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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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참사 후보지 널렸다

숱한 사고에도 안전시설·의식 낙후 여전 … 찜질방·대학 실험실·복합상영관 등 위험요소 가득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4-04-29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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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참사 후보지 널렸다

    용산역 광장 앞 인도 붕괴 사고 현장.

    4월25일 낮 12시,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과 강변역 사이 선로에서 일어난 화재는 우리나라의 안전불감증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노후한 고압선에서 발생한 불꽃이 번져 지하철 운행이 1시간여 동안 중단된 이날 사고를 보며 휴일 시민들은 대구지하철 참사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뿐만 아니다. 4월19일 부천 LG백화점 철재 가설물 붕괴, 20일 인제 예비군 수송버스 추락, 21일 가평 마사회 버스 전복 등 4월 들어 대형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온 국민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던 1994년 성수대교와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99년 씨랜드 화재와 같은 참사가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재발 방지’와 ‘사후 대책 수립’ 목소리를 높였던 우리나라는 지금 얼마나 안전해져 있는가. 대형사고가 발생했던 현장을 점검해보고, 더 큰 참사를 막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할 때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지하철

    지하철은 지난해 2월 발생한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의 여파로 대형 참사에 대한 우려가 특히 높은 곳. 최근 세계 곳곳에서 철도에 대한 테러 공격이 발생하면서 우리나라는 과연 안전할까 불안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4월25일 발생한 서울지하철 2호선 선로변 화재사고에서 보듯, 우리 지하철은 여전히 숱한 불안 요소를 실은 채 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사고 원인에 대해 서울지하철공사는 “전동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급전선(직류 1500V)이 이탈해 철 기둥에 접촉했기 때문”이라며 “20년가량 장기 사용한 설비가 노후돼 전선을 지지하는 연결핀과 볼트가 떨어진 것이 전선 이탈의 원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평안북도 룡천역에서 발생한 열차 폭발 참사의 원인으로 철도 시설 노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지하철이 20년이 넘은 설비를 그대로 사용해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 가장 문제가 됐던 열차 내 가연성 내부 구성재들이 여전히 교체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서울지하철의 경우 의자를 불에 타지 않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부산 대구 인천 지하철은 아직도 예전의 소재를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참사 당시 대형 인명 피해의 첫째 원인이 이들 내부 구성재에서 발생한 유독가스였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전형적인 ‘안전불감증’이 아닐 수 없다.

    승객 비상탈출 대책 역시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서울지하철공사 측은 열차 내에 비상탈출 방법에 대한 안내문을 비치하고 기관사를 대상으로 승객 비상구조 방법을 교육시키는 등 안전대책을 강화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기관사들의 반응은 전시행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도시철도공사의 한 기관사는 “화재 발생시 시민들이 대피하지 못하는 것은 비상탈출구를 몰라서가 아니라 연기에 질식해 쓰러지기 때문”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역 구내에 제연시설을 설치해야 하는데 전국적으로 이 장치가 있는 곳은 참사가 난 대구 중앙역 등 손꼽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도시철도공사는 심지어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기관사가 직접 승객들을 구출하도록 하겠다며 한 열차마다 두 대씩 구급용 산소탱크를 비치했다. 이에 대해 기관사들은 “정기 소방교육을 온 소방서 직원들조차 ‘말도 안 되는 대책’이라고 비웃는다”며 “그런 대책을 내놓기 전에 지하공간 유독가스의 주범인 아크릴 광고판과 내부 장식재들을 제거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속철도의 안전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예정을 한 달 앞당겨 개통한 이후 고장에 따른 연·발착과 선로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 인터넷에 구성된 ‘안티 고속철’ 카페에서 네티즌들은 “우리를 상대로 시험 운전을 하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4월7일 경기 안산시 팔곡2동 고속철도 교량 위에서 김모씨(50)가 19m 아래로 떨어져 숨진 사건에서 보듯, 누구나 쉽게 선로 안에 침입할 수 있어 테러 위협에 무방비 상태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안전시민연대 허억 사무처장은 “고속철이 불안하다는 시민들의 지적을 철도청은 계속 사소한 것이라며 묵살하고 있다. 고속철은 속도보다 안전이 우선시돼야 하는 만큼 문제점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각국의 사고 사례와 대처 방법 등을 연구해 대형사고를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형 참사 후보지 널렸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대형 찜질방들 가운데에는 화재 등 안전사고에 취약한 곳이 적지 않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4월22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찜질방. 밀폐된 고온 찜질 시설의 문을 열자 악취와 함께 더운 열기가 후끈 뿜어져나왔다. 24시간 운영되는 이 찜질방이 내부 온도 유지를 위해 환기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또 대형 참사가 일어난다면 그 장소는 찜질방이 될 것이라는 괴담이 나돌고 있다. 산소 부족에 의한 질식, 화재, 내부 붕괴 등 찜질방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4월25일 낮 12시20분께, 서울 성동구 행당동 한 사우나의 찜질방 천장에서 가로 1m, 세로 1m 크기의 소금 덩어리가 떨어져 이용객들이 부상을 당하고 병원 치료를 받는 소동이 벌어졌다.

