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9

2003.04.10

박해 …보복 … 언론 생각은?

노무현 대통령 적대적 감정 잇단 표출 … 취재시스템 개혁 속 신문 vs 방송 ‘편가르기’ 양상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3-04-04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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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해 …보복 …  언론 생각은?

    3월29일 청와대 연무관에서 열린 대통령 비서실 전 직원 워크숍(위). 노무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나란히 입장해 격려사를 했다.

    ”우리는 일부 언론의 시샘과 박해에서 우리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 “지난 5년간 ‘국민의 정부’를 끊임없이 박해한 언론과 한 시대를 같이 살아야 한다.” “적당히 소주 한 잔 먹고 우리 기사 잘 써주면 고맙고, 내 이름 한 번 내주면 더 고마운 시대는 끝내야 한다.”

    3월29일 청와대 연무관에서 열린 대통령 비서실 직원 워크숍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격려사는 마치 최후통첩이라도 되는 듯 격했다. 노대통령의 발언 중에는 ‘나쁜 언론’ ‘시샘과 박해’ ‘치명적인 상처’ ‘방어’ ‘긴장관계’ ‘배신감’ ‘보복’과 같은 단어들이 서슴없이 튀어나왔다.

    사실 노무현 정부는 언론과의 밀월기간도 없이 출범하자마자 첨예한 긴장상태에 돌입했다. 누가 먼저 포문을 연 것인지 따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2월24일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공권력을 통해 언론을 개혁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하지만 앞으로 불합리한 기사에 대해서는 인간적 관계를 통해 해소하려 하지 않고 정정보도와 반론도 청구하고 원칙대로 해나갈 생각”이라고 밝혀, 새 정부와 언론의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리고 3월11일 국무회의에서 ‘오보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처음에는 언론개혁의 당위성을 인정하던 사람들도 노대통령의 대(對)언론 발언이 지나치게 적대적이라는 데 우려를 표하기 시작했다. 한국기자협회 이상기 회장은 “대통령이 선언한 오보와의 전쟁이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오보를 막겠다는 취지라는 것은 십분 이해하지만 마치 언론을 경쟁상대로 보는 것 같아 유감”이라며 “이로 인해 동반자이자 감시자로서 언론의 기능이 제한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한 정치부 기자는 “우리가 정치인과 소주나 마시고 헛소리나 하는 사람들인가”라며 노대통령의 언론관에 서운함을 넘어 분노를 표시했다. 정말 노대통령은 언론과의 전쟁을 원하는가.



    밀월기간 없이 곧바로 첨예한 긴장 상황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시절부터 가까이에서 노대통령을 지켜본 한 인사는 “언론의 도움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부채감이 전혀 없는 분이다. 그래서 더욱 권력이 언론의 눈치를 보아서는 안 된다, 정부와 언론의 잘못된 관행을 바꿔야 한다, 오보는 바로잡고 당당하게 대처하자는 평소 소신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분”이라고 말한다.

    사실 노대통령과 언론의 불편한 관계는 역사가 깊다. 그는 야인시절 험난했던 정치행보만큼이나 언론과의 사이에 깊은 골이 패였다. 결정적으로 언론을 불신하게 된 계기는 1991년 한 주간지가 보도한 ‘호화 요트’ 사건. 당시 이 주간지는 ‘노무현 의원, 과연 상당한 재산가인가’라는 기사에서 인권변호사 출신인 그가 경력에 어울리지 않게 호화 요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부동산 투자를 했다고 보도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기사는 92년 14대 총선 때 악재로 작용했고 결국 그는 2선 고지에서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게다가 이 고약한 소문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95년 부산시장 선거, 2000년 총선, 심지어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까지 잊을 만하면 등장해 그를 괴롭혔다.

    박해 …보복 …  언론 생각은?

    잦은 실책으로 청와대 브리핑 시스템에 혼선을 가져온 송경희 대변인.취재사전허가제 등의 내용이 담긴 ‘홍보업무 운영방안’을 발표하는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3월27일 조영동 국정홍보처장 주재로 열린 40개 중앙 부처와 청의 공보관회의(왼쪽부터).

