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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승부사 - DJ논리 ‘취사선택’

노대통령 ‘양김 리더십’ 철저한 비교 분석 학습… ‘상생과 개혁’새 리더십 개봉박두?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YS승부사 - DJ논리 ‘취사선택’

YS승부사 -  DJ논리 ‘취사선택’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두 전직 대통령의 장·단점을 분석,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렵지 않게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만나게 된다. 노대통령도 다른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3김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 1988년 정계 입문부터 YS 신세를 졌다. 2002년 대선 승리는 DJ와 직계 세력들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민주당 K의원은 “노무현이라는 씨를 YS가 뿌리고, DJ가 만개시켰다”고 표현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노대통령은 3김 정치의 대표적인 수혜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수시로 3김에 저항했다는 측면에서 일방적 수혜자로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노대통령은 90년 3당통합에 반대해 YS와 결별했다. 3김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지역구도에 온 몸을 던져 반발한 것도 그였다. 특히 대통령 당선 이후 그는 구악에 가까운 기존 정치권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와 개혁을 시도, 남아 있던 3김 정치와 세력을 일거에 털어내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렇게 보면 노대통령은 3김 정치의 청산자 이미지가 더 강하다.

노대통령은 양김에 대해 애증을 동시에 갖고 있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여보 나 좀 도와줘’(도서출판 새터 펴냄)에서 양김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를 해놓았다. 이 책에서 노대통령은 YS를 ‘탁월한 정치인’으로 평가했다. 애매한 이 표현에 대해 노대통령은 “YS가 훌륭한 정치 지도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뛰어난 두목”이라고 풀이했다. 노대통령은 지난해 자신의 측근들에 대한 세간의 의혹이 커지자 ‘동지, 동반자, 동업자’ 등과 같은 가부장적 용어로 이들과의 관계를 설명한 적이 있다. 측근 참모들에 대한 이 같은 인식은 가족과 같은 끈끈한 애정을 바탕으로 사람을 관리했던 YS의 ‘용병술’이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많다. 노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노대통령을 위해 내 모든 재산을 바칠 각오를 했다”고 말해 3김을 둘러쌌던 가신문화가 노대통령 캠프에도 일정 부분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특히 이론과 신념으로 무장한 386들의 노대통령에 대한 올인식 보필은 3김의 가신문화를 노대통령식으로 승화시킨 결과라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YS는 탁월한 정치인, DJ는 강한 집념의 지도자”

그러나 노대통령은 그런 YS가 뛰어난 보스이지만 ‘훌륭한 정치 지도자’라고 보지 않았다. YS가 역사의식 없이 군부세력과 3당통합에 나선 것이 결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은 YS가 3당통합에 나섬으로써 청산해야 할 이땅의 기회주의가 다시 소생했다고 믿고 있다.



반면 DJ에 대해서는 ‘지도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노대통령은 DJ야말로 자신이 제시한 지도자의 3대 요건, 즉 권력 장악 능력, 살림살이 솜씨, 역사의식을 두루 갖춘 정치 지도자로 평가한다. 노대통령은 DJ를 끊임없이 성장하는 정치인으로 평가했다. 모든 문제들을 항상 앞서서 깊이 생각하고 준비하는 습관도 좋게 평가했다. DJ는 결코 포기와 좌절하지 않는 강한 집념의 소유자로 노대통령은 보고 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DJ의 약점에 대해서도 정확히 읽고 있다. 가장 큰 허점은 ‘허점’이 너무 없다는 점이다. 논리적으로 너무 완벽하고, 또 그 완벽성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이 너무 강해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고 이것이 측근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것. 게다가 논쟁을 하면 항상 이겨 참모들이 말을 꺼내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간 게 DJ를 고독한 지도자로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노대통령 측근들에 따르면 노대통령은 양김의 이런 리더십을 항상 비교 분석, 학습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들의 장점은 취하되 단점은 보강해 노무현식 리더십을 체계화했다는 것. 90년대부터 노대통령과 정치를 함께해온 열린우리당 C씨의 설명이다.

