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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이투마마’

영원한 테마 性의 통과의례

  • < 김시무/ 영화평론가 > kimseemoo@hanmail.net

영원한 테마 性의 통과의례

영원한 테마 性의 통과의례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가 재심에서도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이는 아직 등급외 전용관이 없는 우리나라 실정을 감안하면 상영불가 조치나 다름없다.

70대 노부부의 성생활을 정면으로 다룬 이 영화는 성기 노출과 구강 섹스 장면 때문에 일반 관객에게 선보일 기회를 박탈당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멕시코 영화 ‘이투마마’(2001년)를 논하는 자리에서 ‘죽어도 좋아’를 거론하는 까닭은 두 작품이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기 때문이다.

‘이투마마’도 미국영화협회(MPAA)에서 제한등급 판정을 받았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온전히 개봉될 리가 만무하다. 그야말로 가릴 것은 다 가리고 잘릴 것은 다 잘린 채 간신히 극장에 내걸리게 되었다.

김수용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은 ‘죽어도 좋아’의 재심 이전에 ‘어둡게 만든 필름을 가지고 와 등급을 매기라고 했다면 18세 이상 등급을 내줬을 것’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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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R등급을 받은 ‘이투마마’는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수작으로 흥행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포르노그래피로 싸잡아 비난하기에는 너무 사려 깊고 성숙한 성에 관한 담론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위대한 유산’을 통해 세계적 감독으로 부상한 감독의 작품답다는 것이었다.



영화의 제목은 무척이나 도발적이다. ‘네 엄마도 마찬가지(Y TU MAMA TAMBIEN)’, 즉 너의 엄마와도 잤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쿠아론 감독은 이처럼 과감한 제목하에 솔직 담백하게, 때로는 신랄하게 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화면에서는 격렬한 섹스 장면이 펼쳐진다. 마치 갈수록 표현 강도가 세질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영화는 성적 호기심으로 가득 찬 두 학생이 미모의 유부녀를 만나 성에 대해 눈뜨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원한 테마 性의 통과의례
우리 식으로 고3인 테녹(디에고 루나)과 훌리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는 단짝 친구다. 한쪽은 부잣집 아들이고 다른 한쪽은 그렇지 못하지만 가정환경 따위는 그들의 우정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둘은 만났다 하면 섹스 이야기뿐이고, 여자친구를 만나도 섹스하기에 바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의 여자친구들이 방학을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게 된다.

무료함을 자위행위로 달래던 두 사람 앞에 미모의 유부녀 루이자(마리벨 베르두)가 나타난다. 남편의 외도 탓에 몹시 우울한 상태다. 결국 두 젊은이의 꼬임으로 세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천국의 입’이라는 해변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 도중 그렇게도 친했던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루이자를 사이에 두고 제각각 성적 욕망이 발동한 탓이다.

감정이 격해진 테녹과 훌리오는 결국 서로가 상대방 여자친구와 동침했다는 말까지 내뱉고 만다. 여자친구가 가장 친한 남자친구와도 잤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로드무비의 형식을 통해서 이런 성 이야기를 아주 능청스럽게 펼쳐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방종을 도덕적으로 탓할 생각은 전혀 없는 듯 보인다. 청소년들이 갖는 성적 호기심은 외적 개입으로 막아야 할 악의 뿌리가 아니라 성장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거쳐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라는 사고가 엿보인다.

프로이트는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와 일심동체였던 아이가 엄마와 동침하고자 하는 것은 원초적 본능이라고 했다. 이런 본능을 넘어서 또 다른 이성을 찾는 것이 사회화의 첩경임은 물론이다. 이렇게 볼 때 ‘네 엄마와도 잤다’는 의미의 원제는 그 이성이 하필 친구의 엄마라는 의미에서 성적 욕망의 극단을 암시한다. 물론 이 영화는 그 한계수위를 넘어서지는 않았다.

나는 국내판 제목부터 불구가 되고 화면이 듬성듬성 모자이크 처리된 ‘이투마마’를 보면서, 또한 재심에서마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죽어도 좋아’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의 성 담론 수준에 다시금 실망했다.

아무리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애정행각을 다루었어도 성기 및 체모 노출만 없으면 무사통과인 것이 우리의 현 심의 수준이다. 이래서는 건전한 성 담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주간동아 352호 (p84~85)

< 김시무/ 영화평론가 > kimseem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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