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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이색도시① | 캐나다밴프

로키산맥 품속의 사계절 레저천국

  • 글·사진/ 밴프=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로키산맥 품속의 사계절 레저천국

로키산맥 품속의 사계절 레저천국

밴프 전경. 캐나다 관광원

로키산맥 품속의 사계절 레저천국

은행(위), 주유소(가운데) 등 밴프의 모든 건물은 주변의 산악지형에 어울리는 색과 자재를 사용해 만들어졌다. 밴프의 중심가인 밴프애버뉴.

캐나다 캘거리 공항을 출발한 지 1시간 반, 무심코 내다본 차창 밖으로 눈 덮인 산맥의 장대한 풍광이 펼쳐졌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부서지는 햇살을 무색케 하는 설봉의 위엄, 더욱 눈길을 잡아끈 것은 산맥 안쪽 저지대에 자리잡은 한 도시의 놀랄 만큼 깔끔하고 조화로운 자태였다.

차창 밖 가로수 길을 지나 나무로 만든 다리 뒤편으로 도시만큼이나 아담한 교회가 보이고, 교회 너머로 동화 속의 마을을 떠올리게 하는 주택가가 눈에 들어왔다. 주택가 지붕 위로는 온갖 새들이 재잘거리고, 골목길 뒤켠 언덕엔 다람쥐 가족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사방팔방을 둘러싼 순백의 산과 에메랄드 빛 호수가 자아내는 멋이 1만년 동안 변함없는 곳, 낮엔 젊은이들의 땀과 열기가, 저녁엔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빙하가, 때묻지 않은 낭만을 연출하는 곳, 캐나다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로키산맥 언저리의 산악도시 밴프는 이처럼 광대하면서도 정연하고 소박하고 부드러운 자태로 이방인을 맞았다.

앨버타 주에 속한 밴프는 캘거리에서 캐나다횡단고속도로를 따라 128km 떨어진 로키산맥 동쪽 비탈에 자리잡고 있다. 밴프국립공원을 품에 안고 있으며 북쪽으로 제스퍼국립공원과 요호국립공원, 코트니국립공원이 맞닿아 있다. 로키산맥의 봉우리들인 캐스케이드(2998m) 터널(1683m) 런드리(2949m) 설파(2285m) 노르퀴에(2515m)가 병풍처럼 사위를 둘러싼, 표고 1332m의 고지대에 터를 잡은 밴프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산악도시다.

산 중턱인가 하면 도시고, 도시인가 하면 다시 울창한 숲이다. 도시의 건축물 하나하나에서도 로키산맥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인공과 자연이 절묘하게 조화된 밴프는 살기 좋다는 캐나다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또 ‘가장 놀기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인구 1만명에 연간 관광객은 400만명

3월19일 오후 10시30분께 밴프타운 주민 편의시설 수영장.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듯한 10여명의 젊은이들이 프랑스어로 수다를 떨며 물놀이에 여념이 없다. 퀘벡 주 몬트리올에서 왔다는 이들은 하나같이 “캐나다에서 가장 놀기 좋은 곳이 바로 밴프”라고 했다. 갖가지 레저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데다 일자리가 널려 있어 언제든 직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21살인 블랑은 지난해 6월부터 밴프에서 살고 있다. 직업은 호텔 벨보이. 지난해 여름 밴프로 여행 왔다 그대로 눌러앉았다. YWCA에 숙소를 얻어 지내고 있는 그는 쉬는 날을 이용해 스노보드 강사 자격증까지 땄다. 그는 “여름철엔 친구들과 그동안 번 돈으로 캠핑을 하며 지낼 예정”이라며 “일당도 다른 곳에 비해 50% 가량 높은 밴프를 떠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로키산맥 품속의 사계절 레저천국

루이스 호수. 에어캐나다

1900년대 중반까지 밴프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개발’과 ‘파괴’였다. 철도와 도로공사를 위해 산 중턱은 잘려나갔고 금, 은과 석탄을 캐기 위해 곳곳에서 광산개발이 이뤄졌다. 천혜의 비경들이 제 모습을 잃어간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바로 이 파괴 과정에서 철도가 놓이면서 밴프는 전 세계에서 매년 수백만명이 모여드는 관광휴양지로 발전하는 토대를 갖추게 된다. 현재 밴프에 등록된 인구는 약 7000명이지만 블랑 같은 뜨내기 인구를 고려하면 1만여명 정도가 도시에 거주한다. 관광객 수는 연간 400여만명. 도시인구의 수백 배에 이르는 관광객들이 연중 몰려드는 셈이다.

