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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회사 ‘문화마케팅’ 눈에 띄네

광고보다는 공연 지원 등 우회 전략 총력 … 직원 기 살리고 회사 이미지 제고에 큰 역할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담배회사 ‘문화마케팅’ 눈에 띄네

담배회사 ‘문화마케팅’ 눈에 띄네

BAT의 '청소년 흡연예방사례공모전'의 포스터와 KT&G의 상상체험단 및 서태지 블라디보스토크 공연 포스터

5월11일 ㈜KT&G(옛 한국담배인삼공사)는 색다른 보도자료를 냈다. 서태지의 블라디보스토크 공연 등을 포함한 ‘상상체험단’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불편을 겪은 사람들에게 그 시간만큼의 여행에 준하는 ‘상상티켓’을 제공하기로 참가자 ‘전원’과 합의했다는 내용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KT&G는 젊은 기업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창사 이후 최대의 문화마케팅 사업으로 ‘상상체험단’을 기획했다. 한류(韓流) 열풍이 닿지 않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국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스타의 공연을 열고, 800명의 젊은 민간 외교사절단이 동행한다는 것이었다. 무려 35억원을 투자한, 기업단위로는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형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출항을 앞두고 배가 바뀌는 바람에 300명 남짓한 참가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고, KT&G 관계자들은 5박6일의 일정 내내 곤욕을 치렀다. 그런데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뱃길에서 KT&G는 참가자 ‘전원’과 후속조치에 대해 합의를 이뤄냈고, 행사 책임자였던 황인선 부장(마케팅)은 서태지 다음으로 많은 박수를 받으며 배에서 내렸다. 몇몇 참가자들은 “KT&G에서 일하고 싶다. 신입사원 뽑을 때 지원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KT&G ‘상상티켓’ 제공 합의

담배회사 ‘문화마케팅’ 눈에 띄네

한국필립모리스와 함께 하는 재미있는 발레 공연

뜻밖의 반전이었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행사가 열리면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고, 책임 회피와 조직의 거만함으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일들도 자주 일어난다. 그런 점에서 KT&G가 ‘저자세’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인내를 보이며 참가자들과 협상 진행을 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는 KT&G의 독특함 때문이라기보다 담배회사의 특수한 사회적 위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나쁘다고 손가락질하는 상품을 소비자에게 팔 수 있는 최고수 세계의 마케팅 전략을 빼놓고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한 마케팅 전문가는 “TV처럼 효율적인 매체 광고가 금지되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낸다. 담배업계야말로 마케팅 전략이 엄청나게 빨리, 그리고 다양하게 발전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흡연자는 구석에 몰리고 담배회사는 거액의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하는 시대다. 시장이 위기에 처해 있는지라 담배회사 사이의 경쟁은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담배 광고는 엄격히 제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담배는 TV 광고가 금지돼 있고, 잡지 광고도 품종군별로 60회 이내에서 가능하며 판촉행위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담배회사 직원들은 이것이 시장자본주의에 어긋난다고 불평하는 일을 금기시한다. 사적인 자리에서조차 그렇다.

대부분 담배회사는 청소년흡연예방 캠페인에 엄청난 돈을 낸다. 얼마 전 한 담배회사가 ‘저타르 담배가 덜 해롭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란 신문 광고를 냈다가 법을 어긴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 같은 딜레마의 출구로 담배회사들이 총력을 기울이는 분야가 문화마케팅이고, 입소문을 통한 일대일 마케팅이다.

우리나라 시장을 나누고 있는 KT&G와 BAT코리아(던힐, 켄트 등), 필립 모리스, JT(마일드 세븐 등) 등 주요 담배회사들은 문화와 스포츠 지원에 다른 어느 기업들보다 열심이다. 5월 초 한국기업메세나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의 문화 후원 규모에서 KT&G는 유통도매업에서 1위를 차지했고, 외국계 기업에서 필립 모리스는 삼성르노자동차에 이어 2위였다(BAT는 메세나 비회원으로 조사에서 제외).

유유미 한국기업메세나 홍보팀장은 “필립 모리스는 국내외에서 문화 지원을 많이 해오다 지난해에야 정식 회원으로 가입했다. 금연운동이 확산되면서 경쟁 담배회사들이 문화계 지원을 늘린다고 발표하자 가만있어선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원과 후원 대상도 다양해 인기 공연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발레나 오케스트라, 순수 미술, 자동차 경주, 초청하기 어려운 해외 재즈 뮤지션들의 크고 작은 공연에까지 손길을 내민다.

