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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제2의 이라크전 ‘미디어 전쟁’

총 대신 펜 들고 ‘전쟁 속으로’

종군기자들, 전선 누비며 목숨 건 취재 … 사망·실종자 속출해도 보도 열기 후끈

  • 쿠웨이트=홍은택 특파원/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euntack@donga.com

총 대신 펜 들고 ‘전쟁 속으로’

총 대신 펜 들고 ‘전쟁 속으로’

쿠웨이트 현지에서 종군 취재중인 동아일보 홍은택 특파원.

3월22일 저녁 쿠웨이트시티 외곽에 있는 힐튼 호텔. 이곳 1층에 마련된 미·영 연합군 미디어센터에서 공보를 담당하는 미군 소령이 전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내 말 들리나? 앞에 있는 사람들이 영국인이야, 아랍인이야?”

“아랍인.”

“그러면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말고. 적들이 전파를 탐지할지도 모르니까 휴대전화는 끄고, 밤새 그대로 있어. 내일 아침 만약 미군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손을 흔들어.”

통화는 여기서 끝났다. 길을 잃어 구조요청을 한 이 종군기자는 위성전화마저 끈 채 사막의 전장에서 기나긴 밤을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이날 밤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공보국장인 가이 실즈 미 육군대령이 흥분한 목소리로 기자들에게 “절대 국경을 넘지 마라”고 경고했다. 실즈 대령에 따르면 최소한 4팀의 기자들이 이라크 국경을 넘다가 미군과 이라크군의 사선(射線)에 노출돼 전화로 긴급구조를 요청했다. 실즈 대령은 “이중 20대의 차량과 24명으로 구성된 캐러밴은 무사히 구조됐으나 다른 세 팀의 구조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면서 “현재까지 최소한 3명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날 이라크 북부에서도 차량 폭탄 테러로 보이는 사고로 호주 기자 1명이 숨졌다. 어느 전쟁 때보다도 기자들의 초기 희생이 컸다. 이들은 미 국방부가 미군과의 합숙 취재를 허용한 600여명의, 이른바 ‘임베드(embed)’ 기자들이 아니다. 독립적으로 전황을 취재하려던 이들이다. 실즈 대령은 “임베드 기자 외에는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 미군이 임베드 이외의 기자들을 지나치게 통제한 것이 국경 잠입을 초래하고 있지 않은가.

“임베드 기자 외에도 1445명이나 되는 기자가 와 있다. 취재 요구를 다 수용할 수 없다.”

- 미국과 영국의 유수한 언론들에는 무제한적 접근을 허용하면서 다른 나라 언론들의 취재는 봉쇄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수많은 기자들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다.”

- 이라크 잠입이 기술적으로 불법인가.

“출국하려면 쿠웨이트로부터 출국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렇다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불법 아닌가.

“….”

