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9

2003.04.10

유물 껴안고 낮잠 자는 ‘대학 박물관’

예산 부족·재단 무관심에 구색 맞추기식 운영 … 이대 등 파격 전시회로 변신 시도 ‘신선’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4-03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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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물 껴안고 낮잠 자는 ‘대학 박물관’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 속의 만화, 만화 속의 미술’ 전.

    ”석주선기념박물관이 어딘가요?”“잘 모르겠는데요.”

    서울 한남동 단국대학교 캠퍼스. 대학 교문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만난 학생들은 석주선기념박물관의 위치를 묻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석주선기념박물관은 단국대 교수였던 석주선 박사(1911~96)가 수집한 유물 9000여점을 기증받아 1981년에 문을 연 국내 최고의 전통복식 전문 박물관이다. 그러나 간신히 찾아간 석주선기념박물관은 문이 닫혀 있었다. 이곳은 화요일과 목요일 이틀밖에 문을 열지 않는 데다가 오후 4시면 폐관한다.

    석주선기념박물관의 모습은 오늘날 대학 박물관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현재 전국에 있는 대학 박물관 수는 90여곳. 대학박물관협회에 가입된 박물관의 숫자만 88개에 달한다. 전국 박물관의 절반 정도를 대학 박물관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박물관들은 대부분 학생들이나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대학 캠퍼스 깊숙이 위치한 데다 일요일과 방학 때면 문을 닫는 대학 박물관을 굳이 찾을 이유가 없다. 재학생들 역시 관심이 없다. 졸업할 때까지 자신이 다니는 대학의 박물관에 발 한번 들여놓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부살이에 전시물 비슷 ‘특성 없어’



    유물 껴안고 낮잠 자는 ‘대학 박물관’

    배꽃 모양을 형상화한 이대 박물관 전경(작은 사진 위)과 전시중인 작품들.

    이처럼 학생들이 대학 박물관에 무심한 이유는 대학 박물관이 너무도 눈에 띄지 않는 존재기 때문. 대다수의 대학 박물관이 독립된 건물 없이 도서관 등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데다가 기획전이나 세미나 등도 일부 전공자들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박물관에 관련된 교양 과정 학생들이 리포트 작성을 위해 들르는 것을 빼면 대학 박물관은 사시사철 조용하기만 하다.

    연세대학교 박물관의 박충래 학예연구실장은“대다수의 대학 박물관이 특성이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대학 박물관이 국립중앙박물관과 똑같다면 일반인들이 굳이 대학 박물관을 찾을 이유가 없죠. 각 대학 박물관이 특성화되어야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고 결과적으로 박물관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예산 부족에 허덕이는 대다수의 대학 박물관은 특성화 등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특히 사립대의 경우 대학 재단의 예산이 박물관 예산의 전부이기 때문에 재단이 박물관에 관심이 없으면 운영 자체가 힘들다. 예산 부족으로 유물의 보존처리나 교체 전시 등을 하기가 힘든 경우도 많다. 단국대 박성실 교수(전통의상학과)는 “석주선기념박물관의 오래된 섬유 유물들은 복제품을 제작해 전시하고 진품 유물은 수장고에 따로 두어야 오래 보존할 수 있다. 하지만 복제품 제작을 위한 예산이 없다”고 말했다. 이 박물관이 현재 주 2회만 개관하는 것은 이 같은 유물의 보존처리 문제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대학들은 애써 만들어놓은 박물관에 무관심할까. 하계훈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는“대학 박물관의 출발부터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종합대학교 설치령에 의하면 대학이 종합대학교로 승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학 박물관이 있어야 합니다. 이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적지 않은 대학 박물관이 그저 구색 맞추기용으로 만들어져 있는 상황이죠.” 이 때문에 대학들은 박물관 운영을 위해 전문인력을 육성하는 등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최근 이화여대 박물관이 이 같은 풍토에 경종을 울리고 나섰다. 3월8일부터 시작된 이대 박물관의 ‘미술 속의 만화, 만화 속의 미술’ 전은 미술과 만화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전시. 보통 학술 전시나 고미술, 고고학 전시 등에 치중해온 대학 박물관의 관례에 비교하면 이불, 오윤, 리히텐슈타인 등 국내외 작가 60여명의 작품을 모은 이 전시는 여러모로 파격적이다. 이대 박물관은 지난해 3월에도 ‘또 다른 미술사, 여성성의 재현’ 전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유물 껴안고 낮잠 자는 ‘대학 박물관’

    국내 대표적인 대학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단국대 석주선기념 박물관(위)과 연세대 박물관.

    또 이대 박물관은 대학 박물관으로는 처음으로 전시장 도우미인 ‘도슨트(Docent)’ 제도를 도입했다. 재학생으로 구성된 25명의 도슨트들은 관람객들에게 친절하게 전시에 대해 설명해준다. 이 같은 노력 덕에 지난 4년 사이 이대 박물관을 찾은 연간 관람객은 2만8000명에서 7만명 선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이대 박물관의 나선화 학예연구실장은 “이제는 대학 박물관도 현대화, 대중화를 시도할 때가 되었다”며 “대학 박물관의 기획전 등은 대학의 이미지를 높이는 홍보 효과도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학 박물관은 각 대학이 홍보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 될 수 있다. 또 예술경영, 문화행정 등을 전문적으로 배워보려는 젊은층이 늘고 있는 만큼 큐레이터 양성 교육, 어린이박물관 학교 등을 통해 재학생이나 지역사회 주민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 역시 얼마든지 있다.

    이대 외에도 최근 들어 박물관을 육성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작가 10명이 참여한 ‘독도진경’ 전으로 화제를 모은 서울대는 박물관 외에도 독립된 미술관 건물을 짓고 있으며 고려대 역시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 건물을 신축중이다.

    그동안 학생과 지역사회의 외면 속에서 캠퍼스 내 구중궁궐처럼 외롭게 자리하고 있었던 대학 박물관. 캠퍼스에 만개한 봄처럼 이곳 대학 박물관에도 진정한 봄이 올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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