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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아듀! 3金

고개 든 ‘넘버 2’ 용서 못해!

3金에 덤볐던 사람들 시련과 고난 연속 … 집권당 요직 주무른 가신들도 몰락의 길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고개 든 ‘넘버 2’ 용서 못해!

고개 든 ‘넘버 2’ 용서 못해!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11월3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옛 아태평화재단에서 열린 김대중 도서관 개관식에 참석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환담을 나눴다.



3김 정치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일까. 누가 뭐래도 노무현 대통령을 으뜸으로 꼽을 만하다.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김광일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소개로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만난 것이 정계 입문의 계기. 노대통령도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새터출판사 펴냄)에서 YS를 자신을 정치권으로 이끌어준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DJ에 대한 노대통령의 평가는 상대적으로 후하다. 1991년 ‘꼬마민주당’과 신민당이 합치면서 노대통령은 본격적으로 DJ와 정치적 인연을 맺는다. 그 후 헤어지고 만나기를 되풀이하지만 노대통령과 DJ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한다. 자서전에서 노대통령은 “DJ는 참으로 아까운 분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표현했다. 노대통령이 자서전을 쓴 때가 1994년이었으니까 노대통령이 DJ의 잇따른 대선 패배를 보고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평가한 듯하다.

YS보다 상대적으로 후한 점수를 준 때문일까. DJ는 총선기간 내내 추미애 의원 등 자신이 키운 민주당 후보들이 고전하는데도 중립을 지킴으로써 호남에서 열린우리당 바람이 이는 데 일조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3김 시대가 배출한 ‘정치 우량아’다. 하지만 영남 출신이 아닌데도 이 전 총재는 지역주의에 더 매달렸고, 가신(家臣)정치를 경험한 적이 없으면서 측근그룹에 둘러싸여 지내는가 하면, 측근을 통해 대기업에서 거액의 대선자금을 수수하는 등 3김 정치의 구습을 충실히 따랐다. 결과는 대선 패배로 나타났는데, 너무나 3김다워서 외면당한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이 전 총재는 3김 시대의 수혜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하다.



고개 든 ‘넘버 2’ 용서 못해!

2002년 5월30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울 상도동 자택으로 찾아온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를 맞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인제 의원 3김과 모두 한 정당서 정치

이인제 자민련 의원은 드물게도 3김 모두와 한 정당에서 정치생활을 해본 인물이다. 그는 1988년 YS에 의해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한때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이회창 후보에게 패한 뒤 국민신당을 창당해 독자출마하기도 했다. 그 후 민주당에 입당해 동교동계의 엄호를 받으며 DJ의 후계자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한 뒤 탈당해 자민련에 입당하는 등 최근 몇 년 사이 4군데 정당을 옮겨다니며 변신을 거듭했다. 저돌적이고 승부사적인 정치 스타일은 YS와 닮았지만, 그런 저돌성 때문에 앞날을 그르쳤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정계은퇴를 선언한 JP의 뒤를 이어 자민련을 이끌어갈 후계자로 꼽히지만 이 역시 순조롭지 않을 듯하다. 현재 이의원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에서 불법자금 2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를 받고 있다. 17대 총선 당선자로는 처음으로 4월28일 검찰 소환조사 통보를 받았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이의원은 17대 국회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도 있다.

3김의 가신들도 어떤 의미에선 수혜자들이다. 최형우 서석재 전 의원과 김덕룡 의원 등 상도동 중진들은 문민정부 내내 요직에서 실세로 이름을 높였다. 상도동 비서로 시작해 별다른 이력 없이 장관이나 집권당의 요직을 맡아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과연 이들이 나라를 움직일 만한 인재인가에 대한 의문도 없지 않다.

DJ 가신들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로 대표되는 동교동 가신들도 DJ정권 내내 당의 핵심에 포진해 맹활약했다. 한화갑 의원을 제외하곤 17대 총선에 금배지를 달지 못했지만, 이들 가신그룹의 몰락은 곧 3김 시대의 종말과 궤를 같이한다는 지적이다.

고개 든 ‘넘버 2’ 용서 못해!

2002년 11월5일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가 상도동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방문했다 .2000년 5월24일김대중 대통령과 이인제 국민회의 당무위원.2002년 1월1일 YS에게 새해 인사를 하러 간 민주당 이인제 고문 (왼쪽부터).

