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1

2002.09.12

“수원천은 살아 흘러야 한다”

청계천 복원에 자극 ‘복개구간 철거’ 여론 … 16km 중 780m 시멘트로 덮여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09-30 17: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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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천은 살아 흘러야 한다”
    지난봄 청계천 복원 문제를 놓고 각 당의 서울시장 후보들이 갑론을박하고 있을 때 수원 시민들은 팔짱을 끼고 웃었다. 수원시는 1996년 대대적인 수원천 복개사업을 추진했으나 시민들이 ‘수원천되살리기시민운동본부’를 결성하고 복개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 하천으로 바뀐 수원천에서 산책을 즐기거나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수원 시민들은 “하마터면 청계천처럼 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러나 이명박 서울시장 취임 후 청계천 복개구간 견학코스를 마련하고, 복원 준비사업 비용을 추경예산에 반영하는 등 본격적인 복원작업에 들어가자 수원 시민들의 마음도 바빠졌다. “청계천도 하는데 더 늦기 전에 수원천 복개구간까지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

    백로가 노니는 시민들의 휴식공간

    “수원천은 살아 흘러야 한다”
    사실 오래 전 말라버린 청계천에 비해 아직도 유량이 풍부하고 복개구간이 짧은 수원천은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다. 수원(水原)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물이 풍부한 도시다. 시가지 한가운데 해발 143m의 팔달산이 있고 북쪽으로는 광교산, 서쪽으로는 여기산과 칠보산이 있다. 수원시를 관통하는 하천은 크게 네 갈래. 맨 왼쪽으로 황구지천과, 여기산을 끼고 도는 서호, 광교산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수원천, 원천 저수지 쪽 물이 흐르는 원천천 등이다. 병풍처럼 둘러쳐친 산과 10개의 저수지에서 흐르는 풍부한 물, 남쪽으로 펼쳐진 너른 평야가 수원의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총길이 16km, 유역면적 25.37m3의 수원천은 도심을 관통하는 데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화성을 끼고 있어 수원의 얼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여름 북쪽 수문인 화홍문의 7칸 홍예문(무지개처럼 둥근 형태의 문을 가리킴)에서 흘러나오는 상쾌한 물줄기를 본 사람이라면 수원천과 화성을 따로 이야기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화홍문을 통과한 물줄기가 남쪽으로 빠져나가야 할 남수문과 남암문, 남공심돈 등의 유적지는 사라져버렸다.



    수원천 복개가 시작된 것은 1991년. 수원의 교통난을 해소하고 주변 상권을 살린다는 목적으로 수원천 일부 구간을 시멘트로 덮었다. 당시에는 수원 시민들의 94%가 복개를 찬성했다. 94년 화성 성곽 밖 지동교에서 남쪽으로 매교까지 780m 구간이 복개됐다. 2단계 복개는 지동교에서 매향교로 이어지는 상류구간.

    하지만 95년 3월 2단계 공사가 시작되자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수원지역 시민단체들(총 15단체)이 ‘수원천되살리기시민운동본부’를 결성하고 ‘수원천 복개 반대 및 남수문 복원 촉구’ 운동을 본격화하자 여론도 ‘복개 반대’로 급선회했다. 결국 96년 심재덕 전 수원시장이 ‘수원천 복개공사 전격 철회’를 선언했다.

