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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살인시대, 싱글족의 건강별곡

  • 난나/ 만화가 nannar@jinbo.net

살인시대, 싱글족의 건강별곡

살인시대, 싱글족의 건강별곡
최근 들어 건강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부모님과 떨어져 흔히 말하는 ‘싱글’로 살다 보니 갑작스럽게 몸에 이상이 오면 겁부터 덜컥 나기 때문이다. 나는 ‘뼈가 유난히 튼튼한 아이’로 씩씩하게 성장해왔지만 독립을 선언하고 살림을 따로 낸 이후론 이상한 통증으로 새벽에 비슬비슬 눈을 뜨는 일이 잦다.

친구랑 함께 아파트를 빌려 살았던 작년만 해도 발목을 접질러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나를 부축해주고 택시비도 빌려줄 손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혼자 원룸을 얻어 떨어져나오게 된 지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심한 복통이나 두통을 만난 거추장스러운 육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저 난감하기만 하다. 응급실까지 차를 잡아타고 갈 기운이나 119를 제대로 부를 정신도 수습하지 못한 채 그저 ‘독신의 그림자’ 속에 누워 차도가 보이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반신욕 위한 튜브 바람 넣는 소리가 전기톱 소리?

발작적으로 찾아온 몇 번의 응급 상황에 그저 무력하기만 하니 이제는 애완동물에게 3분의 1쯤 뜯어먹힌 시체로 발견되겠다고 절규하던 ‘브리짓 존스’의 고독한 몸부림이 내 것만 같다. 위급할 때 편안하게 전화해 부릴 친구가 애매하다는 일반적인 독신 여성의 현실은 정서적 문제라기보다 생계형 고민에 가까운 것이다.

가늘고 길게 살아야겠다는, 자기 관리에 대한 위기 의식은 결국 삶의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첫째, 응급 상황을 맞아 신속하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비상 연락처를 확보하고 구급약 일체를 상비해두었다.

둘째, 애완동물의 사육도 포기하고(!) 일일 마감은 하루씩 앞당겨 끝내기로 했다.

셋째, 평소의 건강 상태에 예민하게 반응하기로 했다. 지역보험으로 과중한 의료보험료(한 달에 7만원 가까이 부담한다)를 납부하는 만큼 건강 상담도 수시로 받는 등 병원과 친해지기로 결심했다.

넷째, 내키는 대로 먹던 식사도 고단백, 저지방 식단으로 제때 준비하기로 했다. “삼십대가 되면 건강과 재테크가 인생의 주제가 될 것”이라던 예언을 웃자고 떠들던 5년 전을 떠올리자니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미디어에 넘쳐나는 건강 관련 정보를 관리하며 반신욕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조깅과 같은 적극적인 운동을 귀찮아하던 참에 적당히 더운물에 20여분간 몸을 담그면 생리통과 다이어트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정보는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욕조가 없는 작은 원룸에 사는 처지라서 먼저 튜브형 욕조부터 주문해야 했다. 건강한 육체와 정신은 자본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냉소로 일관해왔지만 결국 내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도 웰빙 유행과 맥을 같이하는 셈이다.

튜브형 욕조에는 전기로 작동되는 펌프가 딸려 있는데 공기를 주입하는 데 대략 5분이면 충분하다. 펑! 하고 갑자기 부풀어오르는 비주얼 임팩트가 상당해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재미있다.

내가 양인이라 온도가 적정 수준보다 높거나 물에 조금 더 오래 머무르면 열이 뻗쳐 기절 직전까지 간다는 ‘사소한’ 어려움은 있지만 필요한 투자로 여기고 꾸준히 하고 있다. 아로마 오일이나 입욕 소금을 뿌리고 달콤한 향을 피워 책을 읽다 보면 삶의 풍요로움에 대한 낭만적인 확신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어제 반신욕을 하려고 튜브에 바람을 넣고 있노라니, 문득 펌프 진동음이 옆 원룸에선 유영철이 시체 자를 때 썼다는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처럼 들리겠다 싶어졌다. 그 역시 결혼 경력은 있지만 싱글이다. 연쇄 살인 용의자와 같은 오피스텔에 살던 사람들이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전동 칫솔 소리인 줄 알았다. 맙소사!” 혹은 “수돗물을 너무 많이 쓰는 것이 수상했다”고 진술했던 걸 기억해보자니, 반신욕을 시작하면서 수도 사용량이 폭증했던 점도 닮았다.

아마 우리는 잠재적인 피해자, 또는 상상의 가해자가 되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웰빙을 위해서는 반신욕 튜브보다 가스총이 더 필요한 세상일까. 건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데 반신욕과 유기농의 추구가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우울하게 가늠해본다.



주간동아 446호 (p96~96)

난나/ 만화가 nannar@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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