    당시 통합민주당 대변인이었던 노대통령은 해당 언론사와 명예훼손 소송을 벌여 1심에서 승소했으나 2심에서 취하했다. “대변인이 언론과 싸우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당 지도부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한다. 소송은 취하했지만 이미 낙선한 후였고 ‘언론권력’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때부터 노대통령은 언론에 대한 일종의 피해의식이 생겼고, 언론개혁이 신념처럼 자리잡았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노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언론관을 밝힌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 국민의 정부 시절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였다. 2001년 2월 언론사 세무조사에 정치적 의도가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여야가 공방을 벌일 때, “언론과 전쟁을 할 때가 됐다”며 앞장을 섰다. 당장 야당으로부터 “소관 부처도 아닌 해양수산부 장관이 언론 죽이기의 공격수 역할을 자임했느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언론개혁은제2의 6월항쟁” 등 더욱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이 무렵 대안언론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2001년 5월 한 강연에서 “수구언론을 그냥 두고서는 한국사회를 개혁할 수 없다. 정치인도 시민단체, 대안언론 등과 손을 잡고 잘못된 언론을 고쳐야 한다”고 소신을 밝힌 것이다. 실제 그는 대안언론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언론개혁을 위한 자신의 구상을 하나씩 실행에 옮겼다.

    인수위가 필요 이상으로 언론과 긴장관계를 형성한 것도 노대통령의 언론관과 관계가 깊다. 당시 인수위는 “악의적 오보에 끝까지 대응하겠다”며 언론과 신경전을 벌였고, 직접취재를 제한하고 브리핑 중심으로 기삿거리를 제공한 후 ‘인수위 브리핑’이라는 소식지를 통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반론을 펴서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인수위 기자실은 학원 강의실”이라는 푸념이 나오게 했다.

    ‘인수위 브리핑’이 ‘청와대 브리핑’으로 바뀐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청와대와 정부 각 부처 가판신문 구독금지, 청와대 기자실 개방과 브리핑 제도 도입, 방문취재 제한 등이 발표되자 “취재 문턱이 낮아졌다”고 환영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기자실은 개방했지만 취재원을 차단해서 사실상 국민의 알 권리를 봉쇄했다”고 반발하는 곳도 많았다.

    이어 3월27일 열린 ‘중앙부처 공보관 회의’에서 개방형 뉴스 브리핑 제도와 행정기관 사무실 방문 취재 금지 등을 골자로 한 ‘취재시스템 개선안’이 발표되자 언론은 일제히 불만을 터뜨렸다. 청와대에서는 송경희 대변인의 잦은 실책 등으로 브리핑 제도 자체의 실효성이 의심받고 있었고, 또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청와대 브리핑 시스템을 모방한 ‘홍보업무 운영방안’을 발표한 뒤 몇 차례 노골적인 취재 거부로 언론과의 갈등이 심화된 상태였다. 여기에 국정홍보처가 브리핑 시스템을 전 부처로 확대하겠다는 ‘취재시스템 개선안’까지 내놓자 기자들은 쌓인 불만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정보공개 입맛대로, 국민 알 권리 침해 우려’ ‘정부 취재 통제로 국민들만 피해’ ‘불리한 정보 기자 접근 봉쇄’ 등 참여정부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정부나 언론이나 새로운 방식에 익숙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인데, 본질에서 벗어난 문제를 가지고 지나치게 대결구도로 가는 것 같다”며 “새로운 취재시스템이 빨리 정착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류 언론은 이를 ‘언론 길들이기’의 시발점으로 해석했고 본격적인 반발이 시작됐다. 이들은 노대통령의 언론정책을 한마디로 ‘편가르기 정책’이라고 비난한다. 우선 방송에 대한 편애가 두드러진다는 지적. 노대통령은 3월7일 장관들이 참여한 국정토론회에서 “내가 대통령이 된 것도 언론과의 긴장관계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며 주요 신문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인정했다. 하지만 한국방송공사 창사 30주년 기념 축하연에서는 “방송이 없으면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라는 말로 방송에 대한 신뢰감을 표시한 바 있다. 또 청와대 홍보수석에 MBC 기자 출신인 이해성씨가 임명되고 KBS 아나운서 출신인 송경희씨가 대변인에 발탁되는 등 인사에서도 ‘방송 편애’가 두드러진다는 주장이다. 한 중견 언론인은 “신문은 상대적으로 거리를 두고 방송에 무게를 실어주며,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대안매체로서 온라인을 키우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했다.

