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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노무현의 실용주의

‘헌재 판결’ 민심 재판받다

탄핵 찬·반 양측 골수론자들 “눈치 보기” 비난 … 與엔 실리, 野엔 체면 ‘윈-윈형 결과’?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헌재 판결’ 민심 재판받다



헌재가 이곳저곳 눈치를 본 듯한 판결로 스스로의 위상만 높이려 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도 결정문에 노대통령의 행위를 강하게 질타하는 ‘경고’ 메시지를 담은 것을 두고 한 법조인은 이렇게 말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대통령의 위법행위가 파면에 이를 정도로 중대하지는 않다”면서도 “헌법을 경시하는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의 권한과 권위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헌재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직전 “탄핵은 적절치 않지만 대통령은 사과해야 한다”는 상대적 다수인 국민여론을 따른 셈이다. 헌재가 파면을 피하고 위법 의견을 수용함으로써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기각’이라는 실리를 얻었고, 한나라당은 그나마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도 ‘완전한 승리’ 혹은 ‘처절한 패배’를 안겨주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같은 모순을 내포한 탓에 헌재의 이번 판결은 골수 노대통령 지지자나 골수 탄핵 찬성론자들에겐 “이곳저곳 눈치를 본 흔적이 역력한 정치적 판결”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는 것이다.



헌재는 대다수 국민의 뜻대로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도 노대통령에게 이례적으로 ‘훈계’까지 덧붙였다. 탄핵을 의결한 행위에까지 일부 명분 또는 면죄부를 주는 결정을 내린 것. 노사모의 한 관계자는 “헌재가 일부 헌법 법률 위반을 적시했다고 해서 국민의사와 동떨어지게 추진된 탄핵이 면죄부를 얻는 것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애매했던 일부 헌법 규정에 준거 마련 ‘큰 성과’

사실 헌재의 이 같은 결론은 재판관들의 성향을 미뤄볼 때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이다. 헌재는 정치성을 배제하고 ‘규범적 판단’을 했다고 강조했으나, 재판관의 인적 구성 자체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인지라 결론도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헌재 시스템은 인적 구성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재판관들은 추천기관에 따라 여당성향과 야당성향으로 나뉘는 게 사실이다.

헌재의 판결이 모순된 형태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음에도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심판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애매했던 ‘헌법과 법률을 위반할 때’라는 헌법 규정을 해석하는 준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임지봉 건국대 교수(헌법학)는 “헌재의 이번 결정은 대통령 탄핵은 ‘중대한’ 위법 행위일 때 가능하다고 헌법 해석을 내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헌법 제65조 제1항은 국회는 대통령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때’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은 한국 헌정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어서 이에 대한 학계의 연구도 거의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었다. 제65조 1항을 ‘중대한’ 범죄에 한정해 해석해야 하는지가 탄핵심판의 가장 큰 이슈였다.



이와 관련해 헌법학 대가인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는 ‘주간동아’ 인터뷰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 ‘중대한’을 넣어 해석한다면 (노대통령이) 탄핵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중대한’이라는 명문이 헌법에 없는데 어떻게 만들어넣을 수 있겠는가. 미국 역시 가벼운 형사범죄(misdemeanor)가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헌재는 결정의 기준으로 ‘중대한’을 선택했다. 헌재는 노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결정문에서 “대통령 파면은 국가적 손실과 국정 공백은 물론 국론 분열로 인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중대한 법 위반의 경우에만 정당화할 수 있다”면서 “노대통령이 일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파면할 만큼 중대한 위반은 아니다”고 밝혔다.

‘중대한’ 표현 설명 미비·소수의견 비공개 ‘논란 계속’

하지만 헌재의 판결이 “이곳저곳 눈치를 본 흔적이 역력한 판결”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에서다. 한 원로 법학자는 “헌재가 헌법 및 법률 위반을 지적하면서도 중대한 위반은 아니라고 한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면서 “‘중대한’을 넣어 해석한 이유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아무튼 이번 판결로 헌법 제65조 1항에 대한 해석 논란은 일단 종지부를 찍게 됐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탄핵에 필요한 중대한 법 위반’에 대해 헌법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는 등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했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평가할 수 있을 때 등이라고 별도로 해석했으나 제65조 1항에 ‘중대한’을 넣어 해석하게 된 법리적 이유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재판관들은 ‘대통령의 위법 및 위헌’과 관련해 경중에 대한 견해차가 있었지만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탄핵 사유가 되느냐에 대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소수의견이 별도로 표시되지 않음으로써 파면을 주장한 재판관들이 “소수의견은 어떤 식으로든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고 한다. 결국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재판관들의 소수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법 위반이 강조된 결정문이 나오게 된 셈이다.

헌재가 소수의견을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탄핵심판 사건 주심인 주선회 재판관은 선고공판 직후 “찬성과 기각이 몇 대 몇인지는 죽을 때까지 말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탄핵 반대와 찬성이 6대 3으로 갈린 것으로 전해졌으나 아직까지 확인된 바는 없다. ‘인용’ 쪽에 섰던 재판관들의 수와 주장이 언제까지 비밀로 지켜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헌재는 “재판관들이 소수의견을 결정문에 밝히는 것은 헌법재판소 스스로가 헌법재판소법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밝혔으나, 탄핵심판의 경우 소수의견 공개가 헌재법 위반인지는 그동안 학계 및 법조계에서 의견이 엇갈려왔다. ‘규범적 판단’을 강조한 헌재는 소수의견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적어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정치적 판단’을 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어쨌든 헌재는 대통령과 야당이 완전하게 만족은 못하더라도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렸다. 헌재가 눈치를 보며 스스로의 위상만 높이는 판단을 내렸다는 비판과 함께 화합과 새 출발을 강조한 헌재의 ‘고뇌’가 엿보인다는 평가가 혼재하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제65조 1항에 ‘중대한’을 넣어 해석한 이유에 대한 설명 미비와 소수의견 비공개를 둘러싸고 국가를 2개월 동안 혼란의 소용돌이로 내몰았던 여야 정치인들은 당분간 갑론을박을 계속할 것 같다.



주간동아 436호 (p28~30)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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