KT&G는 뉴욕 필 내한공연,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라보엠’에 이어 얼마 전 볼쇼이 발레를 후원했고, BAT코리아는 모터레이싱 챔피언십 후원으로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BAT코리아 지사가 있는 경남 사천 예총을 지원하는 것도 흥미롭다.

외국에서 메세나 활동으로 더 유명한 필립 모리스는 IMF 외환위기로 문닫을 위기에 처한 서울발레시어터를 10년 넘게 지원하고 있으며, 서울팝스오케스트라와 함께 지방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열어 문화계의 갈채를 받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한 유명연예인은 “뉴욕에서 한 담배회사가 가난하고 전위적인 아티스트들을 지원하는 것을 보고 담배 브랜드를 바꿨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화계라고 담배회사를 무조건 환영하지는 않는다. 한 미술관 큐레이터는 해외작가 초대전을 앞두고 스폰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한 담배회사 마케팅 담당자와 만났다. 담배회사는 후원에 의욕을 보였으나, 미술관은 내부 회의 끝에 돈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전시 현수막에 담배회사의 엠블럼이 들어가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가난한 예술인들이 눈물을 삼키며 담배회사의 후원을 사양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무용이나 전위적 아티스트들은 담배회사와 잘 맞는 편이지만, 목을 사용하는 성악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기피 현상이 특히 심하다.

이처럼 문화마케팅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서태지의 블라디보스토크 공연은 후발주자인 KT&G가 역전을 노려 만든 깜짝 프로젝트였다. 황인선 부장은 “느슨하고 낡은 공무원 기업의 이미지를 날려버리기 위해 어느 기업도 해보지 못한 아이디어와 규모, 젊은 소비자들을 단숨에 끌어모으는 과감한 기획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담배회사 ‘문화마케팅’ 눈에 띄네

5월8일 서태지의 블라디보스토크 공연이 열린 디나모 스타디움 앞. KT&G 현수막이 거리를 가득 장식했다.

각종 공연과 스포츠에 대한 담배회사들의 지원이 공개적인 문화마케팅이라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 숨겨진 전선도 치열하다. 이른바 물 좋은 문화계 트렌드세터들이 참석하는 파티를 지원하여 “무슨 담배가 요즘 뜬다”는 입소문을 내는 방식이다. 트렌드세터들이 모이는 런칭 파티나 클럽 파티에 담배회사들은 조용히, 그리고 아낌없이 지원을 한다. 그들이 원하는 바는 유행을 앞서가는 멋진 선남선녀들이 자사의 담배를 멋지게 물고 여기저기를 활보해주는 것뿐이다.

애연가 사이트 ‘아이러브스모킹’를 운영하는 성형주 인컴허브 대표는 “담배회사의 광고가 금지돼 있는 상황에서 문화계의 현장에 있는 젊은 애연가들을 동원하고, 입소문을 통해 시장을 잠식하는 방식은 상당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담배회사의 문화마케팅은 물론 다른 회사의 소비자를 빼앗아오기 위한 것이지만, 담배회사 직원들 자신을 향해 있기도 하다. 이어지는 소송과 시민단체 등의 도덕적 비난, 정부의 따가운 시선과 감시를 받으면서 담배회사 직원들은 억울함을 느끼기도 하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공사’의 공무원으로서 담배를 생산해온 직원들의 갈등이 심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때로 회사 내부의 비판자들을 갈 곳 없게만들기도 한다.

브랜드컨설턴트인 강희중씨(브랜드알어스 대표)는 “사람들에게서 지탄받는 회사에 인재들이 선뜻 오겠는가. 좋은 인력과 가족들이 자부심을 느끼기 위해선 물질적 보상뿐 아니라 기업이미지를 위한 문화마케팅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KT&G가 1000억원의 ‘사회공헌비용’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하거나, BAT가 때맞춰 ‘사회보고서’를 발표하는 이유도 같은 흐름이다.

사실 담배뿐 아니라 엄청난 이익을 남기면서도 도덕적 비난을 받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술과 복권, 경마가 그렇다. 자동차는 엄청난 공해물질과 인명사고의 원흉이고, 휴대전화는 전자파와 산업쓰레기를 만들어낸다.

담배회사들의 치열한 문화마케팅은 현대 자본주의 기업들의 다가올 미래처럼 보인다.



주간동아 436호 (p42~44)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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