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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풍수 | 수도 이전과 지관(地官)

태조의 수난은 도읍 잘못 정한 탓?

  • 김두규/ 우석대 교수 dgkim@core.woosuk.ac.kr

태조의 수난은 도읍 잘못 정한 탓?

태조의 수난은 도읍 잘못 정한 탓?

무악의 주산이 희미하게 보이는 연세대 교정 (왼쪽). 연세대 안의 명당 터.

신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하여 최근 어느 직업 술사가 자신이 ‘신행정수도 이전 자문위원’임을 내세워 모 일간지에 ‘풍수 컨설팅과 수강생 모집’이라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낸 일이 있었다. 자신을 ‘국가의 지관(地官)’이라고 일컬으며 벌인 그의 영리행위를 놓고 일부 교수들이 뜨악해했다. 분명 ‘학술진흥재단’에 등록해 학술적 연구와 강의를 하는 ‘풍수지리’ 전공 교수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검증되지도 않은 풍수 술사들을 행정수도 터 잡기에 동원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견들이었다.

‘지관’은 원래 조선조 잡과(雜科)의 고시과목으로, 경국대전에 명시된 지리학 시험에 통과한 관리를 말했다. 당시에는 풍수가 지금보다 훨씬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는데, 도읍지를 정할 때 이를 반드시 이용했다. 또 조선 초기 정치가 하륜(河崙ㆍ1365~1416)은 “임금이 되는 일은 천명에 의할 수 있지만, 도읍을 정하는 일은 가볍게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때와 지금 사이에는 600년이 넘는 시간의 간격이 있지만, 터 잡기의 본질은 변한 게 없다.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점차 구체화돼가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 초 도읍을 한양(혈처ㆍ경복궁/청와대)으로 정하는 과정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태조 이성계는 즉위 2년(1393년) 계룡산에 도읍지를 정한다. 기초공사가 몇 달 진행될 즈음 경기관찰사 하륜이 그곳을 방문하고는 ‘풍수지리로 볼 때 이 땅은 장차 망할 땅’이라는 상소를 올린다. 태조는 그 주장의 이치를 살피게 한 뒤 결국 계룡산을 도읍지로 정한 일을 취소시킨다.

이어 하륜은 도읍지를 무악(毋岳ㆍ현재 연세대/이화여대 일대)으로 정할 것을 주장하지만, 다수 의견에 밀려 1394년 한양으로 정해진다. 그러나 한양으로 도읍지가 옮겨진 뒤 불행한 일들이 잇따랐다. ‘왕자의 난’으로 두 왕자와 개국 공신들이 살해되고, 태조가 사랑하는 후처 강씨가 죽었을 뿐 아니라 태조 자신은 아들(태종)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건강까지도 위독한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한양으로 온 지 5년 만인 1399년 개경으로 환도(還都)하는데, 이때 태조는 “내가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긴 뒤 아내와 아들을 잃었다”고 하여 한양 터 잡기의 실패를 시인한다.

태조의 수난은 도읍 잘못 정한 탓?

곳곳에 험석이 눈에 띄는 한양(경복궁)의 주산(위). 살풍이 불어오는 경복궁 자하문 쪽.

개경으로 되돌아갔지만 그곳에서도 천재지변과 괴변이 끊이지 않았다. 때문에 개경 환도 5년 뒤인 1404년 태종 이방원은 도읍지를 무악으로 옮기려 한다. 이때 태종은 부왕(父王)인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길 때 그에 찬성했던 지관들과 조정 대신들을 일일이 불러 심하게 꾸짖는데, 이 대목이 실록에 장황하게 묘사될 정도다.



그러나 무악으로 도읍지를 정하려 했던 태종의 뜻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국고가 비어 궁궐을 새로 조성할 여력이 없었고, 한양에는 이미 궁실이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한양의 혈처(穴處)라고 하는 경복궁에 머물고 있던 왕들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자, 왕들은 경복궁에 머물기를 꺼려해 주로 다른 궁궐에서 머물렀다. 그나마 임진왜란으로 인해 불에 타버린 뒤 경복궁 일대는 270년 동안 잡초만 우거져 있었다.

이런 얘기가 전해지는 두 곳을 풍수적으로 비교해보는 일도 흥미롭다. 한양(경복궁/청와대)의 경우 북악산과 인왕산이 모두 험석으로 강한 살기(殺氣)를 보이고, 북서쪽인 자하문 방향이 함몰되어 살풍(殺風)이 불어온다. 더욱더 심각한 것은 북악산에서 청와대와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산능선이 애매하여 지기(地氣)를 받을 수 없고, 명당 수가 부족해 충만한 생기를 받을 수 없다.

반면 무악은 어떤가? 북악산→인왕산→‘안산(295m)’으로 산능선이 흘러가면서 험한 바위는 부드러운 흙으로 바뀌고, 지기(地氣) 역시 순한 기운으로 바뀌어 생기(生氣)를 많이 쌓는다. ‘안산’을 중심으로 좌우로 청룡백호가 낮으나마 힘있게 연대/이대 터를 감싸 안고 있으며, 동시에 ‘안산’의 중심 줄기 가운데 하나가 현재 연세대 교정 한가운데까지 내려오면서 지기를 뿜어준다.

신행정수도를 정하는 데 다양한 요인들이 고려되겠지만 무엇보다 풍수적으로 부합하는 땅이어야 좋다. “풍수설이 분분하고 지관마다 말이 달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조선조 풍수학 고시과목과 같은 고증된 풍수 서적이 있기 때문에 그에 근거하여 풍수적으로 부합한지를 따지면 될 일이다.



주간동아 425호 (p90~90)

김두규/ 우석대 교수 dgkim@core.woos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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