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0

2004.04.15

‘뚜벅뚜벅’ 걸어간 조선 지식인들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4-04-08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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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벅뚜벅’ 걸어간 조선 지식인들

    수로한거도(樹老閑居圖)(오른쪽)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세상에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일이란 없다. 학문도 예술도 사랑도 나를 온전히 잊는 몰두 속에서만 빛나는 성취를 이룰 수 있다. 한 시대를 열광케 한 지적, 예술적 성취 속에는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광기와 열정이 깔려 있다.”

    먼지 쌓인 옛책 속에서 ‘오래된 미래’를 찾아온 정민 한양대 교수(44·국문학)가 조선시대 지식인의 내면을 사로잡았던 열정과 광기를 탐색했다. 허균 권필 홍대용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 김득신 등 당대 진보적 지식인들의 글에서 그가 길어올린 코드는 무언가에 지나치게 빠지는 성향을 일컫는 ‘벽(癖)’.

    “사람이 벽이 없으면 쓸모없는 사람일 뿐이다. 대저 벽이란 글자는 질(疾)에서 나온 것이니, 병 중에서도 편벽한 것이다. 하지만 독창적인 정신을 갖추고 전문 기예를 익히는 것은 왕왕 벽이 있는 사람만이 능히 할 수 있다.”

    박제가가 꽃에 미친 김덕형의 ‘백화보(百花譜ㆍ꽃들의 족보)’에 바치는 서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김덕형은 하루 종일 눈도 깜박이지 않고 오도카니 꽃그늘 아래 자리 깔고 누워 있기 일쑤였는데 손님이 찾아와도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그가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술의 모양, 잎새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놓은 게 ‘백화보’다.

    이처럼 18세기 지식인들은 마니아적 성향에 자못 열광했다고 한다. 너도나도 무언가에 미쳐보려는 추세가 있었다는 것. 이는 이전 시기에는 없던 새로운 현상이었다. 이전까지 지식인들은 자신을 닦는 공부에만 몰두했을 뿐 사물에 몰두하면 뜻을 잃는다고 해서 오히려 이를 금기시했다. 주자학에서 사물의 본질이나 이치를 끝까지 연구하여 지식을 닦는다는 ‘격물치지(格物致知)’ 공부를 강조했지만 그것은 사물이 아니라 내면이 최종 목적지였다.



    그런데 이런 흐름이 18세기에 와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것이다. 세상이 바뀌고 지식의 패러다임에도 변화가 왔다. 정교수는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이 시기에 정약전의 ‘현산어보’(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서)나 김려의 ‘우해이어보’(해양생물학서),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경세유표’ 등 엄청난 저작들이 쏟아진 배경이 바로 ‘벽’을 추구하는 새로운 지적 패러다임의 산물이었다고 말한다.

    음악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던 홍대용은 김억 이덕무 박지원 등 지인들과 실내음악회를 자주 열었다. 신분 낮은 악공에서부터 학문 높은 선비에 이르기까지 신분차와 나이차를 까맣게 잊고 한자리에 앉아 각자의 악기에 몰두하며 조화를 즐겼던 것이다.

    장황(裝潢·서화의 표구)에 미쳤던 방효량, 돌만 보면 벼루를 깎았던 정철조, 담배를 너무 좋아해 아예 담배에 관한 기록을 모아 책을 엮은 이옥, ‘백이전’을 11만3000번 읽었다는 독서광 김득신,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책에 미친 바보)라 했던 이득무 등도 당대의 지적 토대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에게는 남이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출세에 보탬이 되든 말든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 정신, 이리 재고 저리 재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성실과 노력으로 일관한 삶의 태도가 있었다. 진실한 사귐과 사물의 본질을 투시하고 평범한 곳에서 비범한 일깨움을 이끌어내는 통찰력이 있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한 가지 일에 몰두해 후대에 이름을 남긴 이들은 특이하게도 하나같이 고달프고 신산한 삶을 이어갔으며, 천대와 멸시 속에 잊혀져갔다. 과거시험에서 당대에 겨룰 사람이 없을 정도였던 노긍은 과거시험 대필업자라는 조롱을 받고 귀양살이를 했으며, 이옥은 불온한 문체를 쓴다는 이유로 견책당해 군역을 갔다. 관상감 관원으로서 역상 산수에 있어서만큼은 독보적인 경지에 올랐던 천재 천문학자 김영. 그는 농부의 아들이라는 미천한 신분 때문에 멸시를 당했고, 처절한 가난 속에서 비참하게 굶어죽었다.

    그러나 불우한 결말마저도 이들에게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도구였다. 꿈결처럼 아름다운 서사와 문장을 보여주는 박제가의 ‘묘향산소기’를 보면 묘향산 기행을 떠난 박제가가 신새벽 등불을 켜고 ‘서문장전’을 읽는 대목이 나온다. 서문장은 중국회화사에서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기린아지만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해 불우를 곱씹다 송곳으로 자신의 귀를 찌르고 도끼로 제 머리를 내리친 인물이다. 뜻을 얻지 못하고 죽은 서문장을 생각하며 경국제세의 공부에 몰두하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을 떠올렸을 테지만 박제가는 껍데기의 삶은 살지 않겠다, 뼈가 썩은 뒤에도 길이 남을 정신으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저자가 먼지 묻은 책에서 되살려낸 조선 지식인들의 이야기는 본받을 만한 사표(師表)도, 뚜렷한 지향도 없어 모호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이다.

    정민 지음/ 푸른역사 펴냄/ 333쪽/ 1만1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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