    1월24일에는 대구시 동구의 한 찜질방에서 이용객 30여명이 구토와 어지럼증 등 질식 증세를 호소해 치료를 받았고, 2002년 5월에는 전북 한 찜질방에 불이 나 3명이 숨지고, 3명이 크게 다치는 사건도 있었다.

    문제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데도 찜질방 안전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현재 전국의 찜질방은 모두 1353곳. 2001년 12월의 924개소에 비해 400곳 넘게 증가한 수치다. 업계 관계자들은 목욕탕에서 찜질방으로 전업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등 이 분야에 새로 뛰어드는 이들이 많아 찜질방 수는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하지만 현재 찜질방은 ‘자유업’으로 분류돼 허가를 받을 필요 없이 신고만으로 영업을 시작할 수 있다. 대형 찜질방들이 사실은 ‘공중위생관리법’의 적용을 받는 목욕탕보다도 안전사고에 무방비 상태인 셈이다.

    소방전문가들은 찜질방이 대부분 지하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대피할 만한 통로가 확보돼 있지 않다는 점, 내부에 유독가스를 발생시킬 수 있는 가연성 장식재가 많다는 점 등을 들어 화재가 발생할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2003년 6월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성남지부가 찜질방 이용 경험이 있는 소비자 72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가운데 6명은 화재 등 안전사고에 대한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을 정도로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감도 심각하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찜질방 시설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중위생관리법 개정안’을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해놓았다”며 “찜질방 안전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운영 중인 찜질방의 안전사고 방지 방법에 대해서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대형 참사 후보지 널렸다

    대학 실험실에서 여러 차례 사상 사고가 발생했지만, 환경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아 학생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요. 사고 당시와 똑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대학 실험실 안전 상황에 대해 답하는 박상욱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묻어나왔다. 일반인들에게 실험실은 깨끗한 가운을 입은 젊은 과학도가 연구에 몰두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 안에서 생활하는 대학원생들에게는 독가스 등 유독물질과 사제 장비에 둘러싸여 수시로 생명과 안전을 위협당하는 공간일 뿐이다.

    1999년 9월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단극발전실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3명의 대학원생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은 이후 한때 우리 사회에서는 실험실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관심은 곧 잦아들었고, 2003년 5월 KAIST(한국과학기술원) 항공우주연구실험실에서 대학원생 1명이 숨지는 폭발사고가 또 일어났다. 박운영위원을 분노케 하는 것은 대학 내에서 인사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데도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은 여전히 전무하다는 점이다.

    “사람이 죽지 않을 정도의 사고는 거의 날마다, 전국 각지의 실험실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사고가 발생하면 잠시 동안 대책을 마련하는 척하다가 결국 손놓아버리는 일만 되풀이하고 있는 거죠.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가 언제 또 어떤 끔찍한 사고가 발생할지 모릅니다.”

