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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창으로 본 요리

나이프로 이를 쑤셨다고?

  • 김재준/ 국민대 교수 artjj@freechal.com

나이프로 이를 쑤셨다고?

나이프로 이를 쑤셨다고?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왕족과 귀족들이 적당한 장소에 숨어 대·소변을 보았다고 한다.

내친구 중에 경제학과를 나오고 프랑스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뒤 사학과 교수가 된 이가 있다. 그가 쓴 책에 예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식 식사 에티켓이 정립된 것은 오래지 않았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불과 몇 백년 전만 해도 유럽의 에티켓을 다룬 유럽의 책에는 ‘나이프로 이를 쑤시지 말라’ ‘고기를 맨손으로 먹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실제 그런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는 말이다.

‘매너의 역사’(노버트 엘리아스 지음, 유희수 옮김, 신서원 펴냄)에는 더 심한 내용이 나온다.

‘사냥꾼들처럼 식탁에 침을 뱉지 마라.’

‘두 손가락으로 코를 풀어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그 손가락을 옷에다 닦는 것은 예의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숙녀 앞에서, 다른 방 창 앞에서 소변을 보아서는 안 된다.’



실제로 당시 유럽의 호화스런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적당한 장소를 찾아 소변, 심지어 대변까지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궁전에 묘한 냄새가 날 때가 많았다고 하는데, 화려한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상상해보면 너무 황당해 웃음이 나온다.

이런 사람들이 이른바 ‘문명화’가 진행되면서 현재와 같은 예의범절을 차리게 되었다. 이러한 예절은 절대주의 시대의 궁중 예절 단계를 지나 19세기 부르주아지 사회 이후 교육받은 신사숙녀의 예절로 발전했다.

매너를 잘 지킨다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한다. 육체적인 것을 억압하고 공격 성향을 억압하는 것은 근대국가의 성립과 함께 가속화한 것이다. 기분이 상하면 치고받고 싸우든가 마주보고 총으로 쏘던 사람들이 이제는 모두 얌전해졌다. 그 폭력성은 국가가 공인한 ‘검찰, 경찰’이라는 인가된 ‘조직’에 의해 행사되고 있다.

육체적인 것을 억압하는 것은 먹는 것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중세 유럽에서는 여러 사람이 같은 그릇에 직접 입을 대고 먹었다고 한다. 그것이 발달해서 그릇은 하나지만 각자 스푼으로 떠먹게 되었고, 나중에는 남의 스푼이 닿았던 음식을 먹는 것조차 싫어 각자 자신의 접시를 앞에 놓고 따로 덜어 먹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남의 접시에 포크를 들이대고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은 매너에 맞지 않는 행동이 되었다. 하지만 야박하게 자기 음식만 먹는 것이 싫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내 생각에는 조금씩 미리 나눠서 상대방에게 건네주고 다시 조용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먹으면 좀 나을 것 같다. 보통 연인끼리 오면 같이 나누어 먹을 때가 많은데 서양에서도 아주 엄격한 곳이 아니면 이를 묵인하는 것 같다. 때와 장소에 따라 알아서 하면 된다.

예절이라는 것은, 유럽 에티켓의 변화과정에서 보듯 시대와 지역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차이는 지역별로 요리를 대하는 태도에도 큰 차이를 만들어놓았다. 서양요리와 중국요리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하나의 재료가 되는 동물을 감추려는 것과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나이프로 이를 쑤셨다고?

① 오리를 통째로 구워 내오는 베이징덕. ② 생선 모양을 그대로 살려 내오는 감성돔 회. ③ 청나라 황실 요리.

가령 중국 베이징에서 오리를 시키면 오리 한 마리를 통째로 가져와 테이블 옆에서 잘라준다. 생선찜을 시키면 생선을 가지고 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뒤 생선 전체를 쪄서 그대로 큰 접시에 담아 내온다. 특히 홍콩에서 먹은 스네이크 수프는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뱀의 껍질이 그대로 붙은 채 나와 뱀을 요리했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감고 그냥 먹어보니 맛은 훌륭했다. 하지만 일행 중에 비위가 약한 사람은 손도 대지 못하고 그대로 남겼다.

반면에 프랑스 요리는 고기류도 그렇지만 생선도 필레라고 하여 적당한 크기로 자른 조각이 두세 쪽 나오고 그 위에 소스가 뿌려지고 예쁘게 장식이 되어 있다. 그 자체로 보아서 이게 무슨 생선인지 알기가 어렵다. 그리고 생선 머리나 뼈는 그냥 버린다.

식탁 위에서 펄떡펄떡 마지막 숨을 쉬고 있는 생선 머리를 보며 활어회를 집어 먹기까지 하는 우리와 크게 다른 문화다. 우리는 활어회를 먹은 후 남은 부분을 매운탕으로 다시 활용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이런 활어회를 보고 기절할 듯이 놀란다.

그 사람들의 조상들도 식탁 위에 죽어 있는 동물을 통째로 올려놓고 잘라 먹었고, 18세기까지는 능숙하게 고기를 자르는 것이 예의범절의 하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에티켓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이 달라진 것이다.

역사를 배우면 우리의 시야가 넓어지고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도 배울 수 있게 된다. 프랑스인들 또한 자신들의 역사를 알게 된다면, 요리 재료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동양의 문화를 ‘야만적’이거나 ‘덜 개화한 것’이라고 몰아붙이지 않을 것이다.

경남 통영의 ‘해원 횟집’에서 활어회를 먹으면서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이 주제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주경철 저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문학과 지성사 펴냄)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주간동아 2004.04.22 431호 (p88~89)

김재준/ 국민대 교수 artj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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