캐다나 횡단철도 건설은 1800년대 후반 캐나다 연방정부의 숙원 사업이었다. ‘캐나다’란 이름의 새 국가가 세워졌는데도 퀘벡·온타리오 주 등 동부의 인구 밀집지역과 로키산맥 서편의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를 오가는 교통수단이 남미대륙을 도는 바닷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캐나다가 진정한 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선 철도와 도로의 연결이 시급했던 것이다.

그러나 철도를 연결하는 데는 만만찮은 비용이 소요됐다. 철도공사에 나선 상당수의 중국 독일 출신 철도 노동자들이 로키산맥 구간 공사중에 목숨을 잃었을 만큼 로키산맥을 가로지르는 철도 건설은 힘겨웠다. 또 다른 문제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철도가 이어지더라도 이를 이용할 승객이 없다는 점. 당시엔 화물열차의 수요가 많지 않아 철도회사의 도산은 불 보듯 뻔했다. 정부와 유착되어 있던 철도회사는 관광사업을 벌여 유럽인들을 유치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연방정부에 특혜를 요구했다.

‘본전을 뽑기 위해’ 관광산업이 시작됐고 그 과정에서 밴프가 대표적인 관광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공황 이후 실업대책의 일환으로 로키산맥 일대가 개발된 것도 밴프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밴프가 현재 1년 동안 벌어들이는 관광수입은 약 40억불. 고육지책으로 시작한 관광사업이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결실을 맺은 것이다.

겨울엔 스키, 여름엔 등산 등 레저 적격

밴프는 여름 등산 캠핑 시즌엔 ‘레저스포츠의 천국’, 겨울 스키 시즌엔 ‘1년 중 5개월 동안 스키를 탈 수 있는 곳’이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1년 내내 유럽과 일본의 부자들이 찾아와 엄청난 돈을 뿌리고 간다. 6월부터 붐비기 시작해 10월까지 계속되는 여름 관광 시즌과 겨울 스키 시즌에 몰려드는 관광객들은 고스란히 밴프 주민들의 수입으로 이어진다. 불과 1만여명의 인구가 400만명의 관광객들이 뿌리는 돈을 거둬들이는 셈이다.

밴프 주민의 대부분은 관광산업에 종사한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도 하고 B&B(잠자리와 아침식사를 제공해주는 민박)로 생계를 꾸리기도 한다. 샐러리맨의 경우도 대부분 호텔이나 스키장 등 관광지에서 근무한다. 연간 400만명의 관광객이 찾다 보니 도시 전체가 숙박시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호텔과 민박집이 많다.

도심에서 B&B를 운영하는 마리아 엔도르카씨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무엇보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엔도르카씨의 집에서 침실 두 개를 빌리면 4~5명이 함께 지낼 수 있다. 주방엔 전자레인지와 식기는 물론이고 식기세척기까지 설치돼 있어 내 집에서처럼 생활할 수 있다.

로키산맥 품속의 사계절 레저천국

▲산자락에 자리잡은 밴프의 주택가.▼ 겨울엔 스키·스케이트 등 겨울스포츠를, 여름엔 승마· 낚시·모터보트·스킨스쿠버 등 다양한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밴프는 ‘레저스포츠의 천국’으로 통한다.

