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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서 뜨고 별은 지고 ‘장군 괴담’

신일순 대장 사건 정교한 투서 한 통에서 시작 … 무기 도입 비리 제보는 왜 덮나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투서 뜨고 별은 지고 ‘장군 괴담’

투서 뜨고 별은 지고 ‘장군 괴담’

신대장 사건 수사로 주목을 끌게 된 국방부 검찰단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인 신일순 육군 대장(육사 26기)의 구속으로 군과 국방부가 술렁거리고 있다. 광주고 출신인 신대장은 호남 군맥을 대표한 인물. 따라서 일각에서는 신대장 구속을 호남 군맥 자르기로 풀이하기도 한다.

현역 대장 구속은 창군 이래 최초의 사건으로 일부에서는 그동안 국가안보회의(NSC) 쪽에서 냄새만 피워오던 군 개혁을 본격화하는 신호탄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시작은 투서였다. 이메일을 이용해 장관실과 법무관리관실 등에 전달된 무기명의 투서는 매우 정교했다고 한다. 무기명 투서는 묵살될 수 있으나 서술한 내용이 정교하고 수치가 정확하면 그냥 넘기기 어렵다. 이러한 투서가 청와대나 언론기관 등으로도 보내졌다면 엉뚱한 곳에서 사건이 터져나와 군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투서는 국방부 검찰단으로 보내졌고 결국 사건화됐다.

투서 뜨고 별은 지고 ‘장군 괴담’

부대 운영과 관련한 비리로 구속된 신일순 대장

신대장을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신대장은 결코 덕장(德將)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신대장은 실수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깐깐한 사람이다. 그에게 결재를 받으러 가기 전 부하들은 심호흡을 하며 상당히 긴장했다. 그런데도 대부분 기합을 받고 나왔다.”



신대장의 준장 시절 그 밑에서 일했던 한 장교는 “그의 독특한 성품을 견디지 못해 전역을 생각한 장교가 여러 명 있었다. 그렇게 부하가 따르지 않는데도 대장까지 올라간 것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공개된 비자금 …걸면 걸린다

깐깐한 사람이 참모로 있을 땐 주위사람은 불편할지 몰라도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휘관이 된다면 달라질 수 있다. 한 치의 빈틈도 용납하지 않는 기세에 눌려 부하들이 충정을 다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부대 지휘관들은 품위유지 차원에서 방문객에게 기념품 등을 선사한다. 군에서는 이를 위해 별도의 예산을 책정해두고 있는데, 이 예산으로는 모든 방문객에게 줄 정도로 많은 기념품을 장만하기 어렵다. 따라서 다른 돈을 전용해야 하는데 첫 번째 대상이 세칭 ‘눈먼 돈’이다.

‘눈먼 돈’이란 부대의 공사를 따낸 건설회사 관계자 등이 회식비로 쓰라며 놓고 간 돈, 이른바 ‘촌지’ 등을 말한다. 이 돈은 지휘관이 쓸 수 있는 또 하나의 판공비다.

두 번째로는 복지금이다. 복지금은 부대 예산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자동판매기 수익금처럼 부대 안에서 마련되는 것도 있다. 복지금은 써야 하는 소모성 돈이므로 담당자가 복지금으로 썼다는 명목을 만들어주면 지휘관은 이 돈으로 기념품을 만들거나 회식비용 등으로 쓸 수 있다.

투서 뜨고 별은 지고 ‘장군 괴담’

해군(왼쪽)과 해병대의 훈련 모습. 최근 국방부에는 무기 도입 비리를 고발하는 투서도 날아들고 있다.

투서 뜨고 별은 지고 ‘장군 괴담’
부대에는 복지금 외에도 부대에서 치러지는 여러 행사를 위해 배정된 예산이 있다. 소모성인 이 예산 역시 담당자가 행사비로 썼다는 명목을 만들어주면 지휘관은 이 돈도 판공비처럼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지휘관은 너무 바쁜 데다 자리 때문에라도 돈을 직접 만질 수 없어 대개 경리장교가 관리해준다.