“노대통령은 YS에게서 정치적 결단에 임하는 승부사 기질을, DJ에게서 미리 상황을 읽고 구도를 잡아나가는 정치관(觀)을 배웠다.”

사실 노대통령의 정치는 모든 것을 내던져 종국에 승리를 거두는 ‘승부사’ 스타일이다. 대선 후보시절부터 곁에서 지켜본 문희상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를 ‘올인의 정치’라고 표현했다. 경선 때의 잇따른 승부수, 대선 한 달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꺼내든 후보 단일화, 대통령직을 걸고 던진 재신임 카드 등은 위기 때마다 터져나온 YS의 승부수와 너무도 닮았다. 노대통령은 스스로 YS에게서 승부사로서의 기질을 전수받았음을 숨기지 않았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저서에서 “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중간평가와 관련해 유리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YS는 정면돌파를 선택했고, 그런 YS가 정말 멋지게 보이더라”고 술회했다. 노대통령은 당시 “짧은 기간이나마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스스로 ‘노무현식 승부수’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본시 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결단하고, 기다리곤 했다.”

노대통령은 YS의 승부사적 기질에 치밀하고 정교한 상황분석, 이를 현실정치에 대입하는 논리를 주입시킨다. 이런 과정을 거친 노대통령의 리더십은 전략가 DJ의 정치술과 흡사해진다. 집권에 성공한 노대통령은 민주당에서 정치개혁의 꽃을 피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냉정한 평가와 전략적 마인드로 판을 본 결과 신당 창당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노대통령과 추종세력이 떠난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참패,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반면 노대통령은 “3김이 만들지 않은 신당은 성공할 수 없다”는 한국 정치의 불문율을 깨뜨리고 과반을 확보하는 대승을 쟁취했다. 정치 9단 YS의 승부수와 DJ의 논리로 무장한 노대통령에 대해 측근들은 정치 10단의 경지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 청출어람을 강조하는 유인태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지적이다.

“노대통령 밑에서는 누가 정무수석을 맡든 할 일이 없다. 정치 10단에게 1급 정도의 새까만 하수들이 뭐라고 조언하겠느냐.”

사실 참여정부 출범 후 정무수석실의 역할과 기능은 과거와 비교해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유 전 수석의 개인적인 캐릭터에서 연유한 바도 크지만 정치에 대한 노대통령의 안목과 판단이 그만큼 절정에 달했다는 것이 내부 비서관들의 일관된 평가였다.

그러나 한나라당 윤여준 의원은 노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한마디로 혼란과 난맥의 정치가 등장했다”고 혹평한다. 안정적인 리더십으로 국정운영을 해야 하는데도 모든 상황에 대해 승부사적 기질로 임했다는 것. 한마디로 새로운 패러다임과 지도력을 제시하지 못해 정치권의 혼돈이 가중되었다는 게 그의 평가다. 윤의원은 노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언행으로 인해 지난해 국민들이 여러 차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것이 노무현 리더십의 한계라고 말한다.

윤의원은 “3김 이후 지도자를 양성하지 못한 게 3김씨의 마지막 과오”라고 덧붙였다. 안정적이지 못한 노대통령의 지도력이 그를 탄핵으로까지 몰고 간 배경이라는 주장은 일면 설득력이 있다.

‘4ㆍ15’ 총선 이후 3김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관저에 유폐됐던 노대통령은 그들이 떠난 빈자리에 새로운 리더십과 지도자상을 채워넣어야 한다. 노대통령은 과거와 다른 안정적인 리더십을 강요받고 있다. 참여정부 2기 출범을 앞둔 노대통령도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흔적을 보인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노대통령이 2ㆍ3인자 그룹과 측근들을 활용하고 이들이 서로 경쟁, 견제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드는 용인술로 안정적 리더십을 확보하려 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집권 2기 국정운영 목표인 ‘상생과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장고에 들어간 노대통령이 새로운 리더십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해진다. 3김이 떠난 그 자리에 우뚝 선 노대통령의 다음 행보에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주간동아 433호 (p24~26)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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