제임스 듀플리어씨(58)는 10년 전 엔지니어로 일하다 은퇴, 현재 밴프에서 프리랜서 관광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6월부터 시작되는 여름 시즌에 2~3개월 정도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낚시 승마 골프 등 레저스포츠를 즐긴다. 그는 “주변 산들의 등산 코스에서 삼림욕을 즐기고 온천에서 하루의 피로를 푸는 반복되는 일과가 전혀 지루하지 않다”며 “밴프센터 등 문화시설도 풍부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도시생활의 풍요로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관광객을 위한 밴프의 배려는 특히 눈에 띈다. 고속도로 곳곳엔 ‘뷰 포인트’가 만들어져 있다. 풍광이 좋은 곳마다 차를 세우고 경치를 보면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돼 있다. 5개의 골프장과 3개의 스키장을 비롯해 호수 주변을 걷는 하이킹코스와 다양한 등산로, 낚시·스킨스쿠버 등 해양스포츠, 개 썰매, 승마 등 곳곳에서 즐길 수 있는 레저활동은 관광객을 설레게 한다. 밴프에서 여행사와 민박집을 운영하는 윤규남씨(banffyun@monarch.net)는 “주변환경을 절묘하게 활용한 래프팅·트레킹(등산)·승마 코스와 스키장 골프장 등 로키산맥의 풍광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야생동물을 벗 삼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돼 있는 게 한국의 산악도시와 밴프가 구별되는 점”이라고 말했다.

100년 전부터 ‘자연과 개발’ 조화

이처럼 밴프는 순전히 천혜의 자연환경 덕으로만 관광도시로 성공한 게 아니다.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산악 개발로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환경을 제공한 것이 밴프가 관광도시로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시청사와 상가, 주유소, 은행 등 도심의 모든 건물은 은은한 색깔의 목재가 주요 자재다. 산자락에 자리잡은 주택가도 마찬가지. 지붕 모양과 건물의 색깔까지 주변 산악지형과의 조화를 고려해 엄격하게 규제하는 터라 ‘인공물’조차도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울긋불긋 페인트칠을 한 콘크리트 건물이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는 한국의 산악도시들과 차별되는 대목이다. 시청에 근무하는 에드워즈 슐츠씨는 “100년 후 후손들에게 오늘날의 자연환경을 물려주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간판에 대한 규제도 엄격해 조금이라도 주변환경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또 도시의 미관을 위해 3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다. 따라서 1급호텔들도 외관은 작은 펜션과 별반 차이가 없다. 주민들이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칠 때도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재건축·개축 신청을 하면 시청은 이를 지역 일간지에 공시한다. 주민들의 이견이 없을 경우 시청의 조사가 실시된다. 물론 허가를 받기 위해선 환경친화적인 설계가 기본이다.

밴프 주민들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다. 토지에 대한 권리는 연방정부에 있는 것. 따라서 정부로부터 받은 땅에 집을 짓고 매매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투자 목적으로 땅을 사거나 집을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밴프에서 직업을 갖고 있거나 사업을 하지 않으면 주택을 구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유층들이 투기나 휴식을 목적으로 별장을 짓는다거나 새로 호텔을 짓는 게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는 것이다. 캐나다의 국민적 ‘아이스하키 영웅’ 웨인 그레츠키가 밴프에 별장을 갖고 있다 적발돼 마을에서 영구 추방된 적도 있다. 현재 운영중인 호텔 중 일부는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철거당할 위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산악도시 밴프는 ‘보전’의 도시였다. 개발로 관광객을 유치하면서도 엄격하게 자연과 환경을 지킨다. 로키산맥의 산들과 한국의 명산들을 단순비교할 수는 없지만, 난개발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우리의 국립공원들을 살리기 위해서도 밴프의 성공사례를 한 번은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밴프 시는 보다 많은 스키어들을 유치하기 위해 시내 중심가의 기차역과 스키장을 잇는 케이블카를 설치할 계획이다.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위해선 나무를 베고 산을 깎아야 한다. 시청 관계자는 ‘절제된 개발’이라고 설명했다. 절제된 개발? ‘보존’과 ‘개발’은 동전의 앞뒷면이 아니다. 그들에게 로키는 ‘보존’의 대상이 아닌 ‘보전’의 대상이었다.





주간동아 379호 (p84~87)

글·사진/ 밴프=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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