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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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행크스 갱 영화는 뭐가 다를까?

  • < 김시무/ 영화평론가 > kimseemoo@hanmail.net

    입력2004-10-01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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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 행크스 갱 영화는 뭐가 다를까?
    ‘로드 투 퍼디션(Road to Perdition)’이라니 도대체 무슨 뜻일까? 처음엔 언뜻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길이라는 말이 있는 걸 보니 퍼디션이란 아마 지명쯤 되겠지, ‘인도로 가는 길(Road to India)’이라는 영화도 있으니까, 라고 생각했다.

    과연 맞았다. 퍼디션은 지명이었다. 그런데 그 지명에 아이로니컬하게도 ‘파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영어 제명을 그대로 옮기면 ‘파멸의 길’이 될 것이다. 영화수입사에서 왜 영어 발음 그대로를 제목으로 고집했는지 알 것 같다. 곧이곧대로 번역했다면 영화의 주제의식 및 결말을 너무 뻔히 드러내 보이기 때문 아니었을까.

    샘 멘데스 감독의 ‘로드 투 퍼디션’은 1931년 미국 공황기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갱스터 영화다. 이때는 늘 깨어 있는 미국을 건설할 요량으로 술과의 한판 전쟁을 선포한 금주법(1920~33년)이란 것이 막판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무언가 좀 아니다 싶으면 전쟁부터 선포하고 보는 고약한 미국인들의 습성이 만들어낸 이 법안은, 그러나 범죄집단을 부흥 발전시키는 토양을 제공하고 말았다. 마피아가 아직까지도 세계 최대 규모의 범죄집단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도 다 이때 밀주(密酒)를 팔아 치부한 검은돈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갱들과 관련된 사건에 관한 기사가 끊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유명해진 갱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알 카포네 같은 인물은 그 대표적인 경우다. 호시탐탐 좋은 소잿거리를 찾던 할리우드 큰손들은 갱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들을 앞 다투어 양산해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태어난 장르가 바로 갱스터 영화(gangster films)이고, ‘로드 투 퍼디션’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톰 행크스 갱 영화는 뭐가 다를까?
    그런데 장르의 역사가 길면 길수록 그 변화의 폭 또한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로드 투 퍼디션’은 장르의 관습을 대체로 준수하면서도 할리우드에 불어닥친 외풍의 영향을 상당부분 수용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홍콩 누아르의 영향이 바로 그것.



    미국 갱 영화의 변종인 필름 누아르의 영향을 받아 홍콩 방식으로 완전히 정착했던 그 장르의 분위기를 오늘날 미국 영화에서 엿볼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비단 이 장르뿐만이 아니다. ‘윈드 토커’라는 전쟁영화에서는 막강한 화력의 중화기보다는 미약해 보이는 권총을 이용한 전투 장면이 더 빛을 발한다. 홍콩 누아르의 스타 주윤발이 양손에 들고 설치고 다녔던 그 권총의 위력이 다시 되살아난 듯한 인상이다. 왜 그럴까? 감독이 다름 아닌 해당 장르의 귀재 오우삼이었기 때문이다.

    ‘로드 투 퍼디션’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공 마이클 설리번(톰 행크스)이 롱코트를 걸치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거리에서 폼잡을 때나 최후의 복수를 위해서 복도를 걸어가며 힘차게 권총을 뽑아들 때,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주윤발의 ‘할리우드식 버전’이었다. 단순히 흉내내는 차원에 머물렀다는 얘기가 아니다. 모방임에도 대배우 톰 행크스가 갖고 있는 카리스마는 여전히 살아 있다.

    게다가 정통 갱스터 영화였다면, 기관총을 통한 총격전이 난무했을 터인데, 이 영화에서는 변죽만 울릴 뿐이다. 액션 자체가 작품의 지향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향점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가족 문제다.

    가족의 가치는 할리우드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핵심 사항이다. 더욱이 스필버그가 이 영화의 제작을 맡았다. 그는 마틴 스콜시즈 감독에게 ‘케이프 피어’의 연출을 맡기면서 “영화의 플롯은 어떻게 이끌어가도 상관없으나 극중 가족만은 온전히 지켜달라”고 당부한 적이 있을 정도로 가족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로드 투 퍼디션’은 사실 두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피를 나눈 진짜 가족과 의리로 맺어진 유사(類似) 가족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 살인청부업자의 서글픈 이야기라고 할까. 정예 킬러 마이클은 조직의 보스 존 루니(폴 뉴먼)를 아버지처럼 여기고 충성을 다하지만, 존의 친아들 코너의 배신으로 등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톰 행크스 갱 영화는 뭐가 다를까?
    마이클과 코너의 청부살인 현장을 마이클의 큰아들이 목격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결국 목격자를 제거하려는 코너의 속셈과 이를 저지하려는 마이클의 사생결단이 영화의 주된 얼개가 된다. 존도 역시 자기 아들이 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마이클과 존은 결국 자신들의 친아들을 살리기 위해 서로를 죽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니까 말이다.

    샘 멘데스 감독은 ‘아메리칸 뷰티’라는 영화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역시 가족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를 통해 그는, 가족의 가치를 상실한 가족은 결국 해체될 수밖에 없다는 주제의식을 특유의 절제되고 스타일화된 영상에 담아냄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로드 투 퍼디션’에 거는 기대도 클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지난 7월 미국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평단의 찬사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해체위기에 처한 가족을 구하려는 행크스의 부성애가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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