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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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상박 ‘대선 플레이 오프’ 막 오르다

노-정 예상 깨고 단일화 극적 합의… “의미 없는 2등 싸움 그만” 불리한 형세 공감 ‘승부수’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2-11-20 14: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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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상박 ‘대선 플레이 오프’ 막 오르다

    민주당 노무현,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통령후보가 11월16일 국민여론조사에 의한 후보단일화에 합의한 뒤 여의도 한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으로 러브샷을 하고 있다.

    11월15일 밤 10시30분경, 버스에서 내려 국회본관 계단을 오르는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수행하던 김행 대변인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담판을 짓겠다. 내가 (후보를) 해야 되겠다. 노후보에게 물러나라고 말하겠다.”

    정후보는 선선히 답변했다. 김대변인은 정후보의 말투에서 ‘현대식’ 밀어붙이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정후보는 세부적인 수단과 전략이 부족했다. 정세분석팀들이 만든 협상용 자료를 본체만체했고 이어지는 일정으로 참모들과의 대화도 갖지 못했다. 김대변인이 걱정스러운 듯 다시 물었다. “잘 될까요?” 정후보는 “내게 맡겨주세요”라며 협상장으로 들어갔다. 2시간 뒤, 정후보는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 방식을 전격 수용했다. 정후보 측근들이 몇 차례나 ‘불가’ 판정을 내린 그 방식을 정후보가 덥석 받아들인 것이다. 1강2중 체제가 막을 내리며 새로운 대선구도가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정후보, 측근들 만류에도 ‘여론조사 방식’ 전격 수용

    노-정 후보의 ‘플레이오프’는 예측을 불허한다. 불가측성은 관전자들의 흥미를 배가시켜 흥행 가능성을 예고한다. 반대로 참모들은 죽을 맛이다. 특히 정후보 주변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지된다. 정후보의 한 측근은 “정후보가 안이하게 판단한 것 아니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노-정 후보의 지지도가 역전된 18일 이후 정후보의 전략 실책에 대한 지적은 더욱 많아지고 있다. 정후보의 결단에는 비밀이 있는 것일까. 노-정 회동 직전 정후보와 대화를 나눈 김대변인의 설명이다.



    “1강2중 구도로 가봐야 2, 3등 싸움이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럴 바에야 승부수를 던지는 게 낫다. 그런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여기에 정후보 특유의 스타일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또 다른 측근의 설명이다.

    “양당의 협상 창구였던 신계륜(민주당)-민창기(통합21) 라인이 가동된 직후 민주당측이 대의원 지명권을 후보가 갖는다면 50%(국민 여론조사)-50%(각 당 대의원)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이 안을 보고받은 정후보는 후보가 대의원을 지명하는 여론조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외면하더라.”

    명분을 좇겠다는 것이고 이런 연장선상에서 여론조사란 승부수를 받아들였다는 설명이다.

    용호상박 ‘대선 플레이 오프’ 막 오르다

    국민통합21 이철 후보단일화 협상 단장이 11월12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선거전략회의에 참석해 단일화 협상 관련 보고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의와 명분만으로 결단의 배경을 설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필시 다른 곡절이 있어 보인다. 그 하나의 흐름이 김대변인으로부터 출발한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김대변인은 노-정 회동을 앞두고 최근 업데이트된 각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 정후보에게 보고했다. 모든 여론조사 결과가 노후보를 압도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비슷한 시기, 정세분석팀들도 양당 대의원 50%, 일반국민 50% 대상의 여론조사 방식을 거둬들이고 노후보측의 제안을 수용하더라도 반드시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정후보에게 올렸다는 후문이다. 대의원 상대 조사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노후보에게 이를 계속해서 요구할 경우 단일화 자체가 깨질 가능성도 강조됐다. 그렇게 되면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지지도가 다시 하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빠지지 않고 지적됐다는 것이 통합21측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국 승산을 염두에 둔 ‘정면돌파’라는 얘기다.

    용호상박 ‘대선 플레이 오프’ 막 오르다

    10월25일 민주당 중앙선대위 본부 단장 회의.

