 다음 질병으로 인한 사별을 가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마리아 여인의 사연을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볼 수 있다. 예수는 그 여자의 정욕적인 생활을 드러내기 위해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 여자의 억울하고 분통한 상처들을 드러내어 어루만져주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마음의 상처가 빛 가운데에 드러나면 영원히 솟아나는 샘의 근원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