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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칼럼

주역의 64괘 중 23번째는

  • 우찬규 / 학고재 대표

주역의 64괘 중 23번째는

주역의 64괘 중 23번째는
공자는 동양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그의 사상과 학문이 동양정신의 큰 줄기를 이룬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공자의 독서열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아들과 제자에게 평소 ‘시경’과 ‘예기’를 읽으라고 권했다. ‘시경’을 읽지 않으면 말을 조리 있게 할 수 없고, ‘예기’를 읽지 않으면 세상에 제대로 설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공자 자신은 ‘주역’을 가장 좋아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던지 목책(木冊)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닳아서 끊어졌다고 한다. “내가 몇 년 수명을 연장하여 주역을 더 배운다면 큰 허물이 없게 될 것 같다”는 토로는 주역에 대한 공자의 애정 고백처럼 들린다.

‘주역’이 어떤 책인지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무리다. 그만큼 어려운 책이다. ‘주역’은 우주의 순환법칙을 예시한다. 이에 따라 사람의 진퇴존망에 대한 가르침을 64괘(卦)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공자의 ‘주역’에 대한 해석이라 할 수 있는 ‘계사전(繫辭傳)’을 봐도 ‘순환’이 요체임을 알 수 있다. 하늘의 도는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어 영원히 순환한다는 것이다. 즉, 음의 세계가 극한점에 다다르면 양이 생기고, 양의 세계가 극한점에 다다르면 다시 음의 세계로 변하여 끝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지혜롭고 성숙한 선택 … ‘양의 싹’이 자라기를

주역의 64괘 중 23번째는 ‘박(剝)’이라는 괘다. 1년을 12개월로 나눌 때, 박괘는 음력 9월에 해당한다. 하지(夏至)부터 생기기 시작한 음기가 9월에 이르면 그 기가 극성해져서 마지막 남은 양 하나를 마저 삼켜버리고 온 세상이 음의 세계로 변해버릴 것만 같은 상(象)이 된다. 그러나 천도는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주역은 바로 그 다음 괘를 ‘복(復)’이라는 괘로 잇는다. 극성한 음기에 몰린 양 하나가 위에서 아래로 살며시 내려와 음력 10월 동짓날 자시(子時)에 뇌성벽력을 치며 지하 저 밑에서 싹을 틔우는 것이다. 이때가 온 세상이 기다렸던 양의 세계로의 이동 시각이 된다. 이즈음이면 천자는 대궐 문을 닫고 상가가 파한다. 또 선비는 의관을 정제하고 조용히 앉아서 천지의 마음을 살폈다.

이렇게 되살아난 양은 다음해 6월 하지가 되면 그 기가 한껏 솟구치게 되고, 다시 음의 세계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다. 음과 양, 그 순환의 법칙이 대저 이러하다. 음양의 순환은 그러하되 선비들은 군자의 도가 지배하는 양의 세계를 희구해왔다. 그들은 10월 동지를 상징하는 복괘에 대한 예찬을 주로 할 따름이었다. 옛 선비들의 복괘에 대한 예찬을 다 모으면 한우충동(汗牛充棟), 즉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리고 쌓으면 들보가 가득 찰 정도의 양이 됐다.

주역이 ‘만물은 성하면 반드시 쇠한다’는 말만으로 그쳤다면 아마도 공자를 그렇게 사로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크게는 군자의 도가 온 나라에 활짝 피는 세계, 작게는 한 집안의 융성함이 오래 이어지게 할 수 있는 길도 주역은 가르쳐주고 있다. 주역의 14번째 괘는 ‘대유(大有)’이고 15번째 괘는 ‘겸(謙)’이다. 대유괘는 ‘큰 가짐’을, 겸괘는 ‘겸손’을 뜻한다. 크게 가진 사람은 가득 채우면 오히려 잃게 되기 쉽다. 그래서 반드시 숭고한 덕으로 아래에 처하여 겸손으로써 그것을 오래 누리라는 것이다.

송나라 정자는 ‘겸’을 이렇게 풀이한다. “겸손이란 형통하는 길이다. 덕이 있으면서도 드러내지 않는 것을 겸손이라 한다. 사람이 겸손으로 자처하면 어디 간들 형통치 않으리오. 겸손에 뜻을 둔 군자는 사리에 통달하였기 때문에 천명을 즐기고 남과 다투지 아니하며, 안이 충실하기 때문에 사양하고 물러날 뿐 자랑하지 아니한다. 겸손을 편안히 여겨 종신토록 바꾸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낮추어도 남들은 그를 더욱 우러러보며, 스스로 감추어도 그의 덕은 더욱 빛난다.”

주역 64괘는 길흉이 섞여 있지만 겸괘의 6효(爻)만은 모두 길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학들은 바로 이 부분에 이르러 “위대하다, 주역이여!” 하고 입을 모았다.

17대 국회의원을 뽑는 ‘4·15’ 총선이 끝났다. 1985년 12대 총선 이후 처음으로 ‘여대야소’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진보 그룹과 보수 그룹의 교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여당의 완벽한 승리도, 야당만의 일방적인 패배도 아니다. 우리 국민들의 지혜롭고 성숙한 선택이었다. 순환의 예지도 반짝였다. 바야흐로 음습한 ‘박괘’의 세상이 지나고 양의 싹이 자라는 ‘복괘’의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 싹을 ‘대유’의 세상까지 키워나가고, ‘겸괘’의 가르침을 지켜서 길이 융성함을 누렸으면 한다. 그러고 보니 시절도 만화방창한 봄 아닌가.



주간동아 2004.04.29 432호 (p104~104)

우찬규 / 학고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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