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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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국무총리인가

연이은 인준 부결 레임덕 심각… 제 위상 찾기 위한 통과의례 시각도

  •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9-30 16: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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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를 위한 국무총리인가
    ”장상 전 총리서리는 여성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장대환 전 총리서리는 50대의 젊은 총리가 탄생함으로써 새로운 분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8월30일, 장대환 총리지명자 인준 부결 후 처음으로 청와대 비서관회의를 주재한 김대중 대통령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아쉬움이 가득했다. 총리인준 부결을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로 묘사할 때는 불쾌한 심기마저 드러냈다고 한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총리를 제청하면서 도덕성과 능력, 역사적 임무 등을 감안해서 임명했고 제청을 요청했다”고 강조했다. 인선 부결의 원인을 장상, 장대환씨의 도덕성이 아니라 정치적 배경에서 찾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일각에서는 잘못된 인사를 추천한 박지원 실장 등 청와대 비서진에 대한 문책론이 제기됐지만 김대통령은 애써 이를 외면했다.

    누구를 위한 국무총리인가
    총리후보 인선 문제는 이제 김대통령 집권 말기의 ‘승부수’로 떠올랐다. 세 번째 총리서리가 또다시 국회인준을 받지 못할 경우 국정은 심각한 위기상황에 봉착할 것이 분명하다. 심각한 레임덕이다.

    DJ “총리서리 임명”vs 한나라당 “탄핵”



    새 총리 후보 물색에 나선 청와대는 긴장하는 모습이다. 우선 새로운 후보를 찾아내는 게 목표다. 청와대는 인재풀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비호남·비정치권·비관료·새롭고 젊은 인물’이라는 이전의 기준은 버렸다. 인사 검증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부터 스크린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지적에도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제한된 시간에 후보의 모든 것을 체크하기란 불가능하다”면서도 “과거와 다른 검증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측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도덕성과 함께 현정치 상황이 요구하는 경륜 있는 몇 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9월 말에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그 이전에 총리 인준 문제를 매듭지을 방침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이런 구상이 먹혀들지는 의문이다. 당장 총리서리 제도를 놓고 여야가 첨예한 힘겨루기에 나섰다. 문제는 서리제의 위헌 여부. 한나라당은 서리제의 위헌을 주장한다. 반면 김대통령은 여전히 서리제를 고집한다. 한나라당은 김대통령이 서리제를 고집할 경우 대통령 탄핵발의, 인사청문회 거부 검토 등 강경방침을 천명한 상태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국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서리 임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헌법상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 임명하도록 돼 있고, 국무위원은 총리의 제청을 받아 임명토록 규정하고 있으나 총리 궐위 및 최초 내각 구성시 국무총리 직무수행에 대한 규정이 없어 총리서리제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강조한다. 민주당은 현재 정부조직법상 총리 직무대행에 관한 규정은 사고시에만 적용되고 궐위시에는 규정이 없다는 점을 거론한다. 특히 서리제도는 50년 헌정사에서 확립된 관행으로 지금까지 총 23명의 총리서리가 임명됐기 때문에 앞으로 총리서리제도를 헌법이나 정부조직법에 규정해 제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이런 청와대와 민주당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인사들이 많다. 그럼에도 정략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다.

    한나라당이 과거 관행화된 총리서리제도를 이제 와 새삼스럽게 쟁점화하고 나선 것은 대선을 의식한 정략으로도 볼 수 있다.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문제에 집중돼 있는 정국 이슈를 전환시키고 대선정국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공세적 방어’라는 것.

    누구를 위한 국무총리인가
    ‘DJ 압박술’이란 새로운 평가도 등장한다. 이 역시 이후보 아들의 병역문제를 희석시키기 위한 전략이라는 배경 설명이 뒤따른다. 민주당이 주도하고 있는 ‘병풍’에 대해 DJ가 결단을 내려 ‘수사 중단’을 유도하라는 압박 메시지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K씨는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97년 대선 당시 DJ 비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DJ는 현철씨 비리문제 및 호남민란론을 들고 YS를 압박, 수사를 덮고 대선에 임해 정권을 거머쥐었다. 마찬가지로 한나라당도 두 아들의 비리문제 등으로 고민에 빠진 DJ를 압박, 대결단을 유도하는 차원에서 총리서리를 잇따라 낙마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K씨는 “원래 DJ는 겁이 많은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다”며 “한나라당 인사들은 ‘밀면 밀리는’ DJ의 이런 스타일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후보의 측근 그룹 가운데 일부 인사들이 김대통령의 직계 그룹 참모들에게 직·간접적 사인을 보내고 있음도 넌지시 공개했다. “한나라당 인사들은 DJ가 또다시 총리서리를 임명하지 못하게 되면 남은 임기 동안 사실상 ‘식물정권’ 상태로 한나라당에 끌려다니게 된다는 얘기를 하고 다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이후보의 측근 L씨는 “병풍은 정략적 발상에서 출발한 만큼 (수사)중단도 정치적 결단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김대통령은 이를 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8월 말 민주당의 박관용 국회의장 출근 저지로 무산된 김정길 법무장관 해임 건의안을 정기국회 기간 동안 수시로 제출할 태세다. 또 공적자금과 관련한 청문회도 추진중이다. 경우에 따라 DJ의 두 아들에 대한 국정조사 문제도 거론할 태세다. 100여 일 남은 대선까지 정치를 대립과 갈등으로 몰고 갈 이 같은 악재들은 ‘병풍’ 견제 차원에서 부풀려진 측면도 없지 않다.

    한나라당은 새 총리서리에게도 장상, 장대환 전 총리서리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잣대로 도덕성을 검증할 계획이다. 당내에서는 “우리가 집권할 경우 인준받을 생각을 해보라”며 역지사지의 자세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다수는 ‘삼세번’ 낙마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제 국무총리 후보의 인사청문회 통과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게 됐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확립 계기가 됐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오지만 정쟁 속에 표류하는 국정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반면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제도적 견제론이 나오는 등 향후 총리의 위상은 지금과 다른, 헌법이 보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힘 있는’ 모습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잔인한 검증 과정을 거친 만큼 그에 걸맞은 역할과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는 분권형 대통령으로의 개헌을 검토하고 있다. 다음 정권부터는 확실히 ‘총리’의 패러다임이 달라질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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