    박운영위원의 지적은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2003년 7월 한국과학기술인연합이 이공계 대학원생과 연구원 321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4.5%는 실험실에서 인명사고 위협을 느낀 적이 있다. 이 가운데 6.2%는 사망할 정도의 위험까지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위기상황에서 자신들을 보호할 수단이 비상탈출로밖에 없다(28.7%)는 점. 대부분의 실험실이 초고온·초저온, 고압 전기, 방사선, 연소·폭발 화학반응, 독성 화학물질 등 위험이 큰 환경에 노출돼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부분의 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이 자체적으로 실험 기구를 제작, 사용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안전점검이나 인증 절차가 전무하다는 점도 사고 위험을 가중시킨다. 기구 작동법과 주의사항 등이 제대로 인수 인계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배들이 이를 이용하다 사고를 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2002년 10월 생물학연구정보센터가 471명의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8.8%는 자신이 속한 연구실이 1년 내내 단 한 번도 안전점검을 받지 않고 있다고 답했으며, 유해화학물질의 취급 규정이나 기기운용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고 답한 이는 전체의 33.3%에 그쳤다. 15.3%에 이르는 72명은 현재 근무하고 있는 실험실에서 연구 도중 1회 이상 사고를 당해 치료받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처럼 실험실 안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모든 비용과 책임이 피해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KAIST 대학원 총학생회장을 지낸 정우성씨는 “실험실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의 대부분은 연구원의 잘못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실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것”이라면서 “선진국에서처럼 실험실별로 안전사고 보험에 가입해 연구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험에 가입하면 보험사 측에서 안전요원을 주기적으로 파견해 연구실을 점검하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 공인된 국가기관을 만들어 실험실 안전점검과 연구원들에 대한 안전교육을 전담토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1999년 서울대 폭발사고 이후 실험실 안전운동을 벌였던 김병수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간사는 “대학 실험실의 도제적 문화가 사고를 키우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위험 상황에서도 담당 교수에게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심지어 사고를 당한 후에도 교수나 선배에게 혼날 것을 우려해 스스로 문제를 덮어버릴 정도라는 것. 김간사는 “‘뭐 별일 있겠나’ 하는 생각으로 이런 상황을 방치할 경우 더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정부와 학교 측이 대학원생들을 이용해 열악한 환경에서 성과를 얻어내겠다는 발상을 버리고 실험실 안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2003년 KAIST 사고 발생 후 실험실 상해보험 가입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하는 ‘연구 실험실 안전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했지만, 부처 내 갈등으로 무산된 후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대형 참사 후보지 널렸다

    상당수 복합상영관은 비상구가 좁고, 가연성 내부 장식재들이 많아 화재 발생시 대형 참사가 우려되는 공간으로 지적된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젊은이들에게 원스톱 문화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복합상영관은 미로처럼 얽힌 내부 구조와 가연성 소재로 만들어진 좌석 시트, 좁은 복도 등의 문제점 때문에 ‘안전 위험지역’을 꼽을 때마다 단골로 거론된다.

    하지만 전형적인 상업시설인 만큼 ‘안전불감증’은 그 어느 곳보다 심각하다. 행정자치부는 2001년부터 극장 측에 영화를 상영하기 전 영상물과 방송을 통해 긴급 피난 안내를 실시하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이를 지키는 곳은 극소수일 정도다.

    복합상영관을 즐겨 찾는다는 김선강씨는 “극장에서 비상구 유도등 표시를 따라가보면 황당하게도 굳게 닫힌 철문으로 향해 있다. 비상출입구는 언제나 개방돼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관객들의 안전을 위해 극장 측은 비상시 대피 요령,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 등을 안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안흥 서울시 소방방재안전본부 소방경은 “대부분의 복합상영관은 지하나 고층 건물에 들어서 있고, 유동 인구에 비해 통로가 좁기 때문에 작은 불에도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으며 벽면 인테리어, 바닥 카펫, 좌석 시트 등 화재시에 유독가스를 내뿜어 생명을 위협할 내장재도 많다”며 “극장에 들어가기 전 미리 비상탈출구를 확인하는 등 스스로 피난 방법을 숙지해두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4월1일부터 8일까지 전국의 주요 호텔과 백화점 588곳에 대한 특별 안전점검을 실시해 소화·경보·피난 설비가 불량한 137곳을 적발해낸 행정자치부 예방과 김남주씨는 “스프링클러가 망가졌거나 비상유도등이 불량인 경우 등을 적발해 시정 명령 조치했지만 업주들의 안전의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뿌리 깊은 안전불감증을 치료하려면 교육 등 좀더 다양한 방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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