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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책 | 한국사 이야기

‘민중의 역사’ 10년 공든 탑 우뚝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민중의 역사’ 10년 공든 탑 우뚝

‘민중의 역사’  10년 공든 탑 우뚝
지리산 백무동에서 화전을 일구며 사는 김돌쇠는 이사한 사촌형 김길동을 찾아 서울로 나들이를 왔다. 기차를 타고 경성역에 내려 네온사인을 본 김돌쇠는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대문 안으로 들어선 그는 ‘과연 만호 장안이로구나’라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20세기 초 식민지 치하에서 근대화의 바람이 불어닥친 한반도의 변화를 묘사하고 있는 ‘한국사 이야기’ 시리즈 마지막 22권 ‘빼앗긴 들에 부는 근대화 바람’의 첫머리다. 이를 마지막으로 우리 역사 5000년의 통사를 담은 역사학자 이이화씨(67)의 ‘한국사 이야기’가 완간됐다. 기획 집필 편집에 이르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린 대장정이었다. 개인이 쓴 한국통사로는 가장 많은 분량을 담았고 각 시대의 사건과 정치, 문화, 경제에 대한 연구경과를 일관된 체제로 종합 서술했다.

“무엇보다 평등의 역사를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백정이나 종, 핍박받는 여성들의 시선에서 그들의 지위와 삶을 부각시키려 했습니다.”

애초 내세웠던 ‘읽히는 역사책’이라는 모토처럼 시종 흥미로운 서술도 눈에 띈다. 기술 방법에서도 모든 시대나 지역에 걸쳐 개괄적으로 서술하는 기존의 통사적 방식에서 벗어나 시대적 영향 아래 정치 문화 사회적 사실들을 가로 세로로 교직해놓았다.

용어 사용에서도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인다. 고조선을 조선, 남북국 시대를 남국 신라와 북국 발해, 임진왜란을 조일전쟁, 병자호란을 조청전쟁, 일제강점기를 일제 식민지로 부른 점 등은 용어 하나에서도 주관적 개입을 배제하고 역사의 오해를 없애려는 노력으로 읽힌다.



22권과 함께 이번에 나온 식민지 시대 3부작은 ‘우리 힘으로 나라를 찾겠다’(제20권) ‘해방, 그날이 오면’(21권)이다. 우리 역사의 암흑기에 해당하는 일제 식민지의 지배 실상과 그 극복과정으로서 독립운동의 전개과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식민지 수탈론’이냐 ‘식민지 근대화론’이냐의 일방적인 주장보다는 절충적인 시각을 견지하며 구체적인 사실을 전개해가고 있다.

‘민중의 역사’  10년 공든 탑 우뚝
다른 통사에서 취급하지 않았던 부분들도 눈에 띈다. 예컨대 기존 연구 업적을 대폭 수용해 식민지 시대 독립투쟁사 가운데 좌파 계열의 독립운동사를 포함시킨 것이 그것. 중국공산당 산하의 항일연군에 가담한 김일성 등의 활동도 반영했다.

개항 이후 우리 생활 속으로 급속히 파고든 서양 풍속과 물자 등을 다룬 22권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도 “1930년대 경성 거리의 신풍속도 묘사에 큰 비중을 두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평했다.

‘상투는 돌아오지 못할 과거였다. 하지만 단발에 대한 반감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 이광수가 기차를 타려고 조선인 칸에 들어섰다가 단발쟁이는 다른 칸에 타라는 욕설을 들었다. 반대로 상투를 튼 사람은 도시의 백화점 같은 곳에 들어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당초 ‘읽히는 역사책’을 표방했던 만큼 책은 민중의 삶과 일상생활의 역사를 충분히 다루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저자는 전북 장수 연화분교와 김제 금산사 월명암, 경기 구리시 아천동 자택 등으로 집필장소를 옮겨다니며 1998년부터 해마다 3~4권씩 결과물을 출간해왔다. 이를 위해 그동안 날마다 하루 10시간 넘게 작업하며 매달 300~400장의 원고를 써왔다고 한다. 2000년, 조선 건국에서 청일전쟁까지를 다룬 조선 전기편(9~12권)을 펴내 전체 분량 가운데 절반을 넘어섰을 때 견비통에 손가락과 허리 통증, 위장병까지 겹쳐 중단 위기까지 겪었다.

“몸이 불편한 데다 과연 이제까지의 연구성과를 수용해서 제대로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탓에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평생 가장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씨는 주역의 대가인 야산 이달 선생의 넷째 아들로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1945년 아버지를 따라 대둔산에 들어가 한문공부를 했다. 16살에 학교에 들어가려고 가출해 부산 등지에서 고학하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한국학에 더 매력을 느껴 중퇴하고 역사 분야로 방향을 돌렸다. 이후 민족사 생활사 민중사 복원작업에 심혈을 기울였고 역사문제연구소장, ‘역사비평’ 편집인 등을 지내며 역사의 대중화에 공헌해왔다.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사업을 주도했던 그는 올해 동학농민운동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관련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내년에는 다시 칩거해 동학농민운동사를 쓸 계획이다.

이이화 지음/ 한길사 펴냄/ 각권 330쪽 안팎/ 각권 1만원



주간동아 436호 (p88~89)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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