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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 ‘굿바이 레닌’

통독 그후 … 엄마 위한 가짜 역사 만들기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통독 그후 … 엄마 위한 가짜 역사 만들기

통독 그후 … 엄마 위한 가짜 역사 만들기
알퐁스 도데의 단편 중 ‘베를린 포위’라는 작품이 있다. 보불전쟁(프러시아의 지도 하에 통일 독일을 이룩하려는 비스마르크의 정책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나폴레옹 3세의 정책이 충돌해 일어난 프러시아와 프랑스 간의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당시의 파리. 죽어가는 애국자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딸과 의사는 아버지에게 전황을 완전히 반대로 들려준다. 프러시아군이 파리를 포위하는 동안 이 늙은 애국자는 베를린을 포위하는 프랑스군의 이야기를 듣는다. 드디어 베를린이 함락되었다고 확신한 노인은 군복 차림으로 테라스에 나갔다가 파리로 입성하는 프러시아군의 행진을 보게 된다.

‘굿바이 레닌’은 정확히 같은 설정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지 영화는 시대배경을 1980년대 말의 동독으로 옮겼을 뿐이다. 아버지가 서독으로 망명한 뒤 열성 공산당원이 된 알렉스의 어머니는 베를린 장벽을 제거하라고 주장하는 시위대에 끼여 있다 체포된 아들 알렉스를 보고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8개월 후 다시 깨어난 어머니에게 알렉스는 동독이 몰락해가는 지금 사정에 대해 차마 말할 수 없다. 그는 서독으로 와 직장동료가 된 데니스와 함께 동독이 아직 건재하다는 가짜 역사를 쓰기 시작한다.

‘굿바이 레닌’은 이중적인 코미디물이다. 영화는 구 동독체제를 예찬할 생각 따위는 없다(감독과 작가 모두 서독 출신이다). 대신 영화는 이 갑작스러운 통합 과정에서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향수를 묘사한다. 굉장히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추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1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 아무리 귀찮고 거슬렸던 삶의 방식도 향수의 대상이 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히 ‘좋았던 과거’를 묘사하지는 않는다. 10년은 동독이 ‘좋았던 과거’가 아니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긴 시간은 아니다. 대신 영화는 이 덜컹거리고 갑갑한 체제 속에서 충실한 당원으로 일해왔지만 바로 그 이상주의 때문에 허울뿐인 대접만 받고 무시될 수밖에 없었던 한 이상주의자의 비전이 가짜 역사 속에서 열매를 맺는 과정을 그리면서 관객들을 위로하려 한다.

결국 과거이건 현재이건, 현실은 고달프고 불완전한 법이며 이상주의자의 비전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는 곳은 허구와 꿈의 세계뿐이라는 메시지는 이 어처구니없는 코미디에 쓴맛을 더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굿바이 레닌’이라는 영화가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상주의의 위험과 허망함에 대한 경고로 먹힐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런 차가운 경고 대신 영화가 일차적으로 제공해주는 달콤씁쓸한 향수를 선택하겠지만 말이다.



주간동아 407호 (p90~91)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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