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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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문수 없는 SKT 어디로 가나

내·외부 강력 반발에도 퇴진 결정 … 참여연대와의 단절·오너 직할체제 속 ‘과거 회귀’ 우려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03-04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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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문수 없는 SKT 어디로 가나

    업계와 주식시장은 표문수 SK텔레콤 사장의 퇴진을 의외의 일로 받아들였다.

    SK텔레콤(이하 SKT) 경영 일선에서 최태원 회장, 표문수 사장, 최재원 부사장 등 오너 일가와 손길승 회장이 동반 퇴진했다. 증권가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이 같은 조치를 환영하면서도 표사장의 퇴진에 대해선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표사장이 최회장과 고종 사촌간이라고는 하나 전문경영인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왔고, 그 자신 자진사퇴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표사장 후임으로는 김신배 현 SKT 전무가 내정됐다.

    최회장, 표사장 등의 퇴진이 결정된 것은 2월24일 SKT 이사회에서였다. 이사회는 장장 6시간이나 계속됐다. 사외이사들이 표사장의 사퇴를 극력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사회가 끝나기도 전 한 중앙일간지에 ‘표사장을 포함한 4명의 경영진이 일괄 사퇴한다’는 요지의 기사가 났다. 누군가 이들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논의 내용을 ‘흘린’ 것이었다.

    이날 이사회는 밤늦은 시간에야 끝났다. 사외이사들이 뜻을 굽히지 않은 까닭에 표사장의 퇴진은 3월12일 주주총회까지 협의를 연장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결정난 상황이다.

    계열사 지원 거절 등으로 ‘오너 눈 밖에’?

    표사장 사퇴설은 SKT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만만치 않은 파장을 불러왔다. SKT 임원들은 표사장을 면담한 자리에서 사퇴를 강력히 만류했다. 직원들 또한 노조를 중심으로 서명운동을 준비하는 등 분위기가 격앙됐다.



    외부에서 먼저 일성을 터뜨린 곳은 참여연대였다. 참여연대는 24일 밤늦게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의 입을 통해 “SKT가 표사장의 동반 퇴진을 결정한 것은 최회장 직할 체제 구축을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25일에는 좀더 구체적인 논평이 이어졌다. “불법·부실 경영의 책임이 있는 최회장, 손회장의 사임은 당연한 결정이다. 참여연대의 자진사퇴 권고 주주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본다. 그러나 표사장의 동반 사퇴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표사장은 여타 부실계열사에 대한 지원 부담에도 불구하고 SKT의 독립경영을 유지함으로써 투자자의 신뢰를 받아온 전문경영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SKT 안팎에서는 표사장에 대한 참여연대의 ‘긍정 평가’야말로 그의 예기치 않은 낙마에 결정적 원인이 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동안 표사장은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회생안 마련 과정에서 그룹 방침과 달리 지원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SK해운 분식회계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자금 지원을 거절했다.

    이전에도 표사장은 SKT의 기업 투명성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SKT와 사실상의 그룹 지주회사인 SKC&C 간 내부거래 문제점을 지적하는가 하면, 참여연대 추천 사외이사인 남상구 고려대 교수, 김대식 한양대 교수 등과도 긴장과 협력이 조화된 무난한 신뢰관계를 형성해왔다.

    표문수 없는 SKT 어디로 가나

    최태원 SK㈜ 회장, 최재원 전 SK텔레콤 부사장, 손길승 전 SK텔레콤 회장(왼쪽부터)

    이러한 표사장의 행보가 최회장과 손회장의 눈에 곱게 보였을 리 없다. 손회장은 자신의 SKT 이사직 사임이 확실시되자 표사장 동반 사퇴를 강력 주장하며 ‘배수진’을 쳤다고 한다. 최회장의 경우 표사장에 대해 우호적 시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왔으나 이번 사태를 통해 그 또한 ‘불편한 감정’을 키우고 있었음이 확인됐다.

    한 업계 인사는 “최회장은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몇몇 벤처기업에 SKT가 적극적 지원을 하지 않는 점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더 나아가 표사장이 자신의 영향력 밑에 있는 특정 회사를 통해 나머지 (SKT) 관계사들을 장악하려 한다는 의심도 했던 듯하다.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그룹 내·외부에서 ‘SKT의 그룹 분리’가 거론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 됐을 것이다. 누군가 구심점 역할을 한다면 아마도 표사장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한 가지 이슈는 이번 사태로 인해 사실상 SKT와 참여연대 간 협조관계가 종식됐다는 점이다. SKT 정관은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비율을 1대 1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퇴진한 사내이사는 손회장, 최회장, 표사장 3명. 그런데 사내이사 후보로는 1명만이 추천됐다. 애초 SKT측은 3명의 사내이사 명단을 제시했으나 표사장의 ‘돌아올 자리’를 염려한 사외이사들이 그중 2명의 추천을 거부한 것. 그럴 경우 사외이사 자리 또한 2개가 줄어듦을 인지했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 사외이사측 전언이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이미 이사회 자리에서, 표사장이 사퇴를 번복할 경우에는 2명의 참여연대 추천 사외이사 중 김대식 교수가, 번복하지 않을 경우에는 김대식 남상구 교수 둘 다 물러난다는 논의가 이루어졌다. SKT가 이들을 부러 몰아낸 것은 아니지만 (표사장 퇴진을 통해)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 속으로 몰아넣은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표사장 퇴진은 SKT 장기 악재 우려”

    한편 표사장을 비롯한 SKT 핵심 간부들은 이사회 다음날인 2월25일 새벽, 사퇴를 ‘확정된 사실’로 받아들이고 파문 조기 진화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논의의 핵심으로 떠오른 사항은 차기 사장. 한때 김수필 SKC 사장 입성이 유력시됐으나 사라지고 김신배 전무의 승진 발탁이 확정됐다. SK그룹 모 인사는 “김수필 사장은 손회장측 사람이다. 최회장이 그를 발탁할 리 없다. 최회장은 이사회 전 동생인 최재원 SKT 부사장을 사장 자리에 앉히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주변 반대로 무산된다. 이에 SKT 내부에서는 전혀 의외의 ‘최회장 사람’이 사장으로 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제 남은 부분은 조직 개편이다. 표사장의 구상과 비전 제시에 따라 구성된 SKT 조직이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냐는 것. 모 증권사의 이동통신전문 애널리스트는 “김신배 전무의 사장 발탁은 일단 고무적이다. 그러나 그가 표사장이 했던 것처럼 그룹 안팎의 강력한 외풍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증권가에는 오너 일가 동반 퇴진을 장기 호재, 표사장 퇴진을 단기 악재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판단이다. 표사장 퇴진이야말로 장기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전혀 다른 분석도 있다. 또 다른 유명 애널리스트는 “최회장도 여기서 더 나아가선 안 된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이를 빌미로 영향력 강화에 나섰다간 시장과 주주들의 집중 포화를 받게 돼 있다. SKT는 조직이 안정된 데다 표사장이 SK글로벌 지원 거절 등 좋은 선례를 만들어놓았다. 이를 다시 과거로 회귀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뛰어난 CEO의 후광은 오래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SKT에서 표사장의 ‘후광’은 얼마만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지금이야말로 신임 사장과 SKT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절실한 때”라는 한 임원의 심경 토로야말로 SKT 내부의 깊은 고민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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