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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는 아직 불안하다

사격장 폐쇄 결정 뒤 폐유처리장·공장 입주설 솔솔 … 러브호텔 건축 등 난개발 우려도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매향리는 아직 불안하다

매향리는 아직 불안하다

5월13일 매향리 주민대책위원회 사무실 옥상에서 내려다본 매향리 옛 육상 사격장. 4년 전 폐쇄된 이곳에서 농민들이 국가의 허락을 받아 농사를 짓고 있다

”부우우우우웅 ….”5월13일 오후 3시 경기 화성시 우정면 매향리 상공으로 F16기 3대가 날아올랐다. 매향리 포구를 뒤흔드는 굉음이 울려퍼진다. 저공비행을 하던 F16기는 이내 농섬의 목표물을 향해 ‘투두둑’ 기관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이 소리에 익숙지 않던 기자는 심장이 떨어질 듯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주민들은 비행기가 뜨는 소리만으로도 F16기인지 A10기인지 감별해낸다. 1951년 미 공군의 쿠니 사격연습장이 매향리에 들어선 이후, 주민들에게 사격 소리는 고통의 근원이 됐다. 하지만 내년 8월이면 매향리에서 이 굉음은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대법원이 4월 매향리 미군 쿠니 사격장의 폐쇄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매향리는 아직 불안하다

F16기의 기관총 사격이 이뤄진 직후의 농섬

사격장 폐쇄 이후 매향리는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할까. 사격 중인 농섬에 황색 깃발을 찢으러 들어가거나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하는 등 강력한 투쟁을 불사해왔던 매향리 주민들은 “승리를 기뻐하기보다 앞으로 매향리가 어떻게 변모할 것인지 합의해가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진정한 바람과 꿈을 듣기 위해 날씨가 유난히 맑던 봄날 매향리를 찾은 것이다.

방문객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마을 어귀에 걸린 사격장 폐쇄 축하 플래카드였다. 주민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만난 전만규 매향리 주민대책위원장(48)은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는 1988년부터 앞장서서 사격장 문제를 알렸던 인물이다. 기자가 인사를 건네자, “이제 매향리의 화두는 생태계 복원”이라며 활짝 웃었다.

땅값 급등 … 목 좋은 곳 3배 가까이 껑충

“‘매향리(梅香里)’는 ‘바닷바람에 매화와 해당화의 향기가 묻어나는 고장’이란 뜻에서 나온 이름이죠. 그런데 사격장이 들어선 이후 더 이상 마을에서 매화꽃 향기를 맡을 수 없게 됐어요. 울창한 섬이란 뜻의 ‘농(濃)섬’은 폭격으로 크기가 삼분의 일로 줄어들었고요. 계속된 폭격으로 어족이 고갈된 바다도 숨통이 트여야 합니다. 한 번 방문한 사람들이 잊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최근 매향리 사람들에게 심심치 않게 들리는 소식은 바로 ‘오른 땅값’에 관한 이야기다. 사격장 폐쇄 결정이 내려진 매향리에 ‘개발 기대 심리’가 작용한 것. 최중언 매향부동산 공인중개사는 땅값이 조금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결 전에, 평당 25만원에 땅을 내놓은 사람이 있었는데 잘 안 팔리더구먼요. 그런데 사격장이 없어진다고 하니까, 매입자들이 땅을 35만원에 산다고 해도 주인이 안 팔려고 하데요. 평균 10만원씩 올랐다고 봐야죠. 바다가 잘 보이는 목 좋은 땅 300여평은 평당 35만원에서 100만원까지 오른 것 같던데 설사 땅값이 올라도 매향리 주민이 좋은 건 아니오. 크게 땅 거래하는 사람들은 돈 많은 외지 사람들이지 않소.”

부동산 사무실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매향리 주민들은 땅값이 오른다는 보도가 그리 반갑지 않다고 했다. 행여나 투기금지 지역으로 묶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매향리에서 ‘추고문’으로 불리며 적극적으로 사격장 반대 투쟁에 참가한 추영배씨(60)는 “바다에서 고기 잡고, 농사지으며 살아온 주민의 땅이 러브호텔이나 각종 유흥시설이 들어서는 난개발 지역으로 변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역사의 상흔을 간직한 매향리는 돈 많은 투기꾼들의 땅이 아니라 국민들의 아름다운 쉼터로 거듭나야 한다”고 못박았다.

