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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진보, 국회 벽을 허물다

민주노동당 “돌풍은 지금부터”

국회 개원 전 정책 연수·의원 보좌관 풀제·후원금 실시간 공개 등 신선한 바람몰이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민주노동당 “돌풍은 지금부터”

민주노동당  “돌풍은 지금부터”

4월15일 민주노동당 출마자들이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선거 결과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총선이 끝난 다음날인 4월16일 저녁 7시께 서울 여의도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사 근처의 한 지하식당. 선거에 전념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던 당직자 몇 명이 모여 모처럼 한가롭게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이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한 당직자가 심각한 어투로 말했다.

“민노당의 역사는 지금부터입니다. 지금까지는 전사(前史)에 불과합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민노당 사람들은 진보정치의 역사를 다시 쓰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민노당은 지역구 2곳(경남 창원을 권영길, 울산 북구 조승수)에서 당선자를 냈고, 비례대표에서 득표율 13%, 277만표의 지지로 8석(심상정 전 금속노조 사무처장, 단병호 전 민주노총위원장, 이영순 전 울산동구청장, 천영세 민노당 부대표, 최순영 민노당 부대표, 강기갑 전국농민회총연합 부의장, 현애자 남제주군 여성농민회장, 노회찬 민노당 선대본부장)을 차지해 제3당으로 원내에 진출했다.

국정감사 벌써 겨냥 ‘진보 국감’ 계획안 마련 착수

그 결과 5·16 군사쿠데타 이후 보수 또는 중도 일색이었던 한국 의회가 보수와 진보라는 양날개를 달았다. 권영길 민노당 대표는 4월1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보수 정책 일색인 국회를 노동자 농민 서민 중심의 정책국회로 바꿔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국회의원이 누리는 온갖 특권 폐지에 앞장설 것을 거듭 약속했다.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선거기간에 가장 두드러진 정책 공약을 내놓았던 민노당은 앞으로도 기존 정당과 다른 정책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낼 계획이다. 권대표는 “17대 국회를 정책 국회로 만들기 위해 개원 때까지 정책연수에 들어가고 150여명의 의원 보좌관 풀(pool)제를 통해 정책역량을 육성해 10명의 국회의원이 50명 이상 활동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 중심의 원내 활동을 위해 민노당은 정책기획과 조정을 담당할 의정지원단, 공동 정책보좌 풀제를 도입한다. 이런 내용은 5월6일 열리는 당 중앙위원회에서 세부 내용이 확정될 예정이다. 또 당 정책연구소를 설립해 정치 경제 노동 농업 복지 통일·외교 등 각 분야에서 당 지지선언을 했던 교수 323명을 주축으로 한 교수 지원단도 만든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내용은 정기국회 국정감사 준비다. 민노당은 지난해 원외 정당이었지만 시민단체, 각 분야 전문가가 참여해 50여개 분야의 국정감사보고서를 발표해 주목받았다. 따라서 올해는 원내 정당으로서 더 알찬 국감 내용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민노당은 4월 말까지 이른바 ‘진보 국감’ 사업계획안을 확정하고, 7월25일께까지 진보 국감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노회찬 민노당 사무총장은 “민노당은 일상적으로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진보적 지식인의 정치 참여와 의사표현의 통로 역할을 할 것이며 이를 국정감사 준비와 상임위원회 활동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들의 상임위 배정과 정치활동의 의제, 방식 등에 관한 내용 역시 당 중앙위원회에서 정해진다.

민노당이 상정하고 있는 현안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철회 △이라크 파병철회 및 철수 동의안 제출 △불법 정치자금 국가몰수 입법 △공무원 정치활동 보장 입법 △신용불량자 신용회복 입법 △국민소환·발안제 도입 등이다. 또 제16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진보·민생 입법안을 첫 임시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특히 민노당이 원외정당 시절 줄곧 목소리를 높였던 문제들도 원내에서 그 결과가 어떻게 판명날지 주목받고 있다. 민노당은 여전히 국가보안법과 호주제 폐지,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지, 새만금사업 중단 등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노당은 국가보안법이 국가의 안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대한민국 내의 비판적 인사들을 억압하기 위한 기능을 하고 있으며, 호주제도 양성평등 시대에 맞지 않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총장은 “핵발전소에 의한 전기 생산은 핵폐기물 처리비용까지 포함하면 가장 비싼 비경제적 에너지이므로 선진국에서는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있다”며 “정부가 자원을 충분히 투여해 한국 실정에 맞는 대체에너지 개발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농지를 조성하려는 새만금사업도 그 사업 목적을 잃은 대표적인 예산 낭비사업이므로 당연히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돌풍은 지금부터”

4월14일 서울 명동 마지막 거리유세에 나선 민노당 출마자들이 시민과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민노당 심상정 후보가 당선 직후 꽃다발을 전해준 아들과 포옹하고 있다(왼쪽부터).

이런 정책을 주도할 이들은 의원 당선자들이지만 그들을 뒤에서 튼튼하게 받쳐주는 이들은 지구당의 지역 활동가들과 중앙당 상근자들이다. 이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 월급으로 살아가지만 헌신적이면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

민노당의 또 다른 특징은 후원금 액수와 재정 상황을 실시간으로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는 점. 민노당은 이번 선거를 거치며 당원 가입자가 큰 폭으로 늘어 4월19일 현재 당원이 5만4364명에 이르고 있다. 2000년 총선이 끝난 뒤 당원이 9000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진전이다. 3월1일 이후 1억원의 후원금이 답지했고, 원내 진입으로 국고보조금도 5억3000만원에서 20억7000만원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민노당의 약진 못지않게 민노당의 과제 또한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다수당과의 협조문제, 당내 다양한 목소리 통합, 전국 정당을 위한 지렛대 마련 등을 들 수 있다.

우선 민노당은 원활한 의정활동을 위해 현재 20석 이상인 원내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5석 이상, 정당득표율 5% 이상으로 완화하기 위해 한나라당, 우리당과 협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권대표는 “국회 안에서 노동자 농민 영세상인 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유일한 진보정당인 민노당을 교섭단체에서 배제하는 것은 그들의 목소리를 거부하는 것”이라며 구성 요건 완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양당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당내 노동 농민 여성 학생 등 다양한 진보 세력들이 포진해 있어 노선 투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노당 관계자들은 비교적 냉담한 반응이다. 노총장은 “민노당에서 노선 투쟁은 일상활동”이라며 “굵직한 노선은 이미 강령을 만들 때 통합됐고, 그외의 것은 상황에 따라 토론을 통해 단일 원칙을 정하기 때문에 계파간 싸움으로 복잡한 기존 정당들과 달리 많이 싸울수록 좋은, 다양성이 녹아 있는 당”이라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원내 진입을 계기로 과연 민노당이 어느 정도의 전국 정당으로 설 수 있느냐는 점이다. 원외 정당이었을 때의 활동방식과 그만큼 책임이 따르는 원내 정당으로서의 방식은 분명 큰 차이가 있기 때문. 하승창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은 “의원의 특권을 없애고 당 내부를 민주화하는 등의 문제는 이미 국민들이 당연시하고 있는 수준이다”며 “중요한 것은 그동안 내놓았던 부유세 신설 등 정책을 과연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현실화하느냐의 문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민노당 내부의 고민도 깊다. 김종철 대변인은 “민노당의 의제 설정을 여당이 받지 않을 경우 다음 전략을 어떻게 펼 것인가 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총장은 “민노당은 아직도 사고방식과 활동에서 너무 원칙적이고 서툰 게 많다”며 “대중들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들을 통해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4.04.29 432호 (p18~19)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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