    그러나 후보단일화 합의 이후 상황은 묘하게 흐른다. 그동안 1~2% 우위를 점하던 정후보와 노후보의 지지율에 역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앙일보와 영자신문 중앙데일리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40.5%, 노무현 23.8%, 정몽준 21.6%으로 나타나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한국일보 여론조사도 노-정의 뒤바뀐 흐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정후보측은 단일화 직후 터져나온 이상징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정후보측은 18일 “여론조사의 구체적 방법이 노출돼 여론 조작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합의된 여론조사안의 백지화를 요구했다. 역전된 지지율이 주는 압박감을 감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노후보측은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 합의와 단일화 후 정후보를 앞서는 여론지지도에 대해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노후보측은 “노후보 특유의 ‘깡’이 담판을 유리하게 만들었다”고 보고 있다. 정치적 수 싸움에서 정후보를 압도했다는 것이다. 노후보는 한 측근이 “협상 과정을 설명해달라”고 하자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노후보는 당초 정후보의 승부수를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회담 직전 선대위 핵심 본부장들이 노후보에게 건의한 내용이 이를 뒷받침한다. “정후보가 양당 대의원을 새로 뽑을 수 있다는 제안을 해올 것이다. 그러나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절대 양보해선 안 된다.”

    회동장으로 가는 노후보의 손에 쥐어준 협상의 마지노선은 ‘정후보측이 주장하는 양당 대의원 참여 비율을 20~30% 정도로 낮추는 것’이었다는 게 한 측근의 설명이다. 노후보측은 단일화에 실패하더라도 지지율 역전을 통해 정후보를 압박할 수 있다는 내부 판단을 이미 내려놓았다(상자기사 참조). 설령 대선에 패배하더라도 개혁세력 중심 정당을 만들어 미래를 도모하겠다는 장기적인 전략에 대해서도 이심전심으로 의견을 나눈 상태다. 따라서 노후보는 여론조사라는 원칙을 끝까지 사수, 1강2중이라는 3자구도로 대선을 치를 각오까지 다졌다고 한다.

    탈당파 움직임 잠잠… 일부에선 ‘회군’ 가능성 점쳐

    용호상박 ‘대선 플레이 오프’ 막 오르다

    10월7일 민주당 내 대통령후보 단일화추진협의회 소속 의원들이 단일화 추진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노후보측은 반전된 여론조사를 토대로 ‘승기’를 잡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단일화 이후에 대한 검토작업도 신속하게 진행하고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문제는 단일후보 결정 이후 양당 관계. 노후보측은 통합론과 연대론을 들고 이해를 따지고 있다. 일단 대선 전 합당이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전격적인 합당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살림이 단출한 국민통합21이 원할 경우 당대당 통합도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게 당직자 L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정후보가 단일후보로 등장하면 합당은 불가능할 것으로 노후보측은 보고 있다. 통합21이 민주당 조직을 흡수할 공간이 없는 데다 탈(脫)DJ 등을 고려할 때 합당의 실익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노후보측은 후보단일화 합의 이후 일고 있는 정치권의 지각변동도 유심히 보고 있다. 민주당 후보단일화협의회(이하 후단협)를 중심으로 한 탈당파들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점은 청신호로 보고 있다. 노후보측은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후보단일화를 전후해 ‘회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이들의 회군을 위한 접촉 창구를 구성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후단협의 상당수가 반노 성향 이탈파임을 감안, 이들이 후보단일화 움직임과 관계없이 별도의 신당 창당을 강행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노후보와 정후보가 단일화에 합의했지만 양강체제까지 가는 데는 숱한 난제가 기다린다. 먼저 ‘지는 자의 선택’이 문제다. 여론조사의 공정성을 문제 삼아 불복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노-정 후보의 조직들이 여론조사 결과를 이의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는 후보간의 약속과는 또 다른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민주당과 국민통합21에선 이런 돌발 변수를 원천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대선 과정은 물론 대선 이후까지 노-정이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를 뒷거래라고 비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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