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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쁜 12시간의 레이스…이 악물고 해냈다”

홍은택 기자의 ‘철인3종’ 첫 도전기… 체력 일찌감치 바닥, 막판엔 몸 따로 마음 따로

  • < 홍은택/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 euntack@donga.com

“숨가쁜 12시간의 레이스…이 악물고 해냈다”

“숨가쁜 12시간의 레이스…이 악물고 해냈다”
8월25일 속초에서 열린 2002 아이언맨 코리아 트라이애슬론 대회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이언맨(iron man·철인) 코스를 완주했다.

하지만 단언코 나는 철인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철인은 며칠 밤을 새우고도 끄떡없는, 혹은 새벽까지 일하거나 술 마시고도 다음날 무리 없이 일정을 소화하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여전히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고통스러워하고 지하철에서는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점심식사 후에는 낮잠의 충동을 이기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철인’에라도 도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몸싸움·해파리 탓 수영 공포 커

인류 최후의 스포츠라는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는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경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체력에 대한 오해에 도전하는 경기다. 체력은 타고난다고들 한다. 그래서 철인경기는 보통 사람들은 엄두조차 안 낸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뇌세포의 5%도 채 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듯 체력도 5%도 채 개발하지 못하고 사는 게 아닐까.

지능지수는 어릴 때 결정돼서 평생을 가지만 체력은 성인이라도 개발하면 할수록 계속 증가하는 흥미로운 특성을 지니고 있다. 실제 이번 대회 국내 참가자 475명을 5년 단위의 연령대별로 보면 40세에서 44세가 129명으로 가장 많았다. 철인3종경기는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하지만 정신력 없이는 완주할 수 없다. 체력이 약할수록 정신력에 더 의존한다. 이 때문에 이 스포츠는 기록이 나쁜 사람일수록 혼신을 다하게 되고 더 큰 만족감을 가져가는 ‘이상한’ 스포츠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극기 시합도 아니다. 십수 시간을 그냥 서 있으라거나 목욕탕 열탕에서 15분을 버티라고 하면 차라리 철인3종경기를 한 번 더 하는 쪽을 선택할 테다.

철인3종경기의 매력은 다양한 레이스 전략과 종목별 기술이 동원된다는 점. 먹는 것에서부터 옷 갈아입는 것까지 모두 레이스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 한번 대회에 출전하려면 그야말로 30여 가지를 챙겨야 하는 복잡한 스포츠다. 이것이 철인 입문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면서 철인계에서의 탈퇴도 가로막는 매력인 듯하다.

첫 종목은 3.8km의 수영. 장소는 청초호. 좁고 긴 사주(砂洲)에 의해 동해와 격리된 항아리 모양의 석호(潟湖)다. 북쪽이 바다와 연결돼 있어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속초의 내항. 여성 3위를 차지한 안드레아 피셔는 대회 후 “물에서 하수구 냄새가 났고 해파리가 달라붙었다”고 질겁했다.

대회 전부터 수질에 대해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바로 코앞에 속초 앞바다가 있는데, 수영하는 자신의 손조차 볼 수 없을 만큼, 그래서 누가 물에 빠져도 알 수 없는 탁한 물에서 수영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무엇보다 해파리가 공포의 대상이었다. 손에 해파리가 물컹 잡힌다든지 해파리를 가발처럼 뒤집어쓰게 되는 상상이 선수들을 괴롭혔다. 수온이 올라가는 8월이면 해파리가 대거 유충을 낳는다. 이 유충들에 한번 쏘이면 심한 경우 얼굴이 해파리가 된다는 체험담도 나왔다. 차라리 겨자를 들고 가서 해파리 냉채라도 해먹어야겠다는 푸념까지 나왔지만 그대로 강행됐다.

오전 7시. 총성과 함께 827명이 일제히 출발했다. 갑자기 큰 ‘물고기’ 떼가 나타난 것을 보고 놀란 송어와 숭어들이 여기저기서 수면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해파리는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선수들은 수영 출발에서부터 700m 정도까지의 구간에서 가장 고통을 겪는다. 밖에서 구경하기엔 넓은 물 속이지만 실제로는 좁은 수로여서 선수들은 자리를 잡기 위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다. 보통 팔을 네 번 젓고 한 번씩 호흡하는데 서로 충돌하다 보면 호흡 간격을 놓쳐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다. 공포심을 달래기 위해 심호흡을 하다보면 짧게 들이마시고 내뱉는 정상적인 수영이 불가능해져 급속히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거기에다 자신의 몸을 뜨게 하려고 다른 사람을 찍어 누른다. 한번 눌리면 엄청난 양의 물을 들이마실 수밖에 없다. 물이 탁해서 부지불식간에 다른 사람을 손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실제로 이날 대회에서도 발차기에 얻어맞아 왼쪽 귀가 찢어지는 바람에 대회를 포기한 사람이 있었다.

이 때문에 철인 대회의 사망사고는 대부분 수영에서 일어난다. 지난 4월 일본 미야코지마 대회에서는 2명이, 6월 미국 유타 대회에서는 1명이 수영에서 목숨을 잃었다. 국내에서도 6월 한강 아쿠아애슬론 대회에서 1명이 한강을 건너던 도중 숨졌다.

“숨가쁜 12시간의 레이스…이 악물고 해냈다”
그러나 700m 정도를 지나면 제자리를 잡아서 자기 페이스대로 수영할 수 있다. 이때부터는 갑갑한 실내수영장이 아니라 야외에서 수영하는 참맛을 즐길 수 있다. 망망대해를 내 몸뚱이 하나로 헤쳐나가는, 그리고 모든 것이 소멸돼버리고 하늘과 바다 그리고 나, 이 3자만이 남는 실존적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방어 수영이 주효해 수영을 무사히 마쳤다. 투지가 솟아올랐다. 다음은 사이클 180.2km. 청초호에서 빠져나와 속초와 고성군 간성읍을 3차례 왕복하는 코스다. 몇 년 전이라면 아름드리 해송들과 백사장 사이를 달리는 환상적인 코스였을 테지만 고성 산불 이후 아름드리 해송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이클은 3종경기 중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종목. 사이클 단일 종목으로도 180km를 달려야 하는 대회는 없다. 180km를, 그것도 옆에서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 가운데 한 차선 안에서 계속 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지막 42.195km의 마라톤은 상대적으로 가장 자신 있는 종목이었다. 지금까지 5차례 풀코스를 완주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 마라톤은 완만하고 긴 오르막과 짧고 급경사인 내리막으로 된 순환코스를 네 차례 왕복했다. 하나 둘씩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처음에 사람들을 추월하는 재미에 달리던 나도 점차 지쳐갔다.

그때 아름다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설악 한화 리조트에서 속초 시내로 가는 내리막길에서 바라본 바다. 바다가 언덕처럼 솟아 있어 수평선이 하늘 중간에 걸려 있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온 바다 위로 어선들이 하나 둘씩 집어등을 켜자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끝까지 걷지 않고 뛰었다. 마지막 바퀴를 다 돌고 결승점이 있는 엑스포 광장으로 접어들었을 때 다리는 내 의지와 무관하게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함께 뛰는 사람도 없다. 아침에 827명과 함께 출발한 레이스가 캄캄한 밤길을 홀로 뛰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있었다. 스포츠가 좋은 것은 영화처럼 끝이 있다는 것이다.

기록은 12시간40분07초. 전체 순위 274위. 국내 순위는 100위로 나왔다.



주간동아 2002.09.12 351호 (p74~78)

< 홍은택/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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