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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훈의 ‘길을 따라서’ | 남해도의 해안일주도로

갯마을 풍경화 모델 딱 그곳

  • < 양영훈/ 여행작가 > www.travelmaker.co.kr

갯마을 풍경화 모델 딱 그곳

갯마을 풍경화 모델 딱 그곳
남해도는 섬이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 가면 섬이라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워낙 큰 섬이기도 하거니와 남해대교를 통해 한강 다리 건너듯이 수월하게 들어갈 수 있게 된 덕택이다. 섬 여행을 하면서 섬의 정취를 제대로 느껴보려면 아무래도 한번쯤은 배를 타는 게 좋다.

남해도에 가려면 반드시 남해대교를 통과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들 있지만, 실은 배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다. 사천항(옛 삼천포)에서 낡은 철부선에 차와 몸을 싣고 약 20분만 가면 남해군 창선면의 단항선착장에 닿는다. 항해하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게 흠이지만, 그나마도 얼마 뒤에는 아예 끊길 처지에 놓인 뱃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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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항선착장을 빠져나오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의 3번 국도는 창선면 소재지를 경유하는 지름길이고, 오른쪽의 1024번 지방도는 창선도의 바닷가를 따라 우회하는 해안 드라이브코스다. 두 길 가운데 1024번 지방도가 훨씬 더 운치 있다.

이 길이 지나는 창선면 대벽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후박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일명 ‘왕후박나무’(천연기념물 제299호)라고 불리는 이 나무 아래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점심을 들며 쉬어갔다는 전설도 전해온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창선도를 가로질러온 두 길은 창선교 앞에서 합류하여 지족해협을 건넌다. 창선교 위에서는 지족해협 일대의 수려한 풍광뿐만 아니라, 봄에 개불(연체동물의 일종. 회나 구이로 먹음)을 잡거나 썰물 때에 죽방렴 안의 고기를 건져 올리는 광경도 볼 수 있다.



오롱조롱 떠 있는 섬 구경 일품

창선교를 건너서면 심동면 소재지인 지족리다. 여기서 길이 다시 나뉘는데, 드라이브를 즐기려면 왼편의 3번 국도를 택하는 게 좋다. 지족리에서 물건리까지의 약 20리 구간은 딱히 눈길을 끄는 풍경은 별로 없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 편하게 달릴 수 있다. 물건리에는 남해안 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풍림으로 꼽히는 ‘물건리방조어부림’(천연기념물 제150호)이 있어서 잠시 쉬어 가기에 안성맞춤이다.

물건리에서 미조항까지는 약 14km의 물미해안도로 구간을 지나게 된다.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구간이라 한시도 방심할 수 없지만, 시네마스코프의 화면처럼 웅장하면서도 변화무쌍한 길가의 풍광이 가히 환상적이다. 더욱이 물건, 은점, 대지포, 노구, 항도, 초전 등의 갯마을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일점선도(一點仙島)’라는 남해도를 일컫는 옛 수사가 썩 잘 어울리는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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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항은 어항(漁港)이자 미항(美港)이다. 항구 주변의 풍광도 빼어나거니와 고깃배들로 분주한 선창에는 어항 특유의 활기와 생명력이 가득하다. 미조항과 인근 송정해수욕장 간에는 기존의 19번 국도 말고도 최근 깔끔하게 단장된 해안도로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 해안도로는 맑고 깨끗한 설리마을의 해변, 미조항의 앞바다에 오롱조롱한 섬들, 항아리처럼 움푹한 송정해수욕장의 경치를 조망하기에 좋다.

솔숲 좋은 송정해수욕장을 지나면 남해군 최대의 해수욕장인 상주해수욕장이 지척이다. 일년 내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상주해수욕장에는 숙박업소, 음식점 등의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교통도 편리해서 하룻밤 묵어 가기에 좋다. 상주해수욕장을 지나면서부터 바다와 멀어진 19번 국도는 상주면 벽련마을 부근에서 다시 바다에 안긴다. 이 마을 앞에 호수처럼 펼쳐진 앵강만에는 서포 김만중이 유배됐던 노도가 떠 있다.

벽련마을에서 6km쯤 더 가면 신전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왼쪽의 1024번 지방도로 접어들면 남해도 해안 드라이브코스의 백미를 감상할 수 있다. 길은 시종 앵강만과 여수만의 쪽빛 바다를 옆에 끼고 바닷가의 가파른 산허리를 굽이굽이 돌아 펼쳐진다. 앵강만 건너편으로는 남해 금산이 우뚝하고, 여수만 저편에는 여수반도와 돌산도가 빤히 건너다 보인다. 더욱이 남면 일대의 바닷가에서는 인공의 계단식 논밭과 천연의 기암절벽이 절묘하고도 자연스럽게 어울린 풍광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경관 좋은 암봉과 해안절벽을 끼고 있는 홍현리 가천마을의 계단식 논밭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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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마을은 응봉산 아래 자리잡은 마을이다. 마을이 들어앉은 산비탈의 경사가 어찌나 급한지 논밭뿐만 아니라 민가조차도 층층이 계단을 이룬다. 또한 마을 아래쪽의 바닷가에는 비바람과 파도에 깎이고 부서진 갯바위와 바위벼랑이 우뚝우뚝 솟아 있다. 이처럼 자연환경이 척박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곳엔 지금도 ‘미륵바위’라 불리는 토속신앙의 상징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가천마을을 지나온 뒤에도 풍치 좋은 갯마을이 연이어 나타난다. 잿빛 몽돌해변을 거느린 선구마을, 남해도에서 가장 운치 있고 아늑한 해수욕장을 품은 사촌마을도 이 길이 지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서면의 해안도로에서는 바다 건너편의 여천석유화학공단, 석유비축기지, 광양제철소, 하동화력발전소 등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인다. 게다가 강줄기처럼 좁고 긴 여수만 바닷길로는 대형 유조선과 화물선이 끊임없이 오간다. 다른 세상처럼 낯설게만 느껴지는 풍경들이 한달음에 건너뛸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펼쳐져 있다. 실제로 남해도와 여수반도 사이를 한달음에 건널 수 있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 남해군 서면 노구리와 고현면 소재지 사이의 1024번 지방도 구간이 지난해에 77번 국도 구간으로 승격되었는데, 이곳 노구리와 여수시 낙포동 사이의 여수만 바다 위에 거대한 연륙교가 놓일 예정이다.

마을 한복판에 ‘정지탑(鄭地塔)’이라는 독특한 석탑이 서 있는 고현면 소재지에서는 77번 국도, 19번 국도, 1024번 지방도가 만난다. 그중 1024번 지방도를 택하면 남해도의 맨 북쪽에 위치한 설천면 일대를 두루 거쳐가게 된다. 서면과 남면 일대의 바다 풍광이 호방하고 장쾌하다면, 설천면의 바다는 아기자기하고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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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리는 남해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남해의 관문 구실을 하던 곳이다. 풍광 좋고 운치 그윽한 남해도의 해안일주도로도 여기서 시작되거나 끝난다. 이 노량나루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언덕에는 충렬사(사적 제233호)가 자리잡고 있다. 1598년 11월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과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다.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이충무공의 주검은 고향인 아산으로 운구되기 전에 석 달 동안 이곳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충렬사 경내에는 당시 이충무공이 묻혔던 가묘가 남아 있다.





주간동아 352호 (p88~89)

< 양영훈/ 여행작가 > www.travelma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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