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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김정일, 룡천 사고로 벼랑 탈출하나

국제사회 구호 행렬 속 미국 압박 약해질 듯 … 동북아 세력 균형 다시 원점으로?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김정일, 룡천 사고로 벼랑 탈출하나

김정일, 룡천 사고로 벼랑 탈출하나

4월22일 폭발사고가 일어난 평북 룡천역 사고현장과 폭발사고로 부상을 입은 어린이들(작은 사진).

지난 한 달여 동안 동북아에서는 대만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의 재선, 미국 체니 부통령의 일·중·한 순방,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 그리고 북한 평북 룡천역 열차 사고라는 초대형 뉴스가 터져나왔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일부 전문가들은 “동북아의 세력 균형이 깨지는 조짐이 발견된다”라고 말한다.

세력 균형이 깨진다는 말은 한반도로 국한해서 말하면, 통일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동북아는 초강대국인 미·일·중·러와 중간 경제강국인 한국·대만, 중간 군사강국인 북한 등 ‘힘 있는 나라’가 포진해 있어, 세력 균형의 파괴가 곧바로 한반도의 통일로 이어진다고 단언하기 힘들다.

세력 균형이 깨지기를 바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한국 미국 일본이고, 중국 북한은 세력 균형의 유지를 원한다고 할 수 있다. 특이한 존재는 대만인데, 대만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미·일에 편승해 ‘독립’을 이루려고 한다는 점에서 세력 균형의 파괴를 원하는 세력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미·일 대(對) 북·중 대립 구도 속에는 ‘북핵’이, 대만과 대만을 지지하는 미·일 대 중국 대립 구도 속에는 ‘대만 독립’이 각각의 핵심 화두가 되고 있다.

중국도 북·중 정상회담으로 실속 챙겨

대만 독립을 둘러싼 양안(兩岸)문제부터 살펴보자. 중국과 대만만을 놓고 볼 때 유리한 쪽은 물론 중국이다. 그러나 대만은 경제적으로 월등히 우월하고, 섬이라고 하는 지정학적 이점을 갖고 있다. 또 유사시 대만 지원을 명시한 ‘대만관계법’에 따라 미국이 대만 보호를 강조하고 있어, 중국이 대만을 흡수하는 사태는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천수이볜 총통이 재선함으로써 대만은 ‘대만은 대만 섬을 영토로 한 독립국이다’라는 문구를 헌법에 넣는 개헌을 함으로써 독립을 이루는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만이 독립을 선포한다면 대만을 ‘미수복 영토’로 여기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군사력을 동원해 강제로 대만을 중국에 귀속시켜야 한다. 이때 GDP 열 배, 국방비 스무 배 정도 많은 미국이 막고 나선다면 중국으로서는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중국으로서는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미연에 막아나가야 한다.

중국은 중국 경제의 도약대가 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동서간의 경제 격차를 줄이기 위해 시작한 서부 대개발과 올해부터 시작한 동북3성 개발 사업도 성공시켜야 미국에 맞설 만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현재로서 대만 독립을 억누를 수 있는 세력은 미국뿐이므로 중국은 미국의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춰줄 필요가 있다.

중국의 또 다른 고민은 북핵이다. 한국과 일본은 핵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도 스스로 비핵화를 선언한 나라들이다. 북한은 정권 방어를 위해 핵 보유를 추진해왔는데, 경제위기가 계속돼 정권 방어가 힘들어지면 핵실험을 강행해 핵보유를 과시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핵의 사정권에 있는 한국과 일본은 비핵화 포기를 밝혀, 미국 핵의 반입을 허용하거나 스스로 핵무장으로 나갈 가능성이 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까지도 핵무장을 한다면 경제개발이 시급한 중국으로서는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북핵 사태가 커져 한국 일본 대만 등이 핵을 갖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나가야 한다. 이것이 중국의 고민이다.