실제 매향리 주민의 상당수는 어업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매향리의 농토는 그리 넓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60년대 한국 정부는 38만평 정도의 농토를 헐값을 주고 매입해 주민들을 그 땅에서조차 밀어냈다. 미 공군은 해상 지역을 포함 700여만평의 공간을 사격장으로 조성해 훈련을 실시했다. 사격 훈련이 이뤄지는 주중엔 어민들이 조업을 하기 위해 바다로 나갈 수조차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90년대 초반 시작된 서해안 간척 사업으로 바다의 어족이 5분의 1로 줄어들었다. 주민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국유지인 방조제나 바닷가에 불법으로 포장마차를 세워 회를 팔며 생업을 이어가야 했다. 바다를 바라보던 주민들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상황에서, 사격장이 없어진다고 크게 좋아지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곧 방조제 위의 포장마차를 폐쇄해야 한다는 서선자씨(42·여)는 “삶의 터전을 빼앗아갔으면 장사라도 좀 하게 해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매향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어부로 일하며 살아온 최영식씨(49)는 “어민들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면 그걸로 족하다. 그저 유명한 매향리산 굴과 바지락을 많이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격장 폐쇄 소식이 주민에게 ‘온전한 기쁨’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아직 여러 가지 불안한 이야기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한국해양개발연구원이 개최한 공청회에서 ‘매향리 바다를 폐유처리장으로 사용하자’는 용역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전위원장은 “분단의 역사에서 안보 논리에 희생된 매향리가 폐유처리장마저 받아들여야 한다면 매향리 주민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분노했다.

또 하나의 고민은 매향리 간척지에 공장이 들어서는 일이다. 농지 조성을 위해 만들어진 간척지가 공업 용지로 용도 변경될 경우, 어부들은 생태계 회복에 대한 희망마저 잃고 만다. 몇몇 주민들은 “과연 사격장이 폐쇄될지조차 모르겠다”고 반문하기도 했다. 수차례 미군과 한국 정부에 속아온 만큼, 대법원 결정도 과연 실행될지 의문이라는 이야기였다.

“평화박물관 조성” 주민 한목소리

매향리는 아직 불안하다

매향리의 상징물인 장승과 임옥상 화백이 만든 조형물, ‘자유의 신 in Korea.’

이러한 고민 속에서 매향리 주민들이 작은 희망을 걸고 있는 사업은 바로 ‘매향리 평화 공원 및 박물관 조성 계획’이다. 분단 역사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매향리가 우리 국민에게 ‘민족 수난의 장’ 내지 ‘교훈의 장’으로 자리잡길 바라는 뜻에서다. 생태계 복원에 중점을 두는 한편, 마을 곳곳에서 발견되는 탄피나 파괴 흔적을 전시함으로써 구조적 파괴가 인간과 자연에 얼마나 해악을 끼치는지 알리고자 한다. 매향리 주민의 고통을 형상화한 임옥상 화백의 ‘자유의 신 in Korea’와 같은 조형물이나 대책위 사무실 벽면에 그려진 투쟁 벽화는 이곳의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음악회도 꾸준히 열릴 예정이다.

사격장 반대 투쟁을 벌이며 ‘우공이산(愚公移山)’의 힘을 보여준 전위원장의 행보는 더욱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매향리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매향리 평화 공원 및 박물관 조성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매향리 발전 요구안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범국민적 추진위원회에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임옥상 화백과 환경·생태학 교수, 도시개발 전문가들이 참가해 평화박물관 조성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전위원장은 매향리 포구에 서서 자신의 굳은 의지를 밝혔다.

매향리는 아직 불안하다

매향리 앞바다의 버려진 탄피 위에 앉아 있는 전만규 위원장. 그는 강원 영월군 상동읍으로 사격장이 이전되는 것을 반대하며 5월12일 삭발을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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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중심가의 부동산 중개사무소들

“사업이 성공하려면 첫단추부터 잘 끼워야 합니다. 매향리가 생명이 숨쉬는 평화의 장이 되기 위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합니다. 반세기 넘게 국가 안보를 위해 희생된 이 땅의 역사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죠. 국유지인 사격장이 다시 주민의 품으로 돌아온다면, 매향리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성의를 모아 ‘평화 공원’으로 꾸며갈 겁니다. 매화 향기가 나는 아름다운 고장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겠죠?”



주간동아 436호 (p52~53)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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