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6

2004.05.27

“영화 인프라 불안 … 새작품은 2년뒤”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4-05-19 1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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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한 편으로 스타가 된 배우가 흔하디흔한 시대지만, 감독이 스타가 되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임권택 감독이 ‘거장’으로 자주 오르내리고, 강우석 감독이 충무로 ‘파워맨’으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정도다.

    강제규 감독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이와 좀 달라 보인다.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선 팬들에게 강감독은 장동건이나 원빈 같은 배우와 비슷하다.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비현실적인 아우라(Aura·예술작품에서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자기만의 고고한 분위기)를 가진 스타가 되었다.

    이유는 강감독이 ‘쉬리’라는 최초의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냈고, ‘태극기 휘날리며’로 ‘간단히’ 12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관객을 끌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극장 경영과 영화 배급 등 사업에 열심인 강우석 감독과 달리 그의 활동은 창작의 영역에만 한정돼 있다-그렇게 드러나 있다-는 점도 작용한 듯하다. 젊은이들은 강감독을 보며 영화에 대해 상상하고, ‘꿈은 이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할리우드 직접 가지 않을 것”



    강제규 감독을 만난 곳은 서태지의 라이브 공연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 선상이었다. 꽤 낭만적인 인터뷰가 되어야 마땅했으나, 어수선한 주변 상황 때문인지 이야기는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산다는 것이 경제적, 심리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로 자꾸만 옮아갔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한국 영화사에 큰 기록을 세워 한창 즐거움을 만끽할 때 같다.

    “여전히 50개관에서 상영하고 있고 수출 계약이 마무리 중이어서 끝났다는 느낌은 없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성공해서 한국 영화의 방향성과 연결되는 걸 보는데, 이건 정말 아니다. ‘태극기…’는 강제규란 감독 개인의 취향이고 지향성이지, 한국 영화 모두가 나아갈 목표가 아니다. ‘쉬리’가 성공했을 때도 그랬다. 모두 대작, 블록버스터를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래서 정작 ‘태극기…’ 할 때 단 한 푼도 투자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고생했다. 개인 신용대출까지 받았다. 흥행에 실패했으면 어디서 국숫집 하고 있을 거다.”

    -최근 강제규필름이 자본의 성격이 많이 다른, 공구회사인 세신버팔로와 합병했는데 별 문제는 없나.

    “함께 합병한 명필름과 강제규필름, 그리고 세신버팔로가 서로 갖지 못한 것을 공유한다는 차원이다. 자본이 안정되면 영화 만드는 데 전념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고의 흥행 감독도 걱정이 많아 보인다.

    “강우석 감독과 얼마 전에도 얘기했지만, 한국 영화 점유율이 50%를 넘는데도 영화감독들은 행복하지 않다. 영화 하나 성공했다고 와, 좋아하다 보면 빈손이다. 그동안 한국 영화계는 벌어서 손해 보는 일이 반복되어 자기 자산을 늘리지 못했다. 그래서 제작 인프라가 불안하다. 시네마서비스나 CJ가 유통망뿐 아니라 스튜디오도 만들고 기술적 인프라도 만들기 바란다.”

    -바람직한 제작비 조달은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가.

    “영화는 리스크가 많다고 제1금융권에서 돈을 안 빌려준다. 미국처럼 기획과 시나리오 등을 심사해서 담보로 대출해주면 좋겠다. 투자는 영화 망하면 날리는 거지만, 대출은 감독이 평생 갚아야 하니까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톱스타들과 영화를 찍었는데 어떤 배우를 좋은 배우라고 생각하나.

    “자신의 관습과 도덕 때문에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되지 못하고, 재단해버리는 배우가 나쁜 배우라고 생각한다.”

    -장기수 다큐멘터리 ‘송환’의 프린트 비용을 지원한 게 화제다.

    “시점이 ‘태극기…’ 잘될 때라 많이 망설였다. 괜히 과시하는 것도 아니고. 개봉 앞두고 돈이 없다는데 어쩌겠나. 김동원 감독을 좋아한다. 시사회 보니 참 잘 만들었더라. 고맙더라.”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에서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까지 강제규 감독의 영화도 모두 역사적 사회적 현실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팬터지인데, 이상하게 시나리오 쓸 때도 현실에 뿌리내리지 않은 이야기에서는 아이디어가 풀리지 않는다.”

    “영화 인프라 불안 … 새작품은 2년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 위에서 강제규 감독이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강제규 감독 영화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

    “어렸을 적 감수성이 민감한 시기에 카메라 속에서 살았고, 시를 계속 쓴 게 큰 도움이 된다. 지금도 어떤 상황을 사진 한 장면, 말 한마디로 함축해 표현하는 건 좀 잘하는 거 같다.”

    -다음 영화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남들보다 다섯 배는 더 따지는 타입이라 진도가 느리다. 여기저기 후배들 작품에 간섭도 많이 한다. 부지런하게 하면 2년 뒤쯤 되지 않을까 싶다. 블록버스터가 될 것이다. 할리우드 진출도 직접 할리우드에 가지 않고 미국과 아시아가 함께 만드는 영화를 맡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규모는 4000만 달러 예산 정도다. 아시아에서 그런 조건을 가진 감독들이 몇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제안을 많이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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