미군 만류에도 국경 넘어 이라크로 … 과열경쟁 지적도

실즈 대령은 “어제 한 사진기자가 에디터로부터 당장 오늘 국경을 넘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내게 말했다”면서 사고의 원인을 언론의 무리한 취재 지시와 언론사들의 과당경쟁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 말은 전쟁 전문 취재기자에게 모욕이다. 이날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영국의 민간 TV방송 ITN의 테리 로이드 기자는 1983년부터 전장을 누벼왔다. 그의 노력으로 88년 이라크가 쿠르드족의 할라브자 마을에 화학무기를 떨어뜨려 5000명을 살상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93년 3월 세르비아인들이 집단 학살한 크로아티아인들의 무덤을 처음으로 찾아낸 것도, 97년 캄보디아 내전을 취재한 것도, 서방기자로서는 처음으로 코소보에 들어가 세르비아의 잔학상을 고발한 것도 모두 그였다. 당시 그는 눈 덮인 험준한 몬테네그로의 산악지대를 통과해 들어갔다. 그의 사망이 알려지자 ITN의 웹사이트(www.itn.co.uk)에는 그의 동료들은 물론이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이슨 조던 CNN 사장 같은 유명인사가 남긴 수백 건의 추모의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전쟁은 누가 먼저 일으켰느냐를 떠나, 가장 합리적인 동물임을 자처하는 인간의 가장 비합리적인 행동이다. 전쟁을 어떻게 하면 가장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보도할 수 있을까 역시 영원한 숙제다. 미군의 폭탄세례를 받고 있는 바그다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보도하는 기자들은 피해자 쪽에서, 미군과 함께 진군하는 기자들은 미군 쪽에서 보도할 수밖에 없다. 앵글이 그렇게 잡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전쟁에서 미군은 파격적으로 기자들을 군대와 함께 전선에 배치하는 ‘임베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91년 걸프전 당시 지나치게 기자들의 접근을 통제했다는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라지만 시각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쪽에서 바라보면 대치하고 있는 저쪽의 군인들은 자연스럽게 ‘상대방’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의 웹사이트에 고정 칼럼을 쓰는 프랑스의 심리학자 장 마리 샬롱은 “임베드 기자들이 보내는 사진과 기사, 방송화면은 전쟁을 바로 우리 코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근접했다고 해서 잘 보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역동적이고 살아 숨쉬는 화면과 기사는 시청자와 독자에게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각이나 전체적인 조망 대신 분노와 동정, 미움, 역겨움과 같은 감정을 제공한다”며 “그것은 새로운 덫”이라고 말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대규모 기자단을 파견하기도 한다. ‘뉴욕타임스’는 무려 30여명의 특파원과 사진기자들을 파견했다. 임베드 기자만 해도 미 육군 제3사단(스티븐 마이어스), 제101공중강습사단(짐 드와이어), V군단(버나드 와인러브), 생화학정보지원팀(주디스 밀러), 제1해병사단(존 키프너), 제2해병사단(마이클 윌슨), 미 해군 특수전 그룹(제임스 다오),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리티느 클레밋슨) 등 8명이나 된다. 여기에 바그다드에는 존 번스 기자가 버티고 있고 이라크 북부에서 에릭 슈미트와 찰리 르더프 기자, 이라크 남부에서 덱스터 필킨스 기자가 뛰고 있다. 종합적인 기사는 미 중부사령부 본부가 있는 카타르 도하에서 군사전문기자 마이클 고든이 쓴다. 이 밖에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터키 이집트 등에도 특파원이 상주, 취재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 물샐틈없는 취재망이다.

하지만 이렇게 취재망을 넓힐 만큼 여유 있는 언론사는 드물다. 그 공백에 바로 전쟁 전문기자가 있다. 이들은 어느 진지에도 속하지 않는다. 항상 중간에 있고자 한다. 그래서 양쪽에서 쏘아대는 기관총과 포탄의 십자포화에 노출되는 것이다.

이번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쿠웨이트시티에 온 기자만 2000명이 넘는다. 요르단에 있는 500여명을 포함하면 3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중에서 전쟁 취재에 익숙한 기자는 100여명도 안 된다. 이들에게 사막 주행용 4륜구동 지프와 일주일치 이상의 식량과 예비 연료, 텐트와 침낭, 위성위치 확인시스템인 GPS와 군사용 지도, 그리고 위성전화는 필수다. 여기에 현지 사정에 밝은 아랍인 통역도 대동하는데 위험수당을 포함, 하루에 300달러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

그래도 사고가 난다. 테리 로이드 기자와 한 팀을 이뤘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카메라 기자 다니엘 데무스티에르는 3월25일 기자를 만나 “어쩔 수 없는 불운이 겹쳤다”고 말했다. 그들은 쿠웨이트 국경을 넘어 이라크 남부 도시 바스라를 향해 가고 있던 중이었다. 미·영 연합군을 뒤로 한 채 앞서 달렸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이라크군 차량 2대가 나타나 그들을 따라붙었다.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것을 봐서는 이라크군의 태도는 적대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차량과 나란히 달리는 순간 미군의 포격이 시작됐다. 미군은 그들을 이라크와 같은 편으로 오인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군은 자신들이 포격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만약 이라크군이 접근하지 않았더라면 포격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일어나게 돼 있다. 로이드 기자는 전쟁 취재 20년 만에, 그리고 데무스티에르 기자는 취재 경력 15년 만에 처음 이 같은 일을 당했다. 한 지프에 타고 있던 두 사람은 운전석과 옆 좌석의 차이로 생사를 달리했다.



주간동아 379호 (p62~63)

쿠웨이트=홍은택 특파원/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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