    그로부터 6년, 수원 시민들은 당시 30%나 진척된 복개공사를 중단시킨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있다. 수원환경운동센터 최은정 사무국장은 “복개된 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을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98년부터 매년 지동시장 앞 복개구간에 들어가 오물청소를 하고 있는데, 이곳은 햇빛이 차단되고 통풍이 되지 않아 자정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흙도 시커멓게 죽어 있고 시장에서 유입된 각종 쓰레기들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반면 악취가 나는 복개 지점에서 불과 1km 밖 수원천 상류지역은 개구쟁이들이 여름에는 발가벗고 목욕하며 고기를 잡고, 겨울이면 얼음을 지치는 옛모습을 되찾았다.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동교 위에서 바라보면 상류에서 흘러오던 깨끗한 물이 갑자기 시커먼 다리 밑으로 빨려 들어간다. 몇 미터 앞에서는 시원스레 분수가 뿜어져 나오는데 발 아래는 썩은 물이 흐른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수원천은 살아 흘러야 한다”
    96년 복개를 철회한 수원시는 곧바로 자연형 하천 복원작업을 시작해 지난해 말 완료했다. 자연형 하천 복원 이후 이곳 생태계가 어떻게 되살아났는지는 동식물 분포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개꽃아재비·개망초·개소시랑개비·흰여뀌·미꾸리·밀어·붕어·피라미·논우렁·다슬기·대만흰나비 등이 수원천의 주인이 됐다.

    현재 연장 16km의 수원천은 남쪽 성 밖으로 흘러나오자마자 시멘트로 덮인 780m를 지나 다시 햇빛을 보게 되는 기형적인 모습이다. 흥미로운 것은 복개구간에서 시커멓게 죽어버렸던 물이 다시 햇빛을 보면 자연정화돼 하류로 갈수록 맑아진다는 사실이다. 최은정 사무국장은 “자연의 정화능력은 놀랍다. 복개 부분을 걷어내기만 하면 아무리 오염됐다 해도 복원이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수원천은 살아 흘러야 한다”

    ‘수원천되살리기시민운동본부’ 의 재가동을 선언한 박천우 교수

    96년 ‘수원천되살리기시민운동본부’를 이끌었던 장안대 박천우 교수는 “애초 수원천 복개의 목적은 교통난 해소였다. 그러나 현재 복개구간의 절반이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어 오히려 교통체증을 유발한다. 당장 철거해야 한다”면서 6년 동안 쉬고 있던 ‘수원천되살리기시민운동본부’의 재가동을 선언했다. 박교수는 “수원천을 살리는 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인 ‘화성’을 살리는 일이다. 복개도로를 헐고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무너진 남수문을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수원천은 살아 흘러야 한다”

    수원환경운동센터 최은정 사무국장

    화성의 찬란한 유적은 1970년대 ‘화성성역의궤’를 토대로 대대적인 성곽 정비 사업을 벌인 결과 거의 옛모습에 가깝게 복원됐다. 다만 팔달문에서 서쪽으로 약 200m 구간과 동쪽으로 동남각루 사이의 약 400m 구간에 남문시장이 자리잡고 있어 남수문·남암문·남공심돈 등의 유적을 되살리지 못했다.

    복개구간을 헐고 남수문을 복원한다 해도 남문시장 일대까지 손을 대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남문시장 일대는 수원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싼 상권의 중심. 96년 시민단체들이 복개 반대 운동을 벌일 때도 이곳 상권의 저항이 가장 심했기 때문에 새롭게 불을 지핀 수원천 복원운동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수원천 완전 복원을 위한 시민단체들의 행보가 빨라진 반면, 당사자인 수원시는 “언젠가 복원을 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세워놓고 있다. 지동교에서 매교에 이르는 복개구간의 원상복구 계획이 없으며, 향후 복개구간이 노후해 철거가 불가피할 경우 자연형 하천으로의 정비를 검토하겠다는 정도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작업에 자극돼 다시 불붙은 ‘수원천 복원운동’은 단순히 지역 환경운동으로만 보기 어려운 역사성을 갖고 있다. ‘수원화성’의 저자인 경기대 김동욱 교수(건축학)는 “성곽의 보존과 함께 도시의 내부를 가꾸는 데 지혜를 모은다면 200여년 전 정조가 건설한 계획 신도시 화성은 미래에도 우리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 청계천 복원이 먼저냐 수원천이 먼저냐, 두 도시가 벌이는 자존심 싸움도 자못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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