부대 예산을 다루는 사람인 경리장교가 지휘관을 위한 품위유지비까지 함께 관리하다 보면 두 돈은 섞일 가능성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들은 부대 예산을 전용해 지휘관을 위한 판공비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에도 담당자가 지휘관에게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면박을 받는다면 사태는 투서와 같은 배신극으로 치달을 수 있다. 지휘관이 적법 또는 비법(非法)하게 사용하는 판공비는 그야말로 감춰진 비자금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돈은 군 관계자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상 공개된 자금이다.

따라서 지휘관에게 배신감을 품은 누군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터뜨릴 수 있다. 실제로 신대장 사건과 관련한 투서에는 그가 3군단장으로 있을 때 전용한 부대 예산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다고 한다. 투서에는 신대장이 부대 예산을 전용해 가족에게 물품을 사준 내용까지 나와 있어 국방부 검찰단은 신대장을 횡령 혐의로 기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일부 군 관계자들은 “신대장이 부하들한테서 인심을 잃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건의 근원을 신대장의 성격 탓으로 돌렸다. 일각에서는 사건 수사가 기무사가 아닌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데 주목한다. 군 내부 정서에 익숙한 기무사라면 사건을 ‘관례적인 것’으로 판단해 없던 일로 넘길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군 문화에서 소외돼 있는 법무관으로 구성된 검찰단은 원리원칙대로 수사할 가능성이 높다. 소식통들은 군 내부의 역학관계까지 꿰뚫고 있는 세력이 신대장을 물고 늘어졌다고 지적한다.

국방부 검찰단이 신대장을 수사하는 동안 일반 검찰은 예비역 장성을 상대로 비리 수사에 착수했다. 2002년 병역비리 수사 때처럼 군 검찰과 일반 검찰이 공조 수사를 펼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현역 때의 비리를 전역 후에 조사하는 것 또한 투서가 없으면 추적하기 힘들다.

이래저래 군은 투서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데, 이러한 투서 수사가 군을 바로 세우는 출발선이 될지, 아니면 군의 사기를 죽이는 시초가 될지는 좀더 두고 보아야 한다. 이런 가운데 신대장 사건에 대해‘호남 군맥 죽이기도 아니고 군 정화작업도 아닌 복불복(福不福)의 낚시다’라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낚시꾼은 그가 잡고 싶어하는 고기를 잡는 게 아니라 낚싯바늘이 든 미끼를 삼킨 ‘어리석은’ 고기만 잡아낸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국방부 검찰단은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부하들과 나눠 먹음으로써 인심을 잃지 않은 큰 범죄는 잡지 못하고, 작게 먹는 대신 깐깐하게 통솔하다 부하들한테서 인심을 잃은 작은 범죄만 잡아내고 있다는 비유인 셈이다.

현재 국방당국으로 날아드는 투서는 대략 두 부류. 하나는 신대장 사건처럼 부대 예산을 전용했거나 모 해병대 장성처럼 부하한테서 인사 청탁으로 돈을 받거나, 부대 공사를 발주해준 대가로 건설업자에게서 돈을 받은 3군사령부 소속 장성처럼 부대 운영과 관련된 비리다.

다른 하나는 무기 도입과 관련된 비리로 금액이 엄청나다는 게 특징이다. 무기 도입 관련 투서에서 비리 혐의자로 지목되는 사람들은 김대중 정부 시절의 실세들로, 이중에는 국방장관을 지낸 A씨와 무기획득 업무를 담당했던 B씨와 C씨, 그리고 현역 장성인 D씨 등이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 조영길 국방부 장관은 5월11일 기자 간담회에서, “이러한 투서로 인해 더 이상 군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무기명 제보자는 자신의 충정이라고 하지만 남을 고발하고 음해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을 하면서도 조장관은 결국 신대장에 대한 수사를 허가했다.

무기 도입과 관련된 투서는 수사가 되지 않을까. 아무튼 신대장 수사를 계기로 국방부에서는 또 다른 전직 고위인사들도 조사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괴담’이 떠돌고 있다. 무기 도입 비리에 대한 수사를 외면하면 할수록, 이 괴담의 생명력은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436호 (p50~51)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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