    실제 청와대가 앞장서서 기자실과 주요 언론사에 배정된 부스를 없애고 기자 등록제를 실시한 것이나 신문가판 구독 금지, 언론사 창간기념 인터뷰와 축하 리셉션 참석 사절 등은 그 동안 주류를 자처해온 주요 신문들의 ‘힘 빼기’로 해석된다. 반면 당선자 시절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와 단독으로 창립 3주년 기념 인터뷰를 하고, 대선보도에서 노대통령에게 호의적이었던 신문사를 골라 방문한 점 등을 예로 들며 “코드가 맞는 언론만 상대하겠다는 뜻 아닌가. 이미 언론의 새 판 짜기에 들어갔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결정적으로 KBS 사장 선임을 둘러싸고 새 정부와 언론의 대결구도는 더욱 확실해졌다. “내년 총선을 겨냥해 측근을 앉혔다”는 외압설이 퍼지고 KBS 노동조합이 거세게 ‘낙하산 인사 철회’를 요구하면서 우호적이었던 방송과의 관계에 먹구름이 낀 것이다. 자연히 KBS 사장 선임에 깊게 관여한 측근 중의 측근이 누구인지, 또 노대통령의 언론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기자와 술 마시고 헛소리하지 마라”

    현재 노무현 정부의 언론개혁을 일선에서 지휘하는 ‘사령탑’은 이해성 청와대 홍보수석,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조영동 국정홍보처장,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다. 이장관은 기자실 폐쇄, 취재사전허가제를 발표하며 포문을 열었다. 강위원장은 2001년 김대중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신문고시 부활을 주도했다. 보도내용보다는 언론사 경영문제와 관련된 사안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장관의 취재시스템 변경안을 최종 집대성한 조영동 처장의 경우 ‘오보와의 전쟁’에서도 총대를 메고 있다. 국정홍보처는 정부 관련 보도가 오보라고 판단될 경우 언론중재위원회 정정보도 요청 수순을 건너뛴 채 바로 민·형사상 소송에 들어가는 안을 추진중이다.

    밖으로 드러난 4인 외에 노무현식 언론개혁의 큰 그림을 만든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할까. 청와대 관계자 A씨는 “그런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언론개혁 프로그램은 대선과정 등을 거치면서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해왔다는 것이다. A씨는 “언론개혁의 최고사령관은 바로 노대통령 자신”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최근 청와대에선 비서진들에게 “저녁식사 자리 등 기자들과의 ‘야간 접촉’을 자제하라”는 노대통령의 직간접적 권고가 내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최근 수년 동안 기자들과의 술자리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노대통령의 경험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은 노대통령 측근의 말이다.

    “노대통령은 소위 ‘언론플레이’를 모르는 정치인이다. 기사화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소주 한잔하면서 무심코 한 말인데 그 자리에선 잠자코 있다가 언론이 그 다음날, 혹은 수개월이 지난 뒤 불쑥 기사화하면 당사자 기분은 어떻겠나. 더구나 앞뒤 맥락 다 자르고 가장 자극적인 부분만 발췌한 뒤 거기에다 급진주의자니 하는 딱지까지 갖다 붙이는 상황까지 오면 서운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지 않은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언제부터인가 노대통령은 기자들과의 술자리를 피하게 됐다. 그가 임명한 장관들, 참모들도 대통령을 닮아가고 있다. 기자라면 낮(사무실)에도 안 만나고 밤(술자리)에도 안 만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수석비서관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실세 수석 방으로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가던 불과 수개월 전 청와대 풍경은 옛말이 됐다. 그런 와중에 “기자와 술 마시고 헛소리하지 말라”는 대통령의 질책까지 쏟아졌으니 그들의 입은 더욱 굳게 닫힐 수밖에 없다.

    미시적 관점으로 보면 노무현 정부의 언론개혁은 개인적 경험에서 촉발된 언론일반, 혹은 특정 언론사에 대한 대통령의 불신에서 출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청와대는 언론을 통한 국민과의 간접적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국민과의 직접적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기능을 강화하고 ‘청와대 브리핑’이라는 이메일 소식지를 각계에 발송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시도됐다. 이 전략은 현재 일정 정도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게 청와대측 설명이다.

    하지만 그만큼 기존 언론과 청와대의 거리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놓고 정부와 언론이 벌이고 있는 힘 겨루기에서 최종 심판은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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