천수이볜 총통은 지난 대선 때 사실상의 대만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도 함께 실시했다. 그러나 이 국민투표는 50% 이하의 투표율을 기록함으로써 천총통이 제시한 독립 안건은 자동 부결되고 말았다. 덕분에 중국은 대만 독립문제에 대해서는 한시름 놓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미국도 사정이 복잡하다. 부시 행정부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부시의 재선인데, 이를 위해서는 이라크 사태나 북핵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야 한다. 현재 미국은 대부분의 지상군을 이라크와 아프간전에 투입하고 있어 군사력을 동원해 북핵문제를 풀 여유가 없다. 따라서 자기 사정 때문에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 “북핵문제를 좀더 빨리 풀어내라”고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

이라크전이 순조로웠을 때 부시 대통령은 “시간은 우리 편이다”라며 북핵문제 해결에 자신감을 보였으나, 중국을 방문한 체니 부통령은 4월15일 상하이 푸단(復旦)대학 연설에서 “시간이 꼭 우리 편인 것 같지는 않다”라며 초조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초조감은 “중국이 왜 북핵문제 해결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느냐”는 불만의 토로다. 따라서 중국으로서는 북핵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여주면 미국이 대만 독립을 억눌러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여기서의 관점은 중국이 ‘김정일의 팔을 비틀어’가며 적극적으로 핵포기를 강요할 것인가, 아니면 ‘의례적으로 핵포기를 요구할 것인가’이다. 이런 가운데 ‘갑자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과 정상회담을 열자, 많은 사람들은 북핵문제 해결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김정일의 중국 방문은 체니의 협박으로 인해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다’란 사실을 아는 순간 힘을 잃게 된다.

이란도 대지진 직후 미국 예봉 피해

3월26일 평양을 방문하고 베이징으로 돌아온 중국의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은 기자들에게 “김위원장을 만나 6자회담을 계속한다는 데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때 그는 김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논의했으나 이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중국은 김위원장의 방중이 있기 전 미국과 한국 등에 이를 통보함으로써 ‘중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성의를 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번 회담이 김정일과 후진타오가 처음 만난 것이었다면 두 사람은 북핵문제에 대해 심각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1942년생으로 동갑인 두 사람은 과거 두 차례 만난 적이 있는 구면이다. 한 소식통은 “전통적으로 중국과 북한은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 양쪽 정상이 상호 방문하는 형식으로 인사를 나눠왔다. 후진타오 주석이 등장한 후에도 김위원장과의 의례적인 면담이 있어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그것이 체니 방중 직후 이뤄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의례적인 것이었던 만큼 북·중 정상회담에서는 ‘6자회담을 계속한다’와 ‘중국이 지금까지 북한에 제공해온 원조를 계속한다’는 의례적인 합의만 이뤄졌다. 중국으로서는 북핵문제 해결에 진력한다는 인상과 함께 김정일 정권을 인정해주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동북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김정일이 북한으로 돌아오던 4월22일 평북 룡천역에서 거대한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에 대해 ‘은둔의 왕국’인 북한은 이례적으로 사고 발생 이틀 만에 “전기 스파크에 의해 일어났다”고 사고 원인을 밝히고 현장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했다.

룡천역 사고는 2003년 12월26일 이란 케르만주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같은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이란 지진 직후 이란의 핵개발 문제를 놓고 압박을 가하던 미국은 예봉을 눈에 띄게 약화시키고 오히려 대형 수송기를 띄워 이란에 대해 대대적인 원조를 펼쳤다. 룡천역 사고도 이와 비슷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룡천역 사고에 대해 한국(100만 달러)과 중국(약 100만 달러)이 경쟁하듯 구호 지원을 펼치고 있는 만큼 미국은 북한에 대한 압박을 일시적으로라도 풀어줄 수밖에 없다. 천수이볜 당선과 체니의 방중으로 세력 균형이 깨질 수 있는 위기에 몰렸던 중국과 북한은 북·중 정상회담과 룡천역 사고로 이를 회복할 수 있는 확실한 기회를 잡은 셈이다.

가쁘게 돌아가는 동북아 사태에 대해 소식통들은 “중국의 노력 때문이라도 당분간 동북아에서는 세력 균형이 유지될 것 같다. 그러나 북한 경제의 추락이 계속된다면 결국은 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개발과 양안문제 올림픽 등 일이 산적해 있는 중국으로서는 끝까지 김정일 정권을 껴안고 갈 수 없을 것이다”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주간동아 433호 (p28~30)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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