3김에 정면으로 맞선 사람들은 예외 없이 정치행보가 순탄하지 않았다. 1960년대 말 YS, DJ와 함께 40대 기수론의 주역이었던 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의장은 양김과 치른 경쟁에서 탈락하면서 정계를 떠난 경우. 이의장은 보수의 대변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말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 최근에는 1987년 KAL기 폭파 사건 희생자 유가족회를 ‘김정일의 프락치’라고 했다가 명예훼손 송사에 휘말린 끝에 지난 3월 말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부에서 유가족회에 위자료 2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DJ의 영원한 경쟁자 김상현 의원도 정치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광주 북갑에서 민주당 공천으로 7선에 도전했던 김의원은 패배가 확정되자 “죽기 살기로 선거운동에 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한 만큼 유감은 없다”고 말했지만, 자신뿐 아니라 서울 서대문갑에 출마한 3남 영호씨도 낙선해 부자(父子)가 동시에 낙선하는 불운의 주인공이 됐다. 불굴의 화신 김의원은 DJ 1인 카리스마 정당에서 여러 차례 맞짱을 뜬 정치인이다. 그러나 DJ의 빛이 흐려지면서 그 역시 ‘구시대 인물’로 사그라지고 말았다.

3김에 덤볐다가 곤욕을 치른 대표적 인물로 이민우 전 신한민주당 총재를 꼽을 수 있다.

고개 든 ‘넘버 2’ 용서 못해!

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민주당 김상현 의원, 박철언 전 의원, 이민우 전 신민당 총재(왼쪽부터 시계방향)

1987년 4월13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대통령 간선제를 규정한 제5공화국 헌법으로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호헌선언’으로 불리는 이 조치에 반발해 직선제 개헌을 외치는 시민들의 거리 시위가 터져나왔다. 6·10항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 해 봄, 대통령 7년 단임 헌법 때문에 재출마할 수 없었던 전 전 대통령은 내각제 개헌을 통해 국회 다수파를 움켜쥠으로써 집권을 연장할 뜻을 내비쳤다. 당시 제1야당 신민당 이민우 총재는 “일정한 민주화 조처가 병행된다면 내각제 개헌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이른바 ‘이민우 구상’으로 당시 여권의 의중에 맞장구쳤다. 문제의 이민우 구상의 숨은 주역은 홍사덕 의원이었다. 불투명한 정국 상황과 이민우 자신의 정치적 야심이 결합해 나온 ‘이민우 구상’은 그러나 신민당의 실질적 ‘오너’였던 YS와 DJ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다. 두 김씨는 그 해 4월8일 자신들을 따르는 의원 74명을 탈당시켜 통일민주당을 창당해 이민우씨의 신민당을 껍데기로 만들었다.

물론 두 김씨의 신당 창당은 직선제 쟁취 국민 저항으로 이어지는 데 긍정적 역할을 했지만, 이후 이민우 총재와 신민당의 몰락은 두 김씨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본보기로 지금도 널리 입에 오르내린다.

3김 가운데서도 정적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에 관한 한 YS가 최고다. 그와 다투다가 치명상을 입고 정치 일선에서 사라져버린 정치인 가운데 박철언 전 의원을 꼽을 수 있다. 3당합당 이후 여당의 2인자 YS와 ‘6공화국의 황태자’ 박 전 의원 사이에 벌어진 차기 싸움은 살기를 뿜을 정도로 치열했다. 당초 3당합당의 파트너로 YS보다 DJ를 선호했던 박 전 의원은 합당 이후에도 YS를 차기 주자 대열에서 제외하기 위해 애를 썼으나 결국 패하고 말았다. 문민정부 초창기 박 전 의원은 슬롯머신 업주에게서 거액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이 사건 이후 그는 정치적 수렁에서 좀체 헤어나오지 못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박 전 의원은 ‘무소속 희망연대’라는 영남지역 무소속 출마자 조직을 주도하며 재기를 도모했다. 그 자신도 대구 수성갑 무소속 출마를 모색했다. 하지만 냉담한 지역 여론에 밀려 4월1일 불출마 의사를 밝히며 사실상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정계은퇴 선언을 하면서 박 전 의원은 “시대적 소명이 다함에 따라 이제 정치무대에서 내려오고 싶다”고 말했다. 박 전 의원의 퇴임의 변은 3김과 겨루다 상처 입은 정치인들의 한결같은 속내가 아닐까.



주간동아 433호 (p20~22)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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