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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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수로 학자 능력 평가 그래서 표절은 계속된다

  • 박성래 /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입력2004-01-08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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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첫 주에 날아온 소식은 한국과학자의 표절 추문이다. 영국의 세계적 과학주간지 ‘네이처’는 2004년 1월1일 첫 페이지 사설(editorial)에서 표절이란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 과학계가 느슨하게 대처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 같은 사설을 쓴 직접적 계기로 한국인 재료공학자 박모 박사의 표절 사실을 언급했다. ‘케임브리지 대학 물리실험실에서 일어난 표절사건은 규제 지침을 요구한다’라는 제하의 기사였다.

    그 주인공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95년부터 모교에서, 그리고 97년 영국연구기금의 장학금을 받아 케임브리지에서 연구하면서 80편의 논문을 발표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8편이 표절임이 밝혀진 것이다. 심지어 더 많은 논문이 표절로 밝혀질 수도 있다는 것. 그는 주로 러시아 논문을 베껴 영어로 발표해왔다. 러시아 논문을 읽는 과학자가 드물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된다.

    표절사건은 끊임없이 반복돼왔다. 2001년 말에는 미국 전기전자공학회 통신학회지(IEEE Communications Magazine)가 한국인 교수 3명의 표절사건을 폭로해 한국 과학계를 국제적 망신거리로 만든 적도 있다. 당시 동서대 백모 교수가 캐나다 논문을 표절했고, 공동 발표자로 각각 경북대와 포항공대 교수가 포함돼 있었다. 이래저래 한국 과학기술계의 국제적 망신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표절은 이미 과거에도 숱하게 벌어졌고,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라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예를 들어 미국 ‘뉴욕 타임스’의 한 과학기자가 저술한 ‘배신의 과학자들’이란 책은 바로 과학계 표절의 대표적인 사례들을 수집해 소개한 글이다. 20년 전 하버드대 한 의학자가 실험자료를 날조한 사건은 미국 국회까지 나서 조사단을 꾸릴 정도로 문제가 확대되기도 했다.

    가장 극적인 경우는 아랍에서 일어났다. 75년 획기적인 새 암 검사법을 개발하여 아랍에서 큰 명성을 얻고 있던 과학자 알삽티는 77년 요르단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미국으로까지 진출했다. 그는 자신의 검사법에 당시 이라크 대통령의 이름을 따 ‘바르크법’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놀랍게도 그의 실력은 모두 표절한 것이었다. 그는 한번 쌓은 명성을 계속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표절을 했다. 그의 표절방법은 미국의 유명하지 않은 학술지의 논문을 이름만 바꿔 외국 학술지에 게재하는 방식이었다. 처음 들통난 경우는 체코슬로바키아 학술지에서였지만, 곧 일본 논문이 미국으로, 미국 논문이 일본으로 수출된 경우도 발견됐다. 80년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로 드러나면서 종적을 감추는 것으로써 이 사건은 마무리됐다.



    이번 표절사건을 일으킨 KAIST의 박모 박사 역시 행적이 묘연하다고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표절이란 학계에 널리 퍼진 일임이 분명하다. 30여년 전, 내가 읽은 한 하버드대 박사 논문은 한국 학자들의 논문을 짜깁기한 것이었고, 시카고대의 한 박사학위 논문은 일본 다이쇼(大正)시대 민주주의 성장에 관한 일본 학자의 저서를 영어로 그대로 번역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한국 학자가 표절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억울해할 것도 없는 세상이다. 발표한 논문의 수로 학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류